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들은 조봉암이 누군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잠깐 설명해 보자면, 그는 제1공화국 정부에 농림 장관으로 근무하다가 1956년 대선에 이승만의 대항마로 출마해서 약 30% 지지율을 얻었고 낙선 후에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를 받아 사형을 당한 인물이다. 당시 한국에서 많은 야권 운동가들은 조봉암이 사실상 무죄라고 생각하였고 역시 나의 동료 나탈리아 마트베예바가 밝힌 것처럼 1950년대에 미국 측도 조봉암을 사형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였고 구명 운동을 했다. 2011년 한국 대법원은 조봉암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고 그는 복권되었다.
지난 5월 주간조선은 필자가 러시아 문서 보관소에서 찾았던 사료 기반으로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 사료에 따르면 1968년 김일성은 고급 소련 간부 드미트리 폴랸스키에게 북한이 조봉암으로부터 임무를 달라는 편지를 받았고 1956년 대선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편지에 대한 김일성 주장에 관한 추가 자료를 찾았고 김일성-폴랸스키 회담 이후 북한이 공개 자료에도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주장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사료를 본 칼럼에 소개할 것이다.
사료 1: 김일성이 드미트리 폴랸스키에게 한 이야기
우선, 1968년 김일성이 한 이야기 중의 편지에 대한 주장은 처음에 나왔다. 이 내용을 살펴보자.
공산주의자로 남았던 조봉암은 이승만 편에 살아남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기 위하여 넘어갔다는 편지를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임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정치국에서 이 편지를 토론하였고 [조봉암에게서] 다른 동무들을 통하여 연결체가 될 수 있는 합법 정당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료 2: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한국) 인민들의 투쟁’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은 1982년에 북한에서 출판된 도서이고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을 비롯, 한국의 북한자료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도서의 184p부터 191p까지 진보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이 도서에서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68년 김일성 자신도 드미트리 폴랸스키에게 그렇다고 주장하였다. 편지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자.
‘진보당 당수인 조봉암은 당을 내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충성의 편지를 올리였다.
충성의 맹세를 다지며 적어나간 편지는 첫머리에서 지금 남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가 다 오물탕속으로 빠져들어가고있다고 개탄하고 이 위기를 타개하여 슬기로운 민족의 운명을 바로 잡아나가실 분은 오직 경애하는 장군님뿐이시라고 하였다. 갈리진 민족, 갈라진 국토를 하나로 이어 세계만방에 이름떨칠 민족강국의 령도자로 조선을 빛내이실 분은 남북조선의 민중이 그처럼 열화같이 우러르며 따르고있는 김일성장군님이시라고 그는 목메여 아뢰였다.
그는 계속하여 민족의 운명을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조국통일위업에 직으나마 이바지하려고 진보당을 창당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앞으로 장군님의 자주적평화통일방침따라 진보당의 투쟁강령을 튼튼히 틀어쥐고나갈것이라는 자기의 굳은 결의를 담아 삼가 맹세 올리였다.’
위 글에 언급하는 ‘장군님’은 물론 김정일이 아니라 김일성이다. 김정일을 그 때에 아예 ‘장군님’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사료 3: 조선대백과사전
조선대백과사전은 김정일 시대 중기에 북한에서 출판된 백과사전이다. 2000년에 나온 조선대백과사전의 제17권 548p에서 조봉암에 관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래에 볼 수 있듯이 이 글에도 편지에 대한 주장은 나온다.
조봉암:
(1897. 11. 9－1959. 7. 31)
남조선혁명가.
주체8(1919)년 3.1인민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여 1년간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그후 다른 나라들에 가서 공부하다가 주체12년에 서울에 돌아 왔다. 주체14년 4월 조선공산당을 창건하는 사업에 참가하고 그 검사위원으로 되였으며 같은해에 고려청년회를 조직하고 그 집행위원으로 되였다. 상해에서 한국독립운동자동맹과 상해조선인반제동맹에 관계하였다가 주체21년에 체포되여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그후에도 투옥된 바 있다.
주체34년 8.15후 인천에서 당, 정권기관, 로조를 조직하는 사업에 참가하였다. 공산당 인천시위원장으로 있었으며 조선독립전선동맹을 결성하고 활동하였으나 박헌영 간첩도당의 분렬주의책동으로 말미암아 배격당하여 탈당하였다. 주체37년부터 남조선괴뢰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여 남조선 괴뢰정권의 초대농림부장관으로 있었다. 주체39년 5월 또다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여 《국회부의장》까지 하였다.
주체44년 8월 14일밤 평양방송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국광복 10돐(돌)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에 접하고 인생말년이나마 경애하는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조국통일위업에 한몸바쳐싸울 결의를 담은 편지와 정성스럽게 마련한 선물을 수령님께 올렸다.
주체44년 12월 22일 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혁명력량을 묶어 세우며 투쟁을 통일적으로 벌리기 위하여 진보당을 결성하고 그 당수로 되였다. 주체45년 11월에 진행된 전당대회에서 상설적인 통일문제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주체46년 10월부터는 기관잡지 《중앙정치》를 발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적조국통일방침을 널리 선전하였다. 주체47년 1월 12일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에 의하여 체포투옥되였으며 서대문형무소에서 굴함없이 견결히 싸우다가 사형 당하였다.
조국광복 45돐에 즈음하여 《조국통일상》이 수여되였다.
이 정보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나? 우선, 사료에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자고 한다. 원래 주간조선은 김일성과 폴랸스키에 대화에 관한 칼럼을 게재했다. 이 때 ‘조봉암은 명확하게 유죄다’라고 주장하는 한 편과 ‘김일성은 거짓말을 했고, 조봉암은 무죄다’라고 주장하는 네티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을 정치에 적용했고 갑자기 ‘문재인은 조봉암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조봉암이 김일성에 편지를 보냈는지 여부는 이승만 또는 문재인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지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에 이 편지가 실제 존재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 문서보관소가 개방될 때까지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편지의 실물은 존재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 또는 북한 측이 이 편지가 존재하다는 주장 자체만으로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북한은 ‘일본 제국을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쳐부수었다’ ‘6.25전쟁은 북침으로 발발했다’ ‘1948년에 남한 주민 4분의 3 이상의 최고인민회의 선거에 비밀리 투표하였다’ 등 너무도 노골적인 거짓말을 내세우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 논의를 보면 편지의 존재 가능성이 좀 더 높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1) 김일성은 폴랸스키에게 조봉암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폴랸스키 자신도 소련 대표단도 조봉암이 누구였지 몰랐고 그들의 방북 10년 이상 전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당시 김일성은 조봉암에 대한 거짓말을 통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2) 편지에 대한 ‘조선대백과사전’의 담론을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의 담론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을 관찰할 수 있다. 1982년에 북한은 조봉암이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주장하였고, 2000년에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즉, 김일성에 대한 찬양 정도을 줄였다. 북한에서 아주 중요한 사한이 아니고서는 ‘수령님’에 대한 찬양을 줄일 수 없다. 즉, 만일 조봉암의 편지가 조작이라면 조선대백과사전의 저자들이 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반복하지 않았고 좀 다르게 썼는지 설명하여야 한다. 그렇게 쓰라고 할 수 있었던 사람은 김정일 자신뿐이고 늘 김일성 개인 숭배 강화를 위하여 노력한 그는 왜 갑자기 ‘충성의 맹세’에 관한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는지 필자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조봉암의 편지가 존재한다면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이 편지가 존재하였지만 ‘충성의 맹세’ 내용이 포함하지 않았다면 1982년 도서의 저자들은 김일성을 더욱더 우상화를 위하여 이 내용을 조작했고, 편지의 실물을 본 조선대백과사전의 저자들은 편지에 내용에 더 가깝게 썼는지 추측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일 시대에 출판한 조선대백과사전이 김일성 시대의 도서들보다 역사 왜곡 수준은 조금 낮았다고 기억하면 이 가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를 들면,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뎠을 때 북한은 이를 공포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조선대백과사전이 암스트롱의 역사적인 한 걸음을 처음 언급
했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조봉암과 김일성의 관계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아마도 북한의 김씨 일가의 정권이 무너졌을 때까지 사실 입증은 불가능할 것 같다. 우리는 가설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이때에는 물론 정치적 입장은 최대한 배제하면서 객관적인 사고 방식을 통해 접근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