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살라미(salami)식 도발이 재현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거의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점증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도발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관여보다는 압박으로 기울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화염과 분노’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연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이 지난 21일 서해 방향으로 단거리 순항미사일 2발을, 25일 동해 방향으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의 개량형으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탄 2발을 각각 발사했다. 이는 탄도미사일과 그 기술을 이용한 비행체의 발사를 금지하고 있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제1718호(2006년)와 제1874호(2009년)를 위반한 조치다. 이에 앞서 북한 당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1월 20일) 직후인 1월 22일에는 평북 구성에서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 당국의 순항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틈을 이용해서 신임 미국정부의 반응을 떠보려는 탐색전 수준의 도발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괘념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자 북한 당국의 도발은 대담해졌다. 사거리가 짧다고는 하나 명백히 한국 영토 전역을 위협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용인하던 트럼프 대통령과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지난 2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당국이 긴장고조를 선택하면 상응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동맹 관계의 회복 및 동맹과의 협력을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 당국의 이번 탄도미사일 도발을 동맹국인 한국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가뜩이나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안보협의체) 플러스에 한국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 당국의 이번 탄도미사일 도발로 인해 그 같은 구상을 더욱 탄력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위기조성전술이라는 해묵은 레퍼토리를 꺼내들었다. 김여정(15일), 최선희(17일), 리병철(27일)에 이어 지난 29일에는 외무성 국제기구국장 조철수가 담화를 통해 유럽 국가들이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조철수는 북한 당국의 미사일 발사가 정당한 자위권의 행사라며 유엔 안보리 구성원들이 불순한 목적 실현에 유엔을 도용하고 있는 것을 절대 간과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김여정(30일)이 재차 등장, 미사일 발사에 우려를 표한 문재인 대통령 연설에 대해 “미국산 앵무새”라며 거칠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국제사회의 유엔 안보리 소집을 비리로 북한 당국이 도발의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7일 미국의 대북 전문 매체인 ‘38노스’는 북한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새 잠수함의 진수를 준비 중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북한 당국이 도발을 통해 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한미합동군사훈련, 한미일 삼국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들의 2+2 회담,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에서의 갈등 표출 이후에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자신들의 미사일 도발은 정당한 자위권의 행사라면서 통상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은 북침 책동으로 비난하는 것은 북한판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미일 고위급 회담이나 미중 갈등은 북한 당국이 도발을 감행한 또 다른 빌미였다. 북중러 대 한미일의 갈등의 심화 구도 속에서 도발의 수위를 높여갈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요인들은 북한 당국이 도발을 감행한 명분일 뿐 그들의 도발은 계획적으로 진행돼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일련의 도발은 지난 1월에 개최된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천명한 국가 방위력 강화방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였으면 단거리 탄도미사일 실험은 용인될 텐데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을 주시하려 순항미사일, 탄도미사일을 순차적으로 발사하고 미국의 대응에 따라 ‘제국주의 세력에 의한 피해자’ 프레임을 강조하며 개발 중인 신형 SLBM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들의 실험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커다란 오판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끝나면 보다 경경한 대북정책이 실행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김여정과 최선희의 대미 막말 담화 이후인 지난 18일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최신 무인공격기인 MQ-9A 계열을 한국 군산에 배치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미 해군 전력 증강 계획에 관한 청문회 자리에서 나온 이 방안은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일체의 무력 도발뿐 아니라 인권 문제까지 적극 제기한다면 북한 당국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이다.
도발을 통해 대화와 협상의 기회를 얻어내고 보상을 받은 후 다시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 당국의 과거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벼랑 끝까지 위기를 고조시키는 치킨게임도 바이든 행정부에겐 유치한 전략으로 보일 것이다. 북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바이든 행정부에 건설이고 생산적인 압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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