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열 칼럼] ‘3대 세습’ 북한 통치자 김정은의 고민을 상상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설 명절 기념공연을 25일 삼지연극장에서 관람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6일 보도했다. 고모 김경희가 눈에 띈다. /사진=노동신문 뉴스1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보도 매체들은 지난달 26일 김정은의 설맞이 기념공연 관람 행사에서 검은 한복 차림의 김경희가 김정은 부부 옆에 앉은 모습을 보도했다. 김경희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은 2013년 12월 남편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지 약 6년 만이다. 이로써 그동안 그녀의 행방을 둘러싸고 제기돼왔던 ‘숙청설’과 ‘사망설’은 일단 잠재워졌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김경희의 등장에 대해 △ 김정은의 체제 장악이 여전히 미흡한 수준임을 방증, △ 김경희의 건강이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로서, 그녀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김정은에게 향할 ‘고모 독살설’을 불식하는 한편 나아가 고모부 처형 책임을 고모에게 넘기는 김정은다운 ‘묘수’이자 ‘꼼수’, △ 백두혈통 단합 과시와 백두혈통 중심의 대내 결속 강화 의도라는 등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앞으로 김경희가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에 따라 판단의 정확성 여부가 드러나겠지만, 김경희의 나이(1946년생)와 우울증·알코올 중독 등 과거 병력에 따른 건강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북한 권력 구조와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노동신문에 게재된 김정은 부부와 고모, 여동생만이 자리한 사진은 ‘백두혈통 단합 과시’라기보다 오히려 몰락해가는 가문을 보는 듯 스산하기까지 하다. 75년간 권력을 독점해 온 백두가문과 혈연관계에 있는 인물이 적지 않을 터인데, 그들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각설하고, 김정은이 제3대 북한 통치자로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체제 장악이 미흡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 차제에 절대권력자로서 김정은의 고민은 과연 무엇일까를 상상해 본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생존 본능과 함께 종족 유지 본능을 갖고 있다. 이를 김정은에게 대입해 본다면, 김정은의 모든 관심사는 ① 선대로부터 이어진 절대적인 권력을 확고히 유지(생존)하는 한편 ② 그 절대권력을 자신의 후손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종족 유지)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김정은의 권력 장악 정도에 대해 결론부터 내린다면, 현재 북한 내에 김정은에게 도전할만한 인물이나 세력은 전무(全無)하다. 바꿔말하면, 김정은의 체제 장악 수준과 그에 따른 권위는 확고하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2013년 12월 친고모부인 장성택을 반당반혁명 혐의로 처형했다. 집안의 어른으로서 상대하기 매우 껄끄러웠던 대상을 제거한 것이다. 이어 2017년 2월에는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했다. 자신의 도전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우환을 없앤 것이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숙청과 철직 등의 공포통치로 이른바 어전회의(御前會議) 참석자들을 길들였다. 2011년 12월 눈이 내리는 가운데 김정은과 함께 김정일 운구차를 옆에서 호위하며 걸었던 ‘운구차 7인방’의 1인이자 김정은의 군사 과외선생이라고 하던 총참모장 리영호는 2012년 7월 해임된 이후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또 2015년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이외에 최영건 부총리를 ‘성과 부진’을 구실로 처형하는 등 고위 간부 60여 명을 숙청하기도 했다.

이들 모두는 김정은에 도전했다기보다는 김정은의 권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본보기식’으로 처형된 일종의 희생양이었다.

다음 두 가지 장면도 북한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지난 2016년 10월 북한 조선중앙TV가 내보낸 기록영화를 보면, 서열 2위로 평가받는 황병서 총정치국장(당시)이 무릎을 꿇고 입을 가린 채 김정은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락없이 임금 앞에 부복한 신하의 모습이었다.

비슷한 장면은 2년 전 김영남과 김여정이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대표단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벌어졌다. 공항 귀빈실에 먼저 입장한 김영남은 명색이 헌법상 국가수반인데도 불구하고 김여정이 들어오자 그야말로 ‘깍듯하게’ 먼저 상석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이런 장면들은 백두혈통을 제외하고는 북한 주민 모두가 –지위의 높낮이는 있을지언정- 군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신민(臣民)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체제에서 최고 권력자의 권력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공론(空論)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다만 김정은이 절대권력을 확고하게 장악(생존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선대 통치자와는 전혀 다른 류(類)의 고민을 안고 있다. 다름 아니라 자녀들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평가에 따르면, 김정은은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아들들의 나이는 각각 10살, 4살이고 딸은 7살이다.

만일 가까운 시일 내에 김정은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비록 권력의 부자세습이 관행이 되긴 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규정한 규범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권력이 이들 어린 자녀들에게 아무런 문제 없이 이양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북한의 유일 지도자로서, 또 그 지위를 자손에게 물려줄 책임(종족 보존 문제)이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그야말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어 ‘후계 문제를 빛나게 해결’한 전례를 따라, 다시 한번 ‘후계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더불어 하나뿐인 고모부를 잔혹하게 처형하고 이복형을 독살한 것은, 자신의 ‘현재 권력’ 확보와 함께 자기 자녀들에게 ‘미래 권력’을 넘겨주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문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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