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문화 동경하는 北 청년들…김정은 “총소리를 내라” 명령

[북한 비화]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행위에 가혹한 처벌…주민들 "법관만 데리고 혁명하겠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차에 시정연셜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6조는 모든 사람의 생명권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생명권은 법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누구도 개인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빼앗을 수 없다(1항). 사형제를 폐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사형 집행이 가장 심각한 범죄에 한해 법정에서 최종 선고에 따라 집행돼야 한다(2항).

지난해 말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하기 전 김정은은 인민들, 특히 새 세대 청년들 사이에 공포심을 조장하고 체제 불신 분위기를 막기 위해 “총소리를 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 김정은 정권은 새 세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 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 외부 세계에 눈뜬 주민들의 체제 이탈 현상에 심각성을 느끼고 법을 제정해 강력한 사상 통제와 무자비한 처벌을 단행하면서 주민사회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김정일의 “총소리가 나게 하라” 빼닮은 김정은의 “총소리를 내라”

2020년 10월 1일 김정은은 새 세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디지털미디어 ‘암시장’과 판매 조직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군(軍) 보위국의 종합 보고를 받고 이를 강력히 짓뭉갤 데 대한 명령을 내렸다.

김정은은 외부 문화 유입 차단을 사회주의 제도를 고수하기 위한 사활적 문제로 보고 ▲사회주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적들의 사상문화적 침투에 동조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할 것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동사상문화 척결 투쟁을 벌일 것 등을 지시하면서 “총소리를 내라”고 명령했다.

북한은 1981년 9월 14일 ICCPR에 가입했다. ICCPR 협약 제6조에 명시된 생명권은 국가의 존망을 위협하는 긴급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가장 기초적이며 숭고한 권리다.

김정은의 “총소리를 내라”는 명령은 단순히 허공에 대고 총을 쏘라는 의미가 아니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채택해 주민들의 외부 문화콘텐츠 유입·유포 행위를 철저히 단속·처벌하고, 사안이 엄중한 경우에는 총살하라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 집권 시절에는 체제에 반하는 불순물을 취급한 주민들이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분류돼 총살되거나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대거 수용됐다.

아울러 후계자인 김정일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대기근을 겪으며 국가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커지자 민심 이반 동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총소리가 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숱한 탱크들이 수도 평양시의 거리를 활보했고, 무시무시한 소리에 놀란 수도 시민들은 전시와 맞먹는 공포 분위기를 느꼈다.

아버지 김정일을 쏙 빼닮은 김정은의 “총소리를 내라”는 명령은 지난해 사법, 보위, 안전기관에 내적으로 내려졌다. 이후 외부의 문화콘텐츠를 접한 숱한 주민들이 ‘반동’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으로 처형됐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연합지휘부를 조직해 대대적인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하나의 처벌 방식으로 사형도 집행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는 “많은 양의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및 유포할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데일리NK

구금시설에선 고문 등 인권 침해도 횡행…기본적 권리 잃은 北 주민들

이뿐만 아니다.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행위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걸려 붙잡힌 주민들은 구금시설에서도 여러 가지 인권 침해를 겪고 있다.

지난 2월 평양시 안전국 예심과에서는 남한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 각종 영상물을 20여 명에게 유포시킨 평양과학기술대학의 남학생(22세)을 체포한 뒤 구류장에 가두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

이 남학생은 영상물이 든 메모리를 지하철에서 주웠다고 주장하며 버티다 극심한 고문에 결국 양강도에서 달리기(짐 이관)로 거래했다고 실토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앞선(최초제공자)을 댔다는 것으로 교화 15년형을 선고받았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신의주, 청진, 강계, 평성, 사리원, 해주, 원산 등 북한 주요 도시들에서도 검거 선풍은 살벌하게 불고 있다. 이런 상황에 사법·보위·안전기관 일꾼들은 이 기회를 노려 뇌물수수, 뒷돈거래로 주머니를 채우며 호황기를 즐기고 있다.

지난 3월 함흥시 보위부는 남한 영상물 유포자 19살 청년 조모 씨를 체포해 구류하고 5일간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구류장 계호원들은 조 씨를 구류장 철창 앞에 알몸으로 세워 수치심과 모욕감을 주기도 하고 화장실도 보내주지 않는 등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각종 인권 유린 행위들을 저질렀다.

그는 결국 부모가 바친 뇌물 3000달러로 1년 단련형을 받았다. 조 씨는 단련대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영양실조를 겪어 자택에서 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 씨가 남긴 유서에는 ‘반동사상에 물젖은 문제 많은 청년으로 꼬리표가 달릴 테니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함경남도 당위원회는 이 비극적인 사건마저 사상 단속에 이용했다. 도당은 “전 세계 자살률 1위인 남조선의 영화에 푹 빠져 키워준 당과 조국을 배반하고 사상이 변질된 자의 말로”라며 청년 교양에 열을 올렸다.

북한이 가입한 ICCPR은 주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고문받지 않을 권리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이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내세운 북한 당국의 가혹한 처벌에 주민들은 “모든 청장년들을 다 죽이고 법관들만 데리고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