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軍 정치적 위상 점점 낮아지는데…경제건설 과업 갈수록 증대

가용 군 역량 총동원돼 건설과제 주도적 수행…군인들, 턱없이 적은 배급에 어려움 호소

김정은 삼지연 2단계 준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열린 백두산 삼지연군 읍지구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군의 역할은 갈수록 증대되는 모양새다.

실제 북한 인민군은 삼지연(양강도), 원산·갈마(강원도), 양덕온천(평안남도) 등 현재 역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각종 관광지구 건설현장에 투입돼 경제건설을 주도하고 있고, 김 위원장 역시도 경제건설 부문에서의 군의 선도적 역할과 노력을 지속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대외환경과 경제적 여건 속에서 군이 수행해야 할 과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정작 김정은 시대 들어 군의 정치적 위상은 약화되고 군에 대한 당적 통제는 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군 내부의 불만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군정치’와의 결별…잦은 인사로 군부 힘빼고 당적 통제 강화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선대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선군’(先軍)을 과감히 도려내고 헌법 개정을 통해 당 중심의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정운영 시스템으로의 복원을 꾀했다. 군부가 과거 김정일 집권 당시처럼 정책 결정 과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당의 통제 아래 가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 당시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일 시대 최고 권력기관이였던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했고, 올해 4월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또 한 번 헌법을 개정해 ‘선군사상’ ‘선군혁명노선’이라는 용어를 조문에서 삭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줄곧 아버지 김정일 체제 하에서 비대해진 군부의 힘을 빼는 작업도 단행했다. 그는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등 군 수뇌부에 대한 잦은 인사와 군 장성들의 계급 강등·복권 등 소위 ‘견장정치’로 군부 길들이기에 나섰고, 이를 통해 군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다.

무엇보다 황병서의 좌천 이후 군 총정치국장이 당 최고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군부의 낮아진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일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질적 군부 서열 1위로 여겨지는 총정치국장이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임해왔던 그동안의 전례에 미뤄볼 때, 이는 군부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김정은, 경제건설에서의 軍 역할 지속 강조…금강산지구 개발도?

이처럼 군의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대북제재 여파에 따른 경제난 속에서 ‘자력갱생’의 기치 아래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국가 건설 사업에서의 군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군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주체로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마무리되는 2020년까지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에 대내외에 발전상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설 사업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데, 대북제재 여파로 주민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실상 건설 동력은 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제 김 위원장은 올해 2월 인민군 창건 71년을 맞아 인민무력성을 방문해 “인민군대에서는 ‘조국보위도 사회주의 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라는 구호를 계속 추켜들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 관건적인 해인 올해에 한몫 단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현재 가용 군력을 총동원해 삼지연군 꾸리기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양덕온천관광지구 등 3대 건설사업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 같은 건설사업은 실제 군이 책임지고 맡아서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금강산 현지지도 당시 김 위원장이 지시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 개발도 향후 군이 맡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건설장으로 이동 중인 화물열차 위에 북한 군인들이 타고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각종 건설 동원에도 배급은 턱없이 부족”…군 불만·부담 가중될 듯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군 건설부대와 보안성 7총국, 8총국 등 전문역량이 건설사업을 맡아왔는데, 김정은 시대에는 활용 가능한 모든 군 역량이 총동원돼 각종 건설과제들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에 미뤄 향후 금강산지구 건설도 군이 주관할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재 삼지연 꾸리기 사업은 민군이 합동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양덕온천지구 건설은 군 특수전사령부, 원산갈마지구는 인민무력성 건설국이 주도하고 있다. 3대 역점사업은 아니지만 최근 김 위원장이 직접 준공식에 참석한 중평남새온실의 경우에도 군 공군사령부가 맡았고, 해당 건설에는 청진 소재 김책공군대학까지 총동원됐다.

이런 가운데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교착에 따른 제재 장기화 국면에서 군에 경제건설 과업을 부여하는 현재와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어려운 대내외 여건에 군인들의 생활도 타격을 받고 있어 경제건설 총동원에 대한 군 내부의 불만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지난달 중순 인민무력성 후방총국에서 군의 평시물자 자부담(자급자족) 비율을 갑자기 40%로 늘리라고 했다. 군 자체적으로 식량을 더 확보하라는 이야긴데, 건설사업 동원 때문에 부업 농사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이런 지시가 내려져 군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소식통은 “군관 본인과 가족들에 차례지는 배급도 올해에는 확실히 줄었다”며 “매달 한 달 치 배급을 주기는 하는데 규정 정량미대로 주지 않고 양을 적게 주고 있어 ‘보름 먹을 양을 주고 어떻게 한 달을 살라는 것이냐’는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5개년 전략을 마감하는 해인 내년 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3대 건설과제뿐만 아니라 지역별로 추진하는 지방 건설대상 준공을 서두를 것이고, 이에 따라 지금보다 더 많은 군 역량을 건설사업에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며 “군의 외화수급이나 물자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과업이 과중될수록 군이 짊어질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