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칼럼] 영국은 되는데 한국은 안 되는 것

/사진=영화 ‘크로싱’ 스틸컷

지난 16일 영국 외무성 (Foreign & Commonwealth Office)이 전세계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존중은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다. 이 가치의 바탕 위에 강력한 국가기관들과 책임 있는 정부, 자유로운 언론, 법의 지배, 모든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가 형성 된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에리트리아, 수단, 투르크메니스탄, 시리아 등 북한과 함께 다양한 국제 인권 지수에서 항상 최하위 대열에서 어깨를 견주는 30개 나라들을 ‘인권우선국가(Human Rights Priority Countries)’로 지목했다.

표현의 자유, 여성 및 아동 인권문제, 현대식 노예제도 등 30개 나라들에 존재하는 각종 인권문제들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나라들을 거명해서 챙피주기용(naming and shaming) 보고서가 아닐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국 외무성이 보고서를 낸 의도를 성의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제각기 헌법, 정부, 법률이 있는 나라들이지만, 영국 정부는 인권의 기본적인 기준에 있어서 이 나라들이 영국과 같은 기준을 준수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이 서른 개 나라들이 자국의 사정에 따라 준비가 됐을 때, 영국이 비준한 핵심적인 유엔 인권규약을 받아 들이도록 지속적으로 권유할 것이다.”

거기다 영국정부는 인권증진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지원했음을 밝혔다. “어린이 보호와 어린이 복지증진을 위한 가능한 최상의 기준을 보장하도록 각국의 노력을 지원해왔다. 경찰, 공무원이나 교육자들과 같은 핵심적 종사자들의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아동보호를 위해 법적 체계를 강화하고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더욱 견고한 체계를 발전시키는데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2019년 북한인권 상황에 어떤 향상도 없었다”라는 말로 북한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종교의 자유 부문에서 국제적 지표가 되는 ‘오픈도어즈(Open Doors)’의 연례 랭킹에 북한이 탑을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국경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의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에서는 180개 국가 중 179위라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북한의 전 주민들이 감시와 구금, 심지어 종교나 신념의 이유로 처형의 위기에 직면했으며, 주민들이 독립적인 언론이나 외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유린은 “명백히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에 진행된 북한의 3차 보편적 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영국은 강제노동 사용의 중단, 고문방지협약 가입,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위배되는 모든 감시와 검열의 중단을 요청했으나 이에 대해 북한은 답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영국정부가 노력한 내용들도 의미 있어 보인다. “영국은 인권문제에 대해 양국간의 관계를 이용해서 북한 당국과 지속적으로 접촉했다”며 포용정책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 노력은 평양과 런던에서 동시에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북한 외무성 당국자들과 만나서 인권문제를 거론했다”며 영국 외교관들은 “기회가 보이는 곳에서는 점진적인 변화를 촉구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보고서 발행에 며칠 앞서 영국은 제재 대상자와 제재 이행법을 담은 ‘세계인권제재결의안 2020(Global Human Right Sanctions Resolution 2020)’을 발표했는데, 북한의 인민보안성(사회안전성)과 국가안전보위성(국가보위성) 두 곳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내 인권 유린에 연루된 것으로 판단하고 제재 대상에 올렸다.

영국 정부는 북한을 포함해 세계 여러나라의 인권문제를 평가하고 제재를 가하면서 인권에 있어서 ‘영국과 같은 기준을 준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영국 자국법에서 규정한 영국 전통의 인권 가치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따르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다. 인권문제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정해둔 약속이라는 게 있다. 유엔에 기본이 되는 ‘세계인권선언’과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 사회권)’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CCPR, 자유권)을 말한다. 따라서 보고서에서도 “영국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법에 근거해서 각국이 책임을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북한당국이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영국 정부가 ‘엄중한 도발행위를 감행’했고 이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레토릭이다. 하지만 영국 외무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유지했다. 규칙 기반 국제 시스템을 위한 그리고 전 세계의 인권유린 희생자를 대변한다는 영국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문재인 정부의 대응과는 엄청난 대조를 보인다. 지난달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은 “스스로 화를 청하지 말라”는 담화를 내보냈다.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에 대해 ‘잡도리를 단단히’ 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을 퍼부었고, ‘그 대가를 남조선당국이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한국의 북한인권 단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대응하며, ‘잡도리를 단단히’ 한다는 걸 북한 당국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대응에는 두 가지 지점에서 큰 문제점이 보인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 원칙의 부재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와 시민사회는 ‘협치’를 통해 상호 역할과 기능을 보완 또는 대체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국제적인 상식이며 민주주의의 핵심적 메커니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년 이상 북한 주민의 기본적 인권을 위한 활동, 국제적 캠페인과 애드보커시 등 한국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영역을 시민사회가 맡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엄포에 대한 답변으로 대북전단을 보내던 두 단체의 법인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이어서 북한 인권과 정착지원 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를 추진하겠다며 ‘1차 사무검사 대상은 등록법인 25곳’이라고 밝혔다. 즉 2차, 3차의 사무검사가 있을 것을 암시했다. ‘북한인권 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북한인권 운동 영역을 ‘잡도리’하고 있다. ‘촛불혁명’이라는 민주주의의 힘에 근거해 들어선 정권의 결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독재적 요소가 다분하다.

두 번째 문제점은 기준의 부재이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인권 기준인 세계인권선언과 자유권과 사회권이 있다. 북한은 1981년에 자유권과 사회권에 가입한 당사국이며 이는 한국보다 9년이나 앞선다. 국제적인 기준에 근거해 한반도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북한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인권 문제가 정치화 되지 않을 명확한 기초가 이것이다. 북한당국의 위협에도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방패이다. 영국 정부는 인권기준을 따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쓰고 있다고 자랑한다. 인권 얘기 안 나오게 할테니 대화 해달라는 자세는 영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인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만 서 있으면 북한당국과 대화 하기 위해서 북한인권 이슈를 정치화하지 않아도 된다.

인권의 기준만 굳건히 고수한다는 입장이 있었더라면 김여정의 말폭탄이 두려울 리가 없었다. 정치화된 이슈가 아니라 국제 법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서 시민사회가 하는 일을 민주주의 국가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했다. 이 두 가지 기본 축을 놓치고 있으니 영국은 할 수 있는 것을 한국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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