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단체 위축?…“상황 어렵지만 증거 수집 등 활동력 강화”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13년 연속 채택됐지만, 국내 북한인권 단체는 마음껏 웃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최고지도부 반(反)인도범죄’ ICC(국제형사재판소)회부를 거론하는 등 ‘북한인권’ 개선에 관심이 높지만 국내에서는 북한인권재단이 정치적 문제로 아직 출범조차 하지 못하는 등 답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인권 조사 및 연구, 시민단체 지원 등 핵심 업무를 하는 인권재단이 아직 개소식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국내 단체의 생각은 어떨까. 데일리NK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나우(NAUH), 탈북자동지회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생각하는 북한인권과 올해 활동 평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왼쪽부터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대표,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 지성호 나우 대표, 임순희 NKDB 실장의 모습. /사진=연합

“북한인권재단 출범 정치적 영향 받지 말아야…해외에서 더 관심 아쉬운 대목”

국내에서 주로 활동하는 단체들은 북한인권재단 출범은 정치적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순희 NKDB 실장은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지만 재단은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은 한국의 인권에 대한 수준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면서 “올해 들어 인권 단체들의 (국내) 활동은 위축됐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지원해주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도 “개인적으로 탈북민의 정착, 북한인권 문제 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인권재단 출범 지연 등 다른 이슈에 묻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 해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도는 사뭇 다르다. 일례로 지성호 나우 대표는 인권포럼 연설, 중국에 있는 탈북자 북송 반대 시위 등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활동했다. 또한 나우는 북한인권 실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 ‘꽃제비 재연극’ 팀을 구성해 미국 대학교, 정부기관에서 공연도 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북한주민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이 같은 사업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이 높다. 이에 지성호 대표는 “북한 종업원 단체 탈북, JSA 북한군의 탈북 사건 등을 보면서 북한인권 문제 개선활동에 뜻을 보이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 대표는 “북한인권재단이 출범되었다면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재단이 출범될 수 있도록 국회나 정부의 역할을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北인권 가해자들에게 강력 경고’ 증거 수집, 객관적 자료 마련에 집중

이들 단체는 이같이 국내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 증진에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핵심은 ‘체제’라고 보고, 북한인권 현장기록, 가해자 조사 기록 등 각종 보고서를 발표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14년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나온 이후부터 북한의 반인도 범죄 증거를 수집하고,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거나 격변상황이 벌어질 경우 그동안 자행했던 인권유린 기록을 삭제할 가능성이 높은데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최근 “북한인권 가해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북한주민들에게 변화의 세상이 언젠간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자 하는 취지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지난 7월 보고서 발간을 위해 375명의 탈북민 인터뷰를 진행했고, 위치정보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살해장소 유형, 시체 매장지, 보위부와 군부대의 문서 증거 등의 기록은 급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면서 “남한과 국제사회가 문서 증거를 확보하려고 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높다. 북한주민들이 점거해 문서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위치를 파악하고, 증거문서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시체 매장지는 47개로 추정, 330명이 330회에 걸쳐 지목된 살해 장소는 시체 매장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패턴을 보였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 7월 보고서 발표 당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을 포함해 한 달 반 만에 120회 이상, 100여 개 매체, 22개 언어로 보도됐다.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다.

여기에 NKDB도 인권유린 가해자 처벌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10년 넘게 해 오던 일이다. 하지만 올해 조사가 잘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운영상의 이유로 중단되거나 다른 제약이 생긴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름 아닌 북한인권법 제정에 따라 이 같은 업무를 정부에서 담당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임순희 NKDB 실장은 “민간(시민)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데 민간을 배제하려고 한다”면서 “민간(시민) 단체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원과 지지를 해줬으면 좋겠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북한인권 개선 위해선 단체 간 협력 강화해야

북한인권 개선에 국민적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선 북한인권단체가 협력해야 한다는 데 일치적 의견을 보였다. 이영환 대표는 “2018년에는 2019년에 있을 북한 3차 국가별정례인권검토(UPR)를 대비해서 NGO들이 보고서를 내야 한다. 북한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선 중요한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놔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단체들과 같이 협력 및 조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최근 김정은은 비공개 처형을 하는 등 마치 인권상황이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이라면서 “이럴 때 일수록 다 같이 힘을 모아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순희 실장도 “2018년에는 북한이탈주민 및 NGO들 간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고자 한다. 그래야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다”면서 “많은 북한인권 단체들이 국내에서 힘을 못 내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