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생계 때문에 오징어잡이…무경험자 많아 사고 확률↑”
北, 기상예보 등 주민 목숨 직결된 최소한의 외부정보 접근도 차단
선박 출항 관리 등에 뇌물 주고받기 여전…행불자 나와도 내부 감시만

올해도 어김없이 오징어 철을 맞아 관련 어선들이 동해로 나서고 있다.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움직이는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여름철이 되면 동해에서 북상하는 고온의 해류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 해역으로 이동한다. 때문에 동해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어민들은 매해 여름마다 남쪽에서 몰려온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밤바다를 환히 밝히는 여러 개의 전구를 매단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다.

몰려든 오징어를 잡기 위해 동해로 나서는 것은 북한 어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에서는 오징어가 다른 어종에 비해 수입이 좋아 해마다 많은 주민들이 바다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북한 오징어잡이 어선이 오징어 황금어장이라 불리는 일본 대화퇴(大和堆, 야마토타이) 어장에서 자주 목격된다는 일본 어민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고, 일본 해안가에는 북한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동해 대화퇴 어장을 사이에 두고 일본 중서부 지역과 직선거리(900km)로 마주하고 있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 탈북민들은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원인에 대해 대체로 공통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 5월, 8박 9일간의 일본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취재팀은 연이어 3명의 청진 출신 탈북민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탈북민들의 공통된 설명은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많은 북한 주민들이 바다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생활난, 경제난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다.

“북한에서는 수산업에 종사하는 배꾼이 돈을 벌 수 있어요. 오징어잡이는 다 돈을 벌려고 나가는 것이죠. 수산사업소 어선 같은 것은 큰 배도 있지만, 청진 쪽에는 거의 다 개인이 조그만 목선, 쪽배를 타고 나가는 식이에요. 돈 없는 사람들은 내 배를 가진 선주한테 배를 좀 타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선주가 30%를 갖고 나머지 70%는 개인이 가져가요. 내 배가 아니면 배를 타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타죠. 선주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면 자기들이 이득인 거예요.” -탈북민 김미옥 씨(가명, 2009년 탈북)

이러한 상황에서 바다를 경험해보지 않은 초짜들까지 돈을 벌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전문 어업 종사자들만 조업에 나섰지만, 오징어잡이가 큰돈이 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배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바다로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탈북민들은 바다 조업 노하우가 없는 무경험자들끼리 모여 바다로 나서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사고 위험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날씨까지 궂어지면 배가 뒤집히거나 일본 쪽으로 떠내려갈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날씨라는 게 하루만 지나도 변해서 쪽배(소형 목선)가 확 뒤집히면 죽는 것이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러시아에 갈 수도 있고 일본에 갈 수도 있고 어떤 방향이든 가는 거예요. 한국 쪽으로 내려온다면 사는 거고요. 일본이나 더 먼 러시아로 며칠 걸려 가면 죽죠. 죽어서 시체가 돼 가는 거예요.” -탈북민 박선숙 씨(가명, 2011년 탈북, 수산조합 출신)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발할 경우 약 240km까지는 소형 목선이 조업 가능하며, 그 이상 거리는 크기 10m 이상의 중·대형 어선이 되어야 거친 바다를 뚫고 조업을 할 수 있다. /그래픽=데일리NK 특별취재팀

북한 당국 차원에서도 기상정보를 제공하지만,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탈북민들의 말이다. 실제 본보는 지난 2015년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어민들이 정확한 날씨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 라디오 방송을 암암리에 청취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최소한의 필요 정보를 외부에서 습득하는 것조차 철저히 통제·차단하고 있다.

“배꾼들은 날씨를 듣는다고 라디오를 얻는데, 무조건 분주소(우리의 파출소)에 가서 등록을 해야 해요. 그리고 라디오 안에 주파수를 잡는 곳을 다 땜납을 해치워야 하고요. 외부 주파수를 잡히지 못하게 하려는 거죠. 주파수를 잘못 잡으면 한국 방송이 나오니까요. 땜납을 하지 않고 라디오를 쓰면 또 큰일 나지요.” -탈북민 김미옥 씨

무엇보다 탈북민들은 북한 당국이 중국에 조업권을 넘기면서 북한 주민들이 중국 어선을 피해 더 먼 바다로 나가게 됐고, 이에 따라 사고 위험이 가중됐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오징어 철이 되면 떼로 몰려와 연안을 장악하는 중국어선 탓에 정작 북한 주민들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 2004년 중국과 동해 공동어로협약을 체결해 중국 어선의 동해 조업을 허가했다. 이밖에도 앞서 정보당국은 북한이 중국에 동해 조업권을 팔아넘긴 대가로 막대한 통치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했다.

“중국의 큰 배가 들어와서 전구를 켜면 대낮 같아요. 그러면 작은 가스등을 킨 쪽으로 오징어가 몰려들겠어요?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이)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불을 끄고 중국 배 옆에 가서 몰래 잡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국인들이 알아채면 쫓아내요. 난폭하죠. 그러면 ‘에이 더럽다, 재수 없다’하면서 멀리멀리 바다로, 바다로 나가는 거예요.” -탈북민 박선숙 씨

그러나 탈북민들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는 대화퇴 어장에 작은 북한 목선이 나타나 오징어잡이 조업을 한다’는 일본 어민들의 증언에 대해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대화퇴 어장은 청진시와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니가타(新潟)현 사이에 형성돼 있는 조경 수역으로, 청진에서 약 50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제대로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작은 목선을 끌고 500여km 떨어진 대화퇴 어장까지 간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게 탈북민들의 이야기다.

다만 청진 수산사업소 출신 탈북민 장수혁(가명, 2011년 탈북) 씨는 북한 군부대 소속 외화벌이 부업선의 경우, 당국이 내린 외화벌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일본 해역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과제가 예년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데다 북한 해역에서 오징어도 잘 잡히지 않아, 군부대 소속 부업선이 일본 앞바다까지 더더욱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게 장 씨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올해 대화퇴 어장으로 나서는 북한 외화벌이 어선이 더 많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군부대 외화벌이 과제가 얼마씩 내려지잖아요. 예를 들어 이전에 100만 원 내라고 했다면, 올해에는 200만 원씩 내라고 달군(재촉한)대요. 북한 바다에도 오징어가 없는데 (북한 당국에서) 계속 몰아대니까 일본 앞바다까지 간다더라고요. 이달에도 일본에 오징어 잡으러 나갔다 온 배가 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도 하고 국가에 세금도 바쳐야 하니 할 수 없이 (멀리) 나가는 것이죠.” -탈북민 장수혁 씨

특히 장 씨는 “청진의 경우에는 원래 이틀 안에 배가 들어와야 하는데 뇌물을 주면 더 오래 나갔다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만연한 뇌물 관행에 선박의 출항과 관련한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현재 북한은 제도적 기반이 허술할뿐더러 자국민 보호 역시도 소홀한 상태다. 실제 취재팀과 인터뷰한 탈북민은 조업에 나선 북한 주민이 행방불명될 경우, 되레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당국의 감시·감독이 더욱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실종된 주민을 찾기 위한 노력보다는 체제 이탈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주민 통제 등 내부 관리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인도주의적인 시각에서 제도적 문제점을 짚고, 주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와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올해 초 북한에 있던 조카가 오징어잡이에 나선 뒤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서 조카를 찾아준다거나 그런 것은 상상도 못 해요. 한국처럼 국가가 나서는 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고 돌아오지 않으니까 담당 경찰이 ‘옆길(한국)로 샌 것 아니냐’면서 신경을 쓰고 감시를 하죠. 이쪽으로 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눈앞에서 배가 뒤집어진다고 해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구조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안 갖춰져 있어요.” -탈북민 김미옥 씨

한편, 일본 당국은 자국 해역에 출몰하는 북한 선박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단속과 경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과 시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상황에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당국 차원의 소통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양국 당국 간 논의 창구조차도 부재한 상황이다. 다만 그간 철저한 고립으로 일관했던 북한이 최근 한국·미국 등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향후 북일관계 발전에 따라 양국 간 해당 사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낙관적인 기대도 나온다. (데일리NK 특별취재팀=김정 PD, 양정아 기자, 하윤아 기자)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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