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왜곡” 南영화 ‘백두산’ 보고 CG기술 연구하라는 북한

소식통 "5.18영화연구소에 한미 영화 시청 강요...쓰러진 김일성 동상 장면은 편집"

영화 백두산 포스터. /사진=CJ E&M 홈페이지 캡처

최근 북한이 문학예술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관련 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국과 미국영화를 시청하게 하고,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자강력으로 개발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문화예술 분야에도 ‘자력자강’을 강조하기 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영화 제작 기술 발전이 아버지(김정일) 때보다 더딘 데 대한 질책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일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 같은 지시는 3일 내각 문화성 고위 간부에 의해 하달됐다. 이 간부는 이날 5·18영화연구소에 직접 찾아와 새로운 영화제작 설비의 콤퓨터(컴퓨터)화와 현대화 수준 제고에 관한 당(黨)의 방침을 포치했다.

이후 8시간 동안 모든 성원들에게 한국과 미국 영화를 관람하도록 강요했고, 이 간부는 “영화제작과 관련한 기술적 추세를 분석하는 데만 신경 쓰라. 자본주의 퇴페적(퇴폐적) 사상문화는 기억하지 말라. 외부에 나가 발설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시켰다.

아울러 관람 이후 소감과 함께 관련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각자의 소견(A4 2장 분량)을 적어내도록 했다. 북한식(式) ‘모방을 통한 기술 발전’을 이번에도 재차 시도했다는 것으로, 향후 이를 바탕으로 실무적인 구체적 지시가 하달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른바 주적(主敵)이라는 한·미·일 영화 시청에 엄중한 처벌을 가하면서도 관계자에게는 의도적으로 시청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선진 기술은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면서도 관련 사실이 퍼지는 건 철저히 차단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던 셈이다.

아울러 ‘우리민족끼리’ 등 대외 매체를 통해 현실을 왜곡했다고 강력 비난한 영화인 ‘백두산’이 포함됐다(이외 군함도와 미국 영화 ‘미래세계’를 시청했다고 한다)는 점도 놀랍다.

북한이 자신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남북관계 파탄까지 거론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과는 상반되는 동향이 포착된 셈이다.

특히 북한 당국은 ‘백두산’ 상영 시 영화 속에 지진으로 인해 김일성 동상이 쓰러져 있는 장면은 편집했다고 한다. 이는 이른바 신적인 존재 ‘수령’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려는 의도다.

한편 5·18영화연구소는 북한 내각 문화성에 소속으로 영화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술적 요소를 연구하는 기관이다. 여기에 평양과학기술대학교, 평양외국어대학교, 김책공업종합대학 졸업생 등 전문 인력들이 선발돼 창작 및 관련 외국 서적 번역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인 2000년 초반부터 CG 기술 등을 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강화된 대북 제재 및 경제난에 따라 여의치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