[객원 칼럼] 북한 반인도범죄 가해자에게 면죄부는 없다

상급자 명령 따른 인권 범죄도 책임 면치 못해…北인권 가해자 정보 파악 시급

/사진=영화 ‘크로싱’ 스틸컷

1992년 1월 20일 통일 독일의 베를린 지방법원에선 동서독 분단 시기 국경탈출자에게 총격을 가한 전직 동독 국경수비대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이들은 베를린장벽 붕괴를 9개월 앞둔 1989년 2월 자유를 찾아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던 만 20세 청년 크리스 게프로이를 37m 거리에서 조준 사격해 즉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고인 측은 국경탈출자에 대한 총기 사용을 허용한 동독 국경법 27조와 국경수비대 복무규정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동독 최고 권력자를 지낸 에리히 호네커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은 “성공적으로 탈주자를 저지한 수비대원”으로서 오히려 치하받을 일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이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조준 사격한 대원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100m 밖에서 연발 사격한 대원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망명자에게 발포를 명한 법률은 복종할 가치가 없다”고 못 박았다. 말단 대원으로서 거역하기 어려운 상급자의 명령이나 법 조항이 있었음을 고려하더라도, 가해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켰어야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재판을 시작으로 국경탈출자 사살이 허용되는 체제에 부역한 상급 권력자들은 차례대로 법의 심판대에 올라야 했다.

동독 국경수비대 처벌 사례는 훗날 북한인권의 책임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물을 것이냐는 데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지배하에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인도범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한 후, 국제사회는 김정은 일가와 수뇌부에게 인권 유린의 책임을 묻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COI가 2014년 같은 보고서에서 “반인도범죄를 범하라는 명령은 명백히 불법이기 때문에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이 결코 형사책임 면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한 대목이다. 반인도범죄를 직접 행했든, 지시했든, 방관했든, 동참했든 모두 국제법에 따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지난 19일 공개한 ‘북한인권 가해자 데이터베이스’에는 반인도범죄에 버금갈 만큼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한 또는 그러한 행위를 용인 혹은 지시한 인물 30명이 등록돼 있다. 보위부장이나 보안서장 등 상급자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뿐만 아니라 구금시설 말단 간수들인 계호들까지도 가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인권 범죄의 책임에 있어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고려한 것이자 NKDB가 조사한 인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수감자들을 고문했을 가능성에 대해 피해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들도 인간이에요. 아무리 위에서 시켰다고 한들 같은 인간을 죽도록 고문한 것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되나요.”

NKDB가 19일 ‘북한인권 가해자 데이터 구축과 책임규명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가영 NKDB 인권조사 디렉터가 북한인권 침해 가해자 명단을 공개하고 이를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NKDB 유튜브 캡처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가해자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은 우수한 학교생활을 마치고 법 기관에서 근무하는 자랑스러운 가족이지만, 피해자들의 눈에 그들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 줄 모르는 ‘승냥이’와 다를 바 없었다. 가혹한 고문으로 자백을 많이 받아낼수록 능력 있는 인재로 승승장구했으며,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계호가 부모뻘 되는 수감자들을 무소불위로 대했다. 자신들의 악행이 이미 수천, 수만 건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도 그들은 지금과 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

NKDB가 북한인권 침해 사건과 가해자 정보를 기록하는 일은 그렇기에 중요하다. 가해자들에게 자신들의 행위가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주지시켜 궁극적으로 추가적인 인권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NKDB가 20년 가까이 축적해온 북한인권 침해 사건은 7만 9000여 건, 인물 정보는 4만 9000여 건이다. 가해자 정보는 지난해 7월 기준 2173건이 모였다. 이 중 매우 심각한 인권 범죄를 수차례 저지른 동시에 인적 정보까지 상세히 파악된 가해자 30명을 새로 개발한 가해자 데이터베이스에 우선 등록했다. 이 모든 기록은 자신들의 인권 범죄가 세상에 알려질 리 없으리라 여겼을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것이다.

남은 과제 중 하나는 본격적인 책임규명 절차를 밟는 것이다. NKDB는 조만간 가해자 데이터베이스의 활용 방안을 유엔 등 책임규명을 이끄는 기관과 논의하는 한편, 북한인권 침해 사건을 국내 사법기관에 기소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가해자 정보의 교차검증이다. 북한인권 침해가 가장 심각한 구금시설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얼굴조차 쉽게 쳐다보지 못하게 돼 있는 데다, 고문과 만행이 일상인 환경에서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후일을 위해 가해자 정보를 상세히 파악하려 했던 피해자는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해 각자 파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인권 실태 조사를 확대해 교차검증에 활용할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가장 큰 난제가 하나 있다면 하나원 입소 탈북민에 대한 NKDB의 접근이 가로막힌 것이다.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정부 대신 북한 당국이 민감해하는 인권 기록을 도맡아 온 지 20년 만이다. 2016년 북한인권법 통과로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설치되면서 NKDB는 하나원 인권 조사 항목, 조사 대상자 규모를 지속 축소해야만 했다. 그러던 끝에 지난해 3월 통일부가 NKDB의 하나원 조사권을 완전히 박탈한 바 있다. 현재 하나원 접근이 가능한 기관은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와 유엔 서울인권사무소 그리고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으로, 민간의 참여는 완전히 배제됐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올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시민사회 단체들이 하나원에서 신규 입국 탈북민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공개 지적했지만, 정부의 끈질긴 묵묵부답에 필자와 동료들은 아연실색한다.

민간단체는 하나원 퇴소 탈북민의 연락처는 물론 그들이 어느 지역에 집을 배정받아 흩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하나원 조사권이 박탈된 후 NKDB 연구원들은 전국을 발로 뛰며 조사대상자를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NKDB가 14년간 매년 발간해온 민간 유일의 「북한인권백서」는 올해 처음으로 빛을 보기 어렵게 됐다. 북한 주민의 존엄성을 위해 가해자들과 싸우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그런 와중에 우리 정부의 외면과 탄압까지 견뎌내야 하는 것은 불과 5년 전 북한인권법 통과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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