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에 공세적으로 대응하라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생존본능을 지니게 된다. 사람들이 모여 구성하는 국가 역시 매한가지다. 그 밖의 모든 인간 가치들은 출생 이후에 생존을 위해 부차적으로 필요한 산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증진시킨다는 범위안에서만 국가에 권한을 부여하려는 경향이 짙게 나타났다. 국가는 그것을 구성하는 국민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해주는 데 1차적인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굳이 사회계약론이라는 거창한 논의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그 같은 내용은 개인과 국가에 공히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존(survival)’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철학이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인간과 국가의 생존을 향한 의지(will to survival)는 현대 국제정치학에 있어 공세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라는 현실주의의 강력한 계보를 형성했다. 그러나 말이 ‘공세적’이지, 이 이론은 생존이라고 하는 방어적인 대전제 하에 모든 논리를 연역해가고 있다. 무정부적인 국제체제 속에서 국가들은 생존이라는 제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의 의도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방어적 입장이 행동양식으로는 공세적으로 발현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생존을 위해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공세적 현실주의의 안보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군사도발과 관련하여 ‘적극적 억지’ 혹은 ‘선제적 억지’의 개념들이 내용을 달리하며 사회 내부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천안함 피폭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재연된 비극이기에 국민 원성의 비등점은 절정에 달해있다. 이번에는 민간인 사망자도 발생하여 총 사망자 수가 4명으로 늘어났다. 북한은 이번 도발에서 민간인에 대해 사용이 금지돼 있는 비인도적 살상무기인 ‘열압력탄’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에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자조섞인 목소리에서부터 북한이 추가도발을 감행해오면 그 몇 배로 보복하여 도발의지를 분쇄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즉각 북한을 폭격하여 그 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점에 비춰볼 때 우리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은 정부에 수세적 방어를 넘어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용되는 용어는 다르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감정의 근저에는 공세적 현실주의의 기본철학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와 같이 남북한이 서로를 실제적인 주적(主敵)으로 인식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안보 개념이 가장 보수적인 형태로 정립돼야 한다.


이 같은 안보의 개념에는 어떠한 유연성이나 감상적인 사고도 개입할 공간이 없으며, 최대주의적 안보의 개념 틀에서 무고한 국민이 단 한 명이라도 적국의 공격에 희생되는 상황은 국가안보의 실패로 규정돼야 한다. 이 같은 개념으로 볼 때 우리 정부는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이던 박왕자 씨가 피살됐을 때 이미 공세적인 대응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 채 5개월 밖에 안됐던 시점이라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성(慣性)이 잔존했었고, 북한이 생떼를 쓰는 바람에 사건 해결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 후 북한은 2009년 4월 미사일 발사, 5월 2차 핵실험, 11월 대청해전 도발, 올해 3월 천안함 폭침, 그리고 이번의 연평도 군사도발 등 일련의 메가톤급 무력도발을 순차적으로 감행하고 있다. 도발의 수위도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소모적인 방법으로는 북한에 경각심을 심어주지 못한다. 또한 그들을 어르고 달래는 방법은 더 큰 도발의 씨앗만 키운다는 점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했다. 충분히 안 줘서 북한이 저렇게 됐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퍼주는 것도 틀렸고, 안주는 것도 잘못됐으며, 중요한 건 ‘잘 주는 것’이라는 대안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나쁜 행위에 대한 보상, 혹은 나쁜 행위를 하지 말아 주도록 예방적 시혜를 베푸는 것은 생존과 안보를 위한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유화'(appeasement)가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경험으로 체득했다면 생존과 안보를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공세적 안보전략으로 귀결된다.


북한의 도발 조짐이 보이면 그들이 액션을 취하기 전에 즉각적으로 선제공격을 취하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해안포 진지에 대한 우리 K-9 자주포의 대응타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도발 징후가 포착될 시 사전에 공군력을 동원하여 그 일대를 외과수술식으로 정밀폭격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돼야 하며,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시에도 그것의 수준에 관계없이 즉각적이고 대량적인 군사보복으로 응해야 한다. 또한  북한에 대한 공세적 균형의 일환으로 핵보유의 필요성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핵을 보유하는 전략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확전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이 북한 핵의 존재라면 그 같은 볼모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방안들을 강구함에 있어 확전(擴戰) 혹은 개전(開戰)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바꿔 말하면 공세적 안보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와 안보에 대한 올바른 국민의식교육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의 본질과 우리의 생존 및 안보를 위해 왜 공세적인 안보전략이 필요한가를 국민들에게 잘 이해시키고 그것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로마 제정시대의 역사가인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는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나쁜 평화가 지속되는 것은 전쟁보다 못하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감수해야 하며 평화를 구걸하며 나쁜 평화를 근근이 이어가는 것은 안보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로 이 부분을 망설였으며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군부는 우리의 망설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도발을 자행해왔다고 생각된다. 희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늘 확전을 경계해왔고, 확전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차후에 더 강도 높은 도발을 자행하여 우리를 압박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 하는 나선형 안보 불안이 한반도에 일상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대남인식을 바꿔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11월 28일부터 시작된 서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관련하여 북한이 추가도발을 해 올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추정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리 사회 내부에 ’11월 28일 전쟁설’까지 유포되면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확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의연해야 한다. 언제까지 북한을 두려워하며 그들이 잠잠히 있어주기를 기원이나 할 것인가?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우리의 생존과 안보를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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