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비상회의 연일 주재하는 김정은에 ‘위임통치’라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5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해 현재 남해에서 북상 중인 태풍 ‘바비’로 인한 피해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고 2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태풍에 의한 인명피해를 철저히 막고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 당에 있어서 순간도 소홀히 할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20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북한 김정은의 ‘위임 통치설’ 파장이 만만치 않다. 위임통치에 대한 견해도 분분하다. 국정원은 비공개업무보고에서 김정은이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뿐만 아니라, 일부 측근들에게도 권력을 이양하는 방식으로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국정원이 언급한 위임통치는 ‘권력이양’을 가리킨다. 또한, 김정은이 여전히 절대권력을 행사하지만 과거에 비해 조금씩 권한을 이양한 것이라고 국정원이 보고한 바와 같이 위임통치는 ‘권한이양’을 뜻하기도 한다.

국정원은 이날 보고에서 김여정의 ‘제2인자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후계 낙점, 후계자 통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은의 위임통치 양상까지도 밝혔는데 김여정은 대남·대미정책을, 경제분야는 박봉주(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부위원장)와 김덕훈(신임 내각총리)에게, 군사분야는 최부일(당중앙위 부장)과 리병철(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게 그 권한이 이양되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보고에 대해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통치권 이양이라기보다 권한의 일부 분산(단위별 자율성 보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국정원은 사안별 위임통치로 받아들인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일부권한 분산과 위임통치는 성격이 다를뿐만 아니라 서로 배치된다. ‘위임’이라는 용어는 매우 긴급한 비상상황으로 통치가 힘들어 권력을 이양할 경우에 쓰이는 용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위임통치는 북한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라 국정원에서 만든 용어라는 것이다.

김여정의 제2인자설을 들고나온 것을 보면, 이번 국정원이 보고한 위임통치는 권력이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이양과 권한이양은 그 성격이 또 다르다. 권한이양은 실무권한 분산으로 측근들에게 실무현안을 감독할 재량을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르게 하는 것이다. 권력이양은 김정은이 어느 정도 손을 떼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은의 ‘통치 스트레스’라는 용어도 이번에 처음 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에 직접 방문한 뒤 전시 등 유사시 사용하기 위해 비축한 전략물자와 식량을 풀어 수재민 지원에 쓰도록 지시했다고 7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운전석에 앉은 것으로 보아 일부 거리는 직접 운전해 수해현장을 둘러본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

이달 8, 강력한 권력행사를 한 김정은

권력이양은 김정은이 서서히 손을 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에게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는가. 최근에 김정은의 행보(정치행위)를 추적해보자. 김정은은 올해 들어 이번달에 가장 바쁜 정치 일정을 소화했다. 불과 3주 내에 네 차례의 중대회의를 소집하고 진행했다.

지난 5일에는 당중앙위 정무국회의(제7기 4차)를, 13일에는 당중앙위 정치국회의(제7기 16차)를, 19일에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제7기 6차)를, 25일에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제7기 17차)를 이끌었다. 이 회의들은 긴급비상회의 성격이 강했다. 첫 번째 열린 당 정무국회의에서는 당중앙위에 새로운 부서를 내올 데 대한 기구문제를 검토심의하였다. 또한, 국가최대비상체제의 요구에 따라 완전봉쇄된 개성시의 방역형편과 실태보고를 받고 봉쇄지역 인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식량과 생활보장금을 당중앙이 특별지원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결정하였다. 회의를 진행한 김정은은 당중앙위 정무국 성원들에게 무한한 책임성과 헌신성을 주문하면서 모든 사안들을 꼼꼼히 챙기고 지도했다.

두 번째 열린 당 정치국회의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직접 진행하면서 정무국회의에서 다루었던 사안들을 다시 검토했다. 국가비상방역체계, 방역사업지휘체계를 완비할데 대한 문제와 더불어, 개성시를 비롯한 전연(전방)지역의 20일간의 봉쇄에 대한 해제결정도 내렸다. 특이점은 최근 폭우로 인한 피해상황을 북한언론매체에게 낱낱이 공개하게 했다는 것이다. 8월 14일자 노동신문은 정치국회의에서 점검된 피해상황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장마철기간 강원도, 황북도, 황남도, 개성시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농작물피해면적은 만 9296정(11800만 평)이며 살림집 만 6680여 세대와 공공건물 630여 동이 파괴, 침수되고 많은 도로와 다리, 철길이 끊어지고 발전소 언제(댐)가 붕괴되는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김정은은 홍수피해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면서 당 창건(10·10) 75주년 기념행사 준비하는 데 있어 차질이 없도록 강력지시를 내렸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은 코로나19 사태와 홍수를 두 개의 도전과 위기라고 규정하고 반드시 극복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그 어떤 외부적지원도 거부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김정은이 당 창건일인 10월 10일까지 홍수피해복구 지시를 내린 것을 보면 이번 폭우가 얼마나 큰 재앙이었는지 짐작된다. 이 정치국회의에서 김재룡이 내각총리에서 해임(같은 날 국무위원회에서 해임관련 정령발표) 된 것만 봐도 그렇다. 김정은은 작년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자연재해 방지대책을 철저히 하며 국가적인 위기관리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한바 있었다(2020년 1월 1일자 노동신문).

특이점은 숙청의 성격은 아니다. 비록 내각총리에 해임되었지만 당중앙위 부위원장과 당부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직속부하였던 내각 부총리 김덕훈을 내각총리로,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까지 특진시킴으로 하루아침에 위치가 역전되었다. 김재룡의 심적 타격이 상당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열린 당 전원회의는 제8차 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모임 성격이 강했다. 당 전원회의는 당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틀 전(17일)에 소집을 결정하였다. 이 전원회의에서 제8차 당대회를 내년 1월에 개최할 것을 결정함과 동시에 당규약도 개정할 것을 결정하였다. 또 하나의 중대결정은 제7차 당대회(2016.5)에서 관철되었던 ‘경제발전5개년계획’을 다시 수립한다는 것이다.

임무 분담문제, 김정은이 직접 언급

이처럼, 김정은은 이달 들어 금년 들어 가장 바쁜 행보를 보였다. 어느 때 보다, 민생문제를 포함하여 당정군 관련 사안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지도하였다. 다른 때도 아니고 김정은이 가장 바쁘게 움직인 이 시기에 위임통치설이 나왔으니, 당사자인 김정은이 뿔이 날 만하다. ‘임무 분담’을 위임통치라고 했으니 말이다. 임무 분담이라는 표현은 김정은이 작년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직접 언급한 것이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사상을 전달침투하는 사업에서 중점을 두어야 할 문제들과 전원회의과업관철을 위한 작전과 임무분담을 치밀하게 짜고들 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모든 부문, 모든 단위가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구호만 웨치면서 빈말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임무를 똑똑히 확정하며 당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옳은 방법론을 세우고 실천적인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한낱, 임무 분담을 위임통치라고 허풍을 떨었으니 김정은의 속이 부글부글 끌었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