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리선권 외무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리선권은 담화에서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꿈보다 해몽”이라며 북미대화 가능성을 일축한 것의 연장선이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대화에도 대결에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면서도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주변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성김 미 대북 특별대표가 한국에 와서 ‘조건 없는 대화’를 북한에 촉구한 것도 북한이 내비친 대화 신호를 적극적으로 잡고자 하는 차원이었다.
북, 당분간 미국과 대화할 생각 없는 듯
김여정, 리선권이 연이어 내놓은 담화를 보면 북한은 당분간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전원회의에서의 북한의 신호를 잘못 읽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김여정 리선권의 담화를 자세히 보면 미국과 대결하겠다는 내용도 없다. 지금 상태로는 미국과의 대화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지, 핵이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힘을 통해 미국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의 위협적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북한이 이렇게 쿨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1차적으로 내치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북중 국경을 장기간 봉쇄한 상태에서 북한 일부지역에서는 물가가 많이 오르기도 하는 등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내치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상태에서 김정은 총비서의 관심은 요즘 주로 내부에 쏠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북한이 그리 흥미를 갖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북한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핵과 ICBM,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키워야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한 번은 테이블에 앉을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이 한번은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미국에서 행정부가 바뀐 이상 서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 번은 직접 들어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지리한 교착 국면에서 바로 대화로 갈지, 북한이 몇몇 미사일을 쏘아대는 우여곡절 끝에 대화로 갈지는 모르지만, 김정은 정권과 바이든 행정부가 한 번은 협상장에 마주앉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북미대화가 이뤄진 뒤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이상 북미대화에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단계적 협상안에 북미가 합의할 수 있다면 협상의 시기가 다소 길어질 수 있지만, 그마저도 안 된다면 협상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 북미협상이 결렬된다면 다시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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