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민 교수] “北, 파키스탄식 핵보유 공인 추구”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의 아시아 순방 이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최종 라운드가 한창이다. 상황은 중국 측에서 이뤄지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북(訪北)이 6자회담과 결부돼 추진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핵관련 외교 실무 총책인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와 물밑 접촉을 진행했다.

한편, 미국은 중국에 북핵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은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갖겠다는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경고도 계속 보내고 있다. 회담 파행을 계속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몇 가지 징후가 파악됐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아직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면 한국과 미국 간의 입장 차이는 분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북핵이라는 난제(難題)에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해져 동북아는 외교적 교착 상태에 빠져든 분위기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국의 공조가 중요한 시기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다. 현재의 난국을 헤쳐나갈 해법은 무엇인가? <데일리엔케이>는 국내 외교안보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소장 학자들을 만나 그 해답을 구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늘은 그 두 번째로 윤덕민(尹德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만났다. 윤 교수는 핵문제와 동북안 안보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대표적인 소장 학자. 그의 견해를 통해 현재 동북아에 어지럽게 펼쳐진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먼저 동북아 정세에 대해 개괄적으로 진단해보자. 이 지역은 현재 북한 핵문제에 이어 각국의 과거사와 영토문제, 동맹 문제로 외교 태풍이 불고 있다. 이처럼 동북아 형세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지금은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진통의 시기로 보인다. 100년 전에는 서구로부터 제국주의 세력이 몰려왔다. 그때는 근대화 논리에 입각한 움직임이었다. 100년이 지난 후 세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 지역이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동북아 질서 재편 과도기에 돌입했다.

▲ 인터뷰 중인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중국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일본도 패전 후 60년이 지나면서 ‘보통국가화’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한국도 나름대로 경제성장과 민주화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할을 원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최강 미국이 자국의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미국이 세계를 보는 눈과 자국에 대한 위협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이 지역 질서 변화에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핵문제가 무엇보다 현안이다.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되어 가고 최근에는 핵보유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북한 핵 보유 의지와 능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 핵이 협상용이냐, 실제 보유용이냐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협상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지는 않는다. 핵무기 개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50년대 중반부터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국제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협상해왔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핵을 가지지 않겠다고 국제사회에 세 번이나 약속을 했다. 그러나 모두 지키지 않았다. 첫 번째는 1985년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이고, 두 번째는 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IAEA ‘핵 안전조치 협정’을 받아들인 것이고, 세 번째는 제네바 합의이다. 협상용이었다면 여기서 타결을 봤을 것이다.

매번 북한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1985년 NPT에 가입하는 대가로 소련으로부터 차관공여 협정이 맺어지고 MIG-23이나 샘 미사일 등의 최신 무기를 제공 받았다. 그러나 NPT 가입을 하면 받게 되어있는 IAEA 핵사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냉전이 끝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시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갖게 됐다. 그러자 북한은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모두 철수하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훈련도 중단되고 ‘비핵화공동선언’도 나왔다. 그러나 결국 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제네바 합의도 마찬가지다.

北, 핵무기 공인받는 ‘파키스탄식 해법’ 추구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북한과의 협상이 진행됐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면서 합의점을 만들어 왔는데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 핵은 협상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핵문제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유엔 안보리로 갈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아직 여러 단계가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를 공인받는 ‘파키스탄식 해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나오면 북한도 선택을 해야 한다. 핵무기 개발이 체제 생존을 어렵게 한다는 인식이 들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협상이 어렵지만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북한을 향해 핵을 포기하면 생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핵을 고집할 경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포괄적인 협상안을 이미 제시하지 않았는가?

3차 접촉에서 미국이 협상 타결을 위한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다. 그 전까지 미국은 ‘선 폐기 후 보상’ 논리였는데 사실상 동결 대 보상의 입장을 용인한 것이다. 핵 폐기 준비단계에서 한국이나 중국이 에너지를 지원한다면 여기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폐기에 대한 준비단계를 두어서 거기에 대한 보상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협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도 협상 당시에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여러 정치적 사건을 거치면서 북한 입장이 바뀌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핵을 개발했고, 미국이 적대시 정책만 철회하면 회담장에 나오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북한이 구체성을 담은 제안을 해온다면 6자회담이 더 쉬울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 포기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다. 사실 이것은 자신의 핵개발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전의 일환이다.

‘대북 정대시 정책 포기’ 요구는 선전전

▲’적대시정책 철회’요구는 북한의 선전일환임을 강조하는 윤 교수

미국의 고립, 압살 책동 때문에 핵을 개발한다는 논리는 2002년부터 등장했다. 그 전까지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논리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2002년 미국의 제임스 켈리 방문으로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핵개발이 드러나면서부터 ‘미국이 우리를 압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는 논리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논리가 바뀌게 된다.

이전에는 평화적으로 원자력을 개발하고 있다는 논리를 사용했다. 즉, 미국은 핵개발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고 북한은 평화적 용도라는 것을 강변했다. 그러다가 2002년부터는 미국이 압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를 세웠다.

-북한이 논리를 바꾼 이유는.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숨기기 어려우니까 그런 논리를 들어서 핵개발을 정당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압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 핵개발 역사는 50년이다. 미국이 과연 그동안 북한에 압살정책을 계속 써왔는지 생각해보자. 냉전시기에 미국이나 소련은 동서 양진영에 속해 있는 국가에는 압살정책을 쓰지 않았다. 소련이 한국에 대해 붕괴정책을 쓰지 않았고 미국도 북한에 그런 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 정부나 클린턴 정부에서도 북한 붕괴 전략을 쓰지 않았다.

그럼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부시 정부가 과연 그런 정책을 사용했는가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한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새로운 형태의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이것보다 훨씬 전이다. 악의 축 발언은 2002년 1월에 나왔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 역사는 50년 이상이다. 고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개발도 96∼97년부터 이미 시작했다. 그 당시는 클린턴 정부시절이다.

제네바 합의가 이행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을 때 북한과 파키스탄 간에 가장 많은 핵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악의 축 발언 이전부터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이 압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자신들의 핵개발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보여도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는 북한이 만들어낸 선전전에 불과하다. 그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북한이 펼친 선전전이 일부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자주’ 외치면 미국에 더 의존돼

-그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궁극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은 핵을 통해 체제유지를 하려고 한다. 현재 김정일 체제는 알다시피 ‘선군정치’로 대표되는 군사우선 노선이다. 선군정치의 뒷받침은 강력한 군사력이다. 이 군사력의 정점에는 핵무기가 있다. 80년대를 경과하면서 남북 간의 균형이 남쪽으로 완전히 쏠리게 됐다. 남북한 간의 군사균형의 변화, 경제력의 현격한 차이가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결정적 원인이다. 지금 남한의 국방비는 북한의 총 GNP보다 높은 상황이다. 체제 경쟁에 실패하면서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흡수통일을 막고 자신들의 국방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핵을 개발한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면 이미 남북한 간의 군사적 균형은 깨졌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북한핵을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투자해서 군사균형을 유지해왔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이러한 군사균형이 붕괴되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핵을 개발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핵을 개발하게 되면 우리 경제는 버틸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전기의 5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 공급국은 다 외국이다. 그들 나라가 공급하지 않으면 우리는 버틸 수가 없다.

-일부 젊은이들이나 ‘자주’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 북한 핵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우리도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방법은 미국의 핵무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MD(대량살상무기방어)체제로 더욱 깊숙이 편입해야 된다. 우리를 ‘자주적’으로 만들자고 하는 것은 결국 더욱 미국의 방어망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직접 보고 숫자를 세보지 않아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북한은 89년 5MW(메가와트) 원자로를 70일 정도 중단한 적이 있다. 그 때 추출한 플루토늄 보유량이 12-14kg 정도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국내외 정보기관의 시각이 일치한다. 국가정보원에서는 1-2개 정도 비행기에 실어 날을 수 있는 핵무기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핵기술은 60년이 넘은 기술이다. 북한이 플루토늄을 추출한 지 16년이 지났다. 핵무기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과정이 핵물질을 추출하는 과정이다. 이미 인프라에 대한 선행투자도 이루어졌고 재처리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16년의 시간 동안 질적으로 핵무기를 고도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2002년 북한이 왜 핵 동결을 해제했는가라는 의문이 여전하다. 이것은 핵무기를 고도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시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핵무기를 만드는 초보단계에서는 5-8kg이 필요하지만, 중급 정도의 기술이면 3kg으로도 제조할 수 있다. 8,000여 개의 핵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했다면 미국 국방정보국(DIA)가 추측하는 대로 15개 정도가 될 수 있다.

핵포기 대가로 에너지 지원하는 구도로 가야

-북한 핵 보유 선언에 대해 정부는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데.

협상을 해야 되는 입장에서는 북한 핵능력을 인정해주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겉으로는 부정해야 한다. 핵이 있다는 입장을 인정하면 협상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에너지를 지원하는 협상구도로 가야 한다. 핵무기에 대한 협상은 군사적인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막아야 한다.

-협상은 협상이지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허점이 있어서 되겠는가.

안보라는 것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표면적인 평가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평가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는 미국 DIA 주장이나 운반체계의 고도화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탄도미사일은 파괴력 있는 탄두를 싣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기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은 100% 핵무기 개발과 병행해서 해석하게 되어 있다. 탄도미사일에 핵을 싣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에 대북지원을 지렛대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책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여러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이 우리가 생각하는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어서면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다.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6자회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부시 정부의 대응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페리 국방장관이 1차 핵위기 때 기록한 문서를 다시 읽어 본 적이 있다. 그 문서에는 북한이 재처리를 할 경우에는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고 되어있다. 당시 미국은 재처리를 레드 라인으로 본 것이다. 군사적 수단까지 포함되는 발상이었다.

북핵 용인하면 NPT 체제 유지 못해

▲ 미국의 대응방식도 문제점이 있음을 밝히는 윤 교수

부시 정부는 말로는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 체제에 많은 비판을 가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없다. 결국 북한은 레드 라인으로 생각되는 것을 다 넘었다. 재처리도 했고, 재처리한 것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핵보유 성명까지 발표하고 미사일 모라토리엄 해제 선언까지 했다. 핵 이전 위협도 가했다. 미국은 말로 경고하는 것 이외에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권문제나 낮은 수준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같은 저강도 전략만 구사했다.

-부시 정부가 클린턴 시절과 다르게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이유는.

부시 정부는 모든 최우선 과제를 중동에 두고 있다. 이라크에 민주주의 기지를 만들어 중동에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네오콘의 전략이었다. 부시 2기 들어서 외교 안보 인프라가 중동에 집중되어 있다. 다음은 이란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이 핵보유 성명을 낸 것은 그들이 일탈해도 미국이 벌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북한의 계속되는 테스트에 부시 정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북한은 이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부시 정부가 당분간 북한의 핵 보유를 방관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부시 정부는 북한 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을 용인하면 NPT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 북한이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만들었는데도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는다면 NPT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세계의 패권국이 칼을 뽑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은 중동질서를 관리하면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다루려고 한다. 그런데 북핵문제가 자꾸 커지고 여론화되면서 더 이상 중동에만 머물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부시 정부는 진지한 대화를 위한 마지막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이 이란 문제를 EU(유럽연합)에 넘기는 형태인데.

중동 정세의 미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달라졌다. 강경으로 나가면서 이란에 칼을 뽑으려다 주춤한 상태다. 미국은 EU의 중재역할을 인정했다. 이란에 여러 가지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어찌 보면 이란 문제에 대한 여유가 미국에 생겼다. 이제 미국의 관심이 다시 아시아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수단은 군사력밖에 없다. 미국은 가급적 군사적 수단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중국 역할론은 어떻게 보는가?

북한에 대해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국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의 노력을 강화시키고, 중국에게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과 명분을 줬다. 그것이 소진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음 단계로 가는 문제도 중국과 논의할 것이다.

북핵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는 구도

지금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어떻게 할지도 변수다. 94년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질 때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1994년 북핵문제가 유엔 안보리로 넘어간 상태에서 IAEA가 대북 제재 결의안을 제출했다. 중국이 예상과 다르게 여기에 찬성을 했다. 안보리 제재에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시사였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로 가는 강력한 유인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 역할이 중국에 놓여 있다. 아직 중국이 어떻게 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중국 역할론은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아지고 있는데.

중국 자체도 역량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제적인 생명줄을 중국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끊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에 놓여져 있다. 지금까지는 판세를 즐겼지만 중국도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중국이 대북 제재에 찬성할 것인가.

중국도 궁지에 몰리면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 핵무장을 용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이나 대만이 핵무장으로 가는 연쇄 도미노가 일어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중국을 향해 ‘북한 제재에 찬성하지 않으면 경제 제재를 취하겠다’고 나오면 중국이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의 번영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세계화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기 때문에 관계악화를 버티기는 어렵다. 그때 가서는 중국도 판단해야 될 때가 올 것이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북핵문제를 언제든지 원위치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갈 데까지 가보려는 것은 아닌가?

핵 포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북한의 협상복귀 촉구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은가?

현재로서는 외교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6자회담을 복원시켜 진지한 협상을 해보겠다는 것이 주변국의 입장이다. 주변국이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우리 입지 구축 위해 한미동맹 반드시 필요

▲ 한미동맹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윤 교수

-한미동맹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현재 일본과의 마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혼자 힘으로는 주변국 한 나라도 상대하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 시절 러시아 때문에 외무장관 3명이 갈렸다. 현재 우리 주변국 중에서 가장 약한 국가가 러시아다. 러시아만 가지고도 우리 외교가 뒤흔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과 일본이 대립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동북아에서 우리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일과정에서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독일 통일의 교훈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모든 유럽의 지도자들이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통일의 틀을 잡아준 사람은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었다.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키고 수천만 명의 인명을 살상한 독일의 통일에 주변국이 찬성하게 만든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독일 콜 수상과 미 행정부가 서로 강한 연대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미사일 무기에 대응한 미국 미사일 기지를 유럽에 배치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모든 서유럽 지도자들이 자국 배치를 꺼렸지만 콜 수상이 독일 배치에 찬성했다. 미 행정부는 독일 콜 수상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래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미 행정부 내 사람들은 무조건 콜 수상이 이끄는 서독 정부를 도와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했던 것이다. 미국이 프랑스의 미테랑과 영국의 대처를 설득하고 고르바초프도 동의시킨 결과, 통일 독일이 출연했다. 우리나라 주변국 중에서 한 나라만 반대해도 남북통일이 어렵다. 통일 방향으로 가려면 미국이 우리 편이 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통일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공백이 생긴다면.

냉전시기에 미국이나 소련만 없어지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했다. 냉전 해체 결과 사실이 그랬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동북아에 미국의 공백이 생긴다면 이 지역은 정글화될 것이다. 정글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면 그 혼란과 분쟁은 우리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세계 10위 국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중국, 러시아, 일본이 자리잡고 있는 동북아에서는 제일 낮은 수준이다. 동북아에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지탱하기가 어렵다.

튼튼한 한미동맹 통해 일본, 중국 적절히 견제

-최근 정부에서는 남방 3각동맹과 북방 3각동맹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중에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우왕좌왕 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튼튼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강조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다면 적절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사실상 미•일과 중국의 대립으로 볼 수 있는데, 한미동맹을 통한 균형자 역할은 모순이 아닌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밸런스(Balance)를 유지해왔다. 60년대 말에 미국이 오키나와를 반환하면서 일본을 반공 전선의 가장 선두에 세웠다. 이런 조치를 취하자마자 미국은 중국에 가서 관계개선을 했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은 1차 ‘닉슨 쇼크’라고 부른다. 1996년에 미국과 일본은 공동안보선언을 했다. 그리고는 바로 중국에 가서 일본 경제의 실패를 비판했다. 이것이 2차 쇼크이다. 미국이 일본 편만 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균형자 역할을 추구한다. 무조건 일본 편만 든다는 것은 현실감각이 없는 판단이다.

-미국과 중국은 결국 대립관계로만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계화 시대에 중국은 굉장히 중요한 미국의 생산기지이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낸 것이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미국에게 중국만큼 중요한 대상이 없다. 단순히 대립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상호 파트너라는 인식도 서로 공유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류나 경제협력은 계속 강화해야 한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유럽을 봐도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많다. 그러나 외교적 현안은 현안대로 협력해 간다. 북핵문제 해결에서 한일공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북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외교적 비전을 말한다면.

100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근대화의 논리가 다가왔을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근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고 일본은 성공했다. 100년 후 지금 우리에게는 세계화의 논리가 다가와 있다. 정보통신 혁명, 군사기술의 혁신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이러한 논리를 잘 이해하고 도전들을 극복해가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너무 민족주의적 시각, 국수주의적 시각만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100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세계화 시대에 맞는 외교와 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인터뷰/정리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