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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24일,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김정일 정권은 경의-동해선 열차시험 운행을 전화통지문 하나로 일방적으로 취소하였다.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과 남측의 불안정한 정세”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북한의 실제 속사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북측이 2004년과 2005년에 이어 남북열차운행합의를 세 번째 무산시킨 속셈이 더 돈을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북한군부의 반대에 의해서 그랬던 것인지는 무관하게, 그것이 “일방적 약속파기”라는 점에서, 북쪽의 속사정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떻게 다루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 김정일 정권에게 ‘대한민국’이란 불과 12일 전에 철석같이 한 약속을 하루 전에 파기해도 소리 한번 제대로 못 지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고, 따라서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좋은 존재다.
아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김정일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가진 것이라곤 돈밖에 없는 졸부(猝富)일 뿐이다.
필자는 1970년대에 우스개 소리인지 사실인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졸부 하나가 이제 돈이 많으니 집안도 그럴듯하게 장식해야 하는데, 뭔가 고상한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청계천의 고서점에 갔다. 졸부는 서점 주인에게 금박으로 장정한 전집류 수백권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트럭에 가득 실어 나르게 하여 자기 집 마루의 책장을 장식한 것이다.
졸부 근성이란 그런 것이다. 돈이면 다 살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오로지 돈밖에 내세울 것이 없지만 무엇인가 허전하다. 이들에게는 좀더 고상한 사람의 품격을 흉내내거나 아니면 좀더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통’하는 것이 바로 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정부 대북정책 ‘우린 그저 돈밖에 없소이다’
반미, 민족, 자주, 주체라는 ‘고상한’ 이상을 실현하느라 서글프게 누추한 삶을 살고 있던 북한에게 김대중 정권이 친교를 청했을 때는, 병들어 죽기 직전의 가난한 아우의 손을 잡고 햇볕의 밝은 세상으로 나와 같이 살자는 아름다운 뜻이 조금이나마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후 8년, 대한민국이 햇볕정책이라는 이름 하에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가난하고 병든 아우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로써가 아니라, 그저 가진 것은 돈밖에 없어 내밀 것도 돈밖에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수모를 감내해야만 그나마 ‘통’한 것도 유지할 수 있다는 신세인 것이다. 왜 그러한가?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원인과 결과가 도치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을 여러번 지적하였다. 원래 햇볕이 원인이고 나그네가 옷을 벗는 것이 결과라는 이솝우화와는 달리, 햇볕정책은 북한이 옷을 껴입고, 남한이 원하는 만큼 친교를 허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요, 친교를 위해 바치고 퍼주는 것이 결과인 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친교는 5억불이라는 뒷돈으로 시작하여 그 돈이 개발에 쓰였을지도 모르는 핵무기 보유선언을 북한이 하더라도 계속되어야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몽고발언이 그것이다. 제도적, 물질적 도움을 원하는 만큼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한번 정상끼리 ‘통’할 수만 있다면 돈도 얼마든지 주고 제도적으로라도 양보하라면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졸부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이종석 장관은 1조2천억 원에 해당하는 남북협력기금을 북한이 그럴 듯한 명분만 대면 다 써도 좋다고 나왔다. 역시 내세울 것은 돈밖에 없다는 졸부 근성의 한 표현이다.
BBC 보도와 한국 대기업의 치명적 손실
한국정부는 개성공단을 남북경제협력의 모범생인양 내세우나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인민을 착취하여 외화를 끌어내는 수납처일 뿐이다. 지난 5월 중순 영국 BBC에서 방영한 개성공단에 관한 방송 원고를 보면 월 임금 30파운드 중에서 3파운드 정도만 근로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다른 보도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다른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기업에서 주는 1인당 월 57.5불의 임금에서 실질적으로 북한 근로자가 손에 쥐는 돈은 월 1.5~2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대사가 개성공단의 임금 비투명성을 비판하자 한국정부가 내정간섭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그러나 만일 BBC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개성공단은 ‘노예노동 공단’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만일 유럽공동체나 북미 지역에서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면 원산지 문제만이 아니라 그곳의 경쟁업체와 소비자 단체까지 들고 일어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대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이미지 손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통’할 수 있다면 김정일 정권이 북한인민을 착취하건 말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이다. 역시 품격이라곤 조금도 없는 졸부 근성이다.
그러나 졸부 근성은 ‘통’할 수 만 있다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그 집요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상함이 무엇인지, 품격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졸부들은 집요하게 공을 들이면 들인 만큼 더욱더 자기들이 얻은 성과를 과대평가하여 편집적으로 매달리고,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혹시나 훼손될까, 깨질까 두려워한다. 물론 상대방은 졸부들의 이런 편집증을 마음대로 이용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교류는 ‘혁혁한’ 성과를 얻었다. 그 대강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및 남북문화교류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두 사업이야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이 북측의 현찰 수집처이다. 남북문화교류의 대강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아리랑축전에 1인당 100만원 이상 현찰 들고 가서 구경한 것이 남북문화교류를 양적으로 비약시켰다는 것이다. 그 외에 정부기관, 민관기관이 관계한 문화교류도 모두 돈이다.
이런 교류의 특징은 한국에서 북한으로 ‘통’한 남측인사들의 수는 당연히 비약적으로 증가하지만 -모두 돈이니-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북측인사들의 수는 아마도 각종 회담에 참가한 사람들 이외에는 극소수다. 간단히 말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남북교류의 실상은 북한에 돈 주고 양적으로 팽창시키는 것이고 북한은 한국정부가 바로 이런 양적팽창을 과대평가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심지어는 남북회담이 이룩한 실질적 내용만이 아니라 그 횟수증가를 남북교류의 혁혁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北의 ‘우리민족’은 인종편견 히틀러식 파시즘
졸부의 근성 중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점은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소중한 ‘통함’의 관계가 내실이 있든 없든 체면불구하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 이제는 상대방이 그 어떤 방식으로 수모를 주고 모욕을 해도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커녕 낮은 목소리의 항의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따로 없다. 간단히 말해 돈 이외의 주제에 대해서는 기가 완전히 죽어버린다. 그 결과 졸부 자신의 내부 속에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스스로 들어내 버리고 상대방의 가치체계를 내면화하여 일종의 매조키스트적, 자학적 동화현상을 보인다.
노무현 정권 들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국에 빌붙어 기회주의적으로 출세한 기득권 세력의 역사’라고 자학하고, 수백만을 굶어 죽이고 수십만을 절멸수용소에 감금, 사실상 죽이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걱정하고 그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햇볕정책이 본질적으로 졸부 근성에서 출발하였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릴 때마다 그 합의문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를 명기함으로써 시작한다. 얼마 전 북한이 한국의 혼혈아 차별금지 운동에 대하여 인종주의적 비판을 하였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중국인과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도 순혈주의적 인종관으로 차별한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서 “우리민족”이라는 표현이 북한의 입장에서는 인종적 편견에 기반한 히틀러식 파시즘의 중심이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종주의적 비판에 대한민국 정부의 어느 누구가 반론을 했다는, 요즈음 유행하는 표현으로 댓글을 달거나 혹은 대응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졸부적 자학의 한 표현이다.
이런 것이 김정일 정권이 대한민국을 졸부 취급함으로써 돈 이외에 노리는 사항들이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꾀, 그 알량한 논리의 덫에 걸려 궁극적으로는 더욱더 막무가내로 나오는 북한의 행태와 이념을 이해해야만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부실채권에 물린 금융기관이 거꾸로 채무자의 입장을 두둔해야 하는 것과 흡사하다.
북한의 이념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언명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북한인권을 개선할 수 없다’ ‘북한의 핵보유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북한은 자존심이 높은 국가다’ ‘개혁개방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등등.
6000억 원이 훨씬 넘는 지원을 통해 경의선, 동해선을 정비해주고 또 바로 그 시험운행을 위해서 40억 넘는 철도자재, 수백억 원이나 되는 경공업 원자재를 주기로 약속하고도 북한은 열차시험운행 약속을 파기하였지만, 한국정부의 반응이 어떠할지는 거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섭섭하지만 깨어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사랑과 치정을 구별 못하는 졸부의 근성이다.
깨진 ‘장군님의 망상’, 남한국민은 각성중
추신: 사족으로 필자도 왜 김정일이 이번에 열차시험운행 약속을 파기하였을까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마 지난 8년간 졸부식으로 진행된 햇볕정책을 통해 김정일 역시 상당 수준의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의 ‘진보언론’ ‘진보 지식인’들은 물론, 정부인사들 조차도 ‘장군님’ 앞에만 서면 작아지니 “일부 수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군님의 사상과 인품에 경도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질 법도 하다. 해서 5.31 지방선거에 적절한 시기에 남북열차를 운행시켜주면 장군님을 사모하는 남한의 대중들이 현재 사경을 헤매는 여당을 지지해 주리라는 망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 10여일 전에 열차운행을 합의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이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여당의 지지율은 더 떨어져만 가니, 장군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측이 전화통지문에서 “남측에서 친미·극우보수 세력들이 (…) 6.15세력들에게 매일같이 무모한 반격을 가하며 나라의 정세를 극도로 험악한 대결과 전쟁방향으로 끌고 가면서 열차 시험운행과 같은 민족의 대사에 극히 불안정한 사태를 조성하고 있는 형편에서 시험운행은 예정대로 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은 아마도 일말의 진심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여기서 현재 “불안정한 사태”가 읍소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추락한 여당의 모습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해서 필자는 김정일의 망상이 깨진 아픔을 그렇게 표현하였다고 보인다.
다만 김정일은 왜 자신의 망상이 대한민국 국민에 의해 깨졌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바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 퍼주기만 하고 얻어온 것이라고는 약속파기와 같은 따귀밖에 없는, 납북자, 국군포로를 데려 오기는커녕 납북자를 ‘납북자’로, 국군포로를 ‘국군포로’로 부르지도 못하는 처지, 화려한 듯 펼쳐 보이지만 실은 예외 없이 대북 퍼주기인 졸부식 대북정책에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해 하고 있다.
이런 국민적 각성이 졸부식 대북정책이 이끌어낸 드문 ‘성과’라면 성과라고나 할까.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