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고난의 행군’ 언급, 끔찍한 세월 어찌 다시 살라는 건가”

[주민 인터뷰①] "결국 버티는 건 주민들...정부는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인 8일 제6차 당 세포비서대회에서 결론과 폐회사를 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 총비서는 이 자리에서 “나는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 전진 도상에 많은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여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당 제8차 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투쟁은 순탄치 않다.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조선노동당 말단 책임자들이 참석한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자력갱생의 사생결단을 강조한 것이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을 명목으로 지난해 1월 국경을 폐쇄하면서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며 주민 불만을 다독이던 당국이 이제 와서 ‘고난의 행군’을 얘기하니 배신감을 느꼈다는 주민도 있었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40대 여성 김 모 씨는 최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를 안 믿고 시장에서 돈을 벌고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상황에서 나라를 믿고 ‘고난의 행군’ 때 간고분투를 다시 벌인다면 생때같은 자식 앞세우고 멀쩡했던 가족을 땅속에 묻었던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정말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사실 김 위원장은 “나는 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며 당과 간부들에게 간고분투를 주문한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관련 언급 이후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4일 “고난의 행군이 곧 경제난이라는 의미가 아니며 이는 사생결단의 배짱과 전화위복의 전략”이라며 “전체 인민에게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호소한 것이 아니라 당에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세포비서들에 대한 주문은 결국 인민들을 쥐어짜라는 의미가 아니냐”며 “간부들을 다그치고 인민들은 아끼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라는 평가다.

[아래는 북한 주민 김 모 씨와의 일문일답]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난의 행군언급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아무 포치(안내)도 없이 갑자기 배급소 문을 닫아 걸은 후 온 가족이 교대로 배급소 앞에서 쌀이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그때 나라를 믿고 기다리다 죽은 친척과 가족들이 생각나서 갑자기 앞이 까매졌다. 그때 한두 달 배급소에서 밤낮없이 줄을 서다 정신이 번쩍 들어 혀를 가로 물고 장사길에 나섰다. 그때만 해도 사회주의 배급체제에서 장사를 하면 사회락오자(낙오자)로 생각되던 때이지만 안 하면 죽는다는 악이 생기더라.

군대 나갔던 자식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간다고 면회를 오라고 하는데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 형제들도 다 죽게 된 상황이라 열흘에 피죽 한 끼도 못 먹던 때다. 길거리에 시체가 늘어져 있던 때가 바로 고난의 행군이다. 그 끔찍한 세월을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나. 아무리 당 간부들에게 그때의 정신으로 분투하라는 의미라고 해도 그 상황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이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될 만큼 어려운가. 그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비슷한 점은 그때도 지금도 돈도 없고 식량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역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코로나로 도내 경계를 넘어가기는 힘드니 지역 안에서 (곡물을 가지고 있는) 농촌에 구걸 다닌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그래도 지금은 식량을 구하러 다니면 끼니는 해결할 수 있다. 90년대에는 배급만 기다리면서 허망하게 죽은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각자가 노력한다. 또 당시에는 시장이나 역전, 거리에 시체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굶어서 죽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지는 않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동의하나. 고난의 행군 때처럼 버티면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견디고 버티는 것은 우(위)에 사람들이 하나? 정책 내세우는 사람들이 하나? 다 우리 인민들이 버티는 것이다. (당시) 아낙네들이 남정네들과 아이들 다 먹여 살렸다. 고난의 행군이 어땠는데, 자기들(당국)이 알아서 마음대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것인가.

실제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인민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이 알아서 결심했다고 말하는 것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어떤 통보나 지시도 없이 배급을 중단해 숱하게 사람들을 죽인 것과 같은 처사다. 고통은 고스란히 인민이 받아야 한다.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국가보고 돈 달라. 쌀 달라는 소리는 안 한다. 계속 국가가 하고 있는 대로 공급 대상들에게 공급해줘도 된다. 우리 평민들은 그저 장세 내고 장사하고 물자를 마음대로 움직이게 해주면 된다. 뭘 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나라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달라는 것이다.

개혁개방 같은 것은 꿈도 안 꾼다. 개혁개방하면 이 나라에 백성이 남아 있겠나. 누가 당의 말을 듣겠나. 나라가 고난의 행군 결심만 내다걸고는 방도도 대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라가 할 수 있는 게 통제와 처벌 뿐이니 이걸 해야 인민들이 겁을 먹고 나라를 따른다고 보는 것 같다.”


편집자주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초 열린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고난의 행군’을 언급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코로나19와 대북제재의 장기화, 자연재해 등 이른바 3중고에 따른 경제난이 지속되자 ‘사생결단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단어 자체에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데일리NK는 북한 주민들과 당의 말단 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언급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2회에 걸쳐 전해드리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