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포커스] 김정은, ‘수령’으로 추대될 조짐이 보인다

14기 최고인민회의대의원선거 김정은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 = 조선중앙통신 캡처

김정은이 이번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지 않았다. 지난 10일, 5년 만에 열린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당선자 명단에 김정은 이름은 없었다.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는 전혀 없었던 일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최고지도자의 당연직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북한의 제1기 대의원 선거가 실시된 이후 70년간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에 당선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정은 역시도 5년 전 열린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2014.3.9.)에서 ‘111호 백두산 선거구’ 후보로 출마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었다. 북한 매체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있다. 북한에서 대의원은 지역이나 군으로 이루어진 선거구마다 선출한다. ‘1 선거구 1 대의원’ 방식으로 북한은 1990년부터 687명의 대의원 수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은은 대의원 선거에 불출마한 것이다. 왜, 이 같은 돌발행동을 하였을까. 혹자는 정상국가로 가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하였다. 독재국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며 자신만의 권력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의지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견해로는 김정은이 특정선거구가 아닌 ‘전인민의 대의원’으로 추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체로 이 두 가지 해석으로 크게 나뉘고 있다. 다음 달 4월 초(9~10일)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를 통해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미리 전망해보자면, 여기에는 위의 두 가지 분석보다 더 큰 포석(strategic move)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최고지도자 직함의 변화를 예고

어떤 포석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수령’의 칭호와 연관돼 보인다. 즉, 김정은이 수령의 칭호를 받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은 이미 정치적으로는 수령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권력승계 이후 단 한 차례도 수령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김정일도 비록 ‘영원한 수령’으로 2012년(사망한 후)에 추대되었지만 ‘선대 수령님들’, ‘위대한 수령님들’이라고 김일성과 함께 지칭될 때만이었다. 이처럼, 지금까지 북한에서의 ‘수령’은 김일성의 대표적인 지도자 이미지이자 최고권위를 나타내는 상징 및 칭호였다. ‘수령’이 김일성만의 고유영역이라는 평가 아래 북한사회는 여전히 죽은 김일성이 다스리는 체제, 김일성의 유훈통치로 작동된다고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이 그 ‘수령’을 김일성과 공유하려고 하는 것 같다. 김정일 생전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북한 매체들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전조

북한 매체에서 여기에 대한 전조(sign)가 엿보인다. 3월 들어 북한 매체에서 부쩍 ‘수령’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는데, 김일성의 칭호와는 다른 성격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8일, 조선중앙TV의 방영이다. 방송 시작하면서 처음에 김정은의 명언을 내보냈는데 “수령, 당, 대중이 위대한 사상과 뜨거운 정으로 굳게 뭉쳐진 일심단결은 억만금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큰 재부이다”라는 문장이다. 이날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베트남 공식 친선방문 보도영상도 방영했는데, 바로 앞서 이번에는 김정일의 명언을 내보냈다. “한 민족의 위대성은 그 수령의 위대성에 달려있으며 한 인민의 미래는 그 수령의 현명성에 달려있다”, “현명한 수령의 령도를 받지 못하는 대중은 뇌수가 없는 육체와 같다.”라는 내용이다. 곧이어 <원수님 곁에는 인민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왔다. 여기에서 ‘원수님’은 김정은을 가리킨다. 그 가사를 보면, “원수님 곁에는 정으로 사는 인민이 있습니다. 원수님 한 분만 우러러보며 끝없이 따르렵니다”, “원수님 계시여 조국도 있고 인민도 있습니다. 원수님 한 분만 믿고 삽니다.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내용이다. 수령에 대한 김정일의 명언 뒤에 바로 이 노래가 나와서인지 왠지, 원수님을 수령님으로 바꿔 불러도 될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두 번째는, 지난 6일에 개최된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꾼대회’에 대한 노동신문의 선전내용이다. 노동신문은 9일자 신문에 김정은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참신한 선전선동으로 혁명의 전진동력을 배가해나가자》라는 제목으로 전문을 실었다. 김정은의 서한을 보면 이 대회가 왜 18년 만에 개최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이 서한에서 사상사업은 당 사업의 ‘중핵중의 핵’이라고 강조하면서 격변하는 현 정세하에 인민대중의 사상정신력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 혁명의 북소리를 더욱 세차게 울리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당사상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은 혁명진지, 계급진지 구축이라고 하며 제국주의반동들과 계급적원쑤들의 책동으로부터 당과 혁명을 옹위하기 위한 선전선동사업을 강도 높이 진행할 것도 주문하였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내세운 것이 ‘위대성 교양’이다. 그러면서, 직접 수령의 지위 및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히 파격적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금 길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그대로 실어본다.

위대성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령도자라는 데 대하여 깊이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됩니다. 수령은 인간과 생활을 열렬히 사랑하는 위대한 인간이고 숭고한 뜻과 정으로 인민들을 이끄는 위대한 동지입니다.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수령의 사상리론도 인민들을 존엄높이 잘살게 하기 위한 인민적인 혁명학설이고 수령의 령도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그 힘을 발동시키는 인민적령도이며 수령의 풍모도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고 인민에게 멸사복무하는 인민적 풍모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생활적으로 알게 하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위대성교양의 내용을 우리 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로 관통시켜야 합니다.”

가히 혁명적인 것으로 김정은이 수령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린 것이다. 북한에서의 수령(김일성)은 신적 존재였다. 그래서 수령의 신격화는 당연한 것으로 김일성은 조선의 하느님이라고 일컬어졌고 사후에도 김일성 영생론(설)뿐만 아니라 영생법전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북한이다. 이처럼, ‘신격화된 수령’을 김정은이 ‘인간적인 수령’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것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나는 우상화(신격화) 배격이다. 다른 하나는 수령의 자리 낮춤이다. 일반적으로는 전자가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노동신문의 선전 방향은 후자에 기운다. 특히, 14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수령은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자애로운 어버이’라는 사설이 그렇다. 이 사설은 김정은이 위의 서한에서 수령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 것에 대한 화답형이다. 사설은 수령을 인민주권, 인민정권과 연결시키며 정치적 역량으로 통일단결의 중심이라고 제시한다. 더불어 수령은 과학적인 로선과 투쟁방침들을 제시하고 인민대중을 승리의 길로 향도하는 영도의 중심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수령은 인민대중의 참다운 삶과 행복을 꽃피워주는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하였는데, 이 세 가지는 현재 김정은이 자신의 지도자 품격으로 내세우는 핵심이다. 이것들이 ‘수령’의 직임이라고 의도적으로 노동신문은 선전한다. 앞서 기술한 조선중앙TV에 방영된 김정은 칭송가에도 김정은을 인민의 어버이로 강력히 부각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정은 수령 등극은 매우 혁명적, 왜 이 카드를

이러한 정황들을 볼 때, 조만간 김정은이 ‘수령’의 칭호를 받을 것 같다. 빠르면 다음 달 초에 열리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김정은이 ‘수령’으로 추대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북한에서 수령은 ‘주석’과 ‘총비서’, ‘당위원장’과 달리 당규약이나 헌법에 최고지도자의 직함으로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수령중심제’ 체제에서 말이다. 이번에 공식적인 직함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김정은이 ‘수령’의 칭호를 받는다면, 왜 이처럼 큰 모험을 감행하는 것일까. 지난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 큰 변수였을 것이다. 18년 만에 사상대회를 열라고 지시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김정은은 인민대중의 실망과 불만을 잠재우며 민심이반을 한 번에 막을 수 있는 묘수를 계속 궁리했을 것이다. 그 해법이 바로 ‘수령’이다. 친부 김정일도 올라가지 못했던 자리인 만큼 쉬운 용단은 아니겠지만 결심한다면 우선적으로 그 높디높은 자리를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현재 북한매체들도 계속 그 자리를 김정은 맞춤형으로 계속 아래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줄기차게 수령(김정은)의 영도를 받지 못하면 인민은 부모잃은 고아의 처지와 다름 없다고 선전한다. 북한 매체들을 보면, 김정은이 수령이 될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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