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일 마지막으로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인 이후, 김정은이 40일이 넘도록 공개석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특히 10월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는 응당 수하를 거느리고 김일성, 김정일의 ‘미이라’를 알현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꽃다발만 ‘택배’로 보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전 세계 언론이 김정은의 부재에 대해 각종 추측과 시나리오, 해석과 분석을 분(分)단위로 쏟아내고 있다. 역시 확인보다는 추측 혹은 사실보다는 괴담이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특징적인 점은 이 ‘설(說)들’의 방향이 하나라는 사실이다: 발목이 부러졌든지, 인대가 늘어났든지, 계단에서 굴렀든지, 뇌졸중에 걸렸든지, 뇌사 상태이든지, 정신병에 걸렸든지, 신부전(腎不全)이든지, 약간 아프든지, 아주 아프든지, 실각했든지, 꼭두각시가 되었든지… 어쨌든 김정은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직 대화의 기회만을 기다리는 한국 정부만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라는 발표를 하였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개석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김정은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현지지도에 나섰다. 지난 6월말부터는 절뚝거리기 시작하였고, 7월과 8월에는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도 각종 군사훈련 등을 참관하였다. 그러던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사라졌다면 그건 결코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는 ‘김정은에게 어떤 변고가 닥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북한 정권의 작전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북한 전문가들은 수령의 현지지도와 그 보도는 북한 주민에게 수령주의 세뇌를 위한 ‘일용(日用)의 양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에는 무려 40일 동안 북한 주민에게 이데올로기 배급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어떤 곳인가? 없으면 만들어내는 곳, 김일성 민족은 날조의 민족이다.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에는 북한 정권은 김정일의 부재를 ‘포토샵 사진’으로 극복하였다. 그것은 수령의 부재가 체제의 위기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정말 아파서 장기간 ‘수령의 은총’을 직접 연기할 수 없다면 수하 선전기관들은 왜 포토샵을 하지 않고 있을까? 김정은이 실각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김정은이 멀쩡하게 살아 있고 또 뭔가 꿍꿍이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올 해 상반기에 김정은은 각종 미사일 시험을 했으며, 수도권을 노리는 방사포를 증강하였고, 특수부대도 확장하여 전방배치를 하였으며, 2015년에는 통일대전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김정은은 3년 내에 통일을 할 것이고, 전쟁은 한 번 해야 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 청와대와 서해 5도 그리고 동해 쪽으로 무인기를 보내 정탐을 하였고 무엇보다도 개량된 탄도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준비를 해 왔다.
그리고 10월 4일 황병서와 최룡해, 김양건이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에 참가하여 희희낙락거리며 남북대화의 운을 띄우고 갔다. 이어 NLL 침범, 그리고 연천에서 대북전단을 실은 기구를 향하여 고사총을 발사하였다. 순전히 기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남쪽으로 총을 돌리지 않고도 가능했다. 이건 명백하게 의도적 도발이었다. 더 중요한 점은 김정은 정권이 이미 오래 전에 대북전단 살포를 하면 복수를 하겠다는 복선을 깔아 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무자비한 타격’도 아직 남아 있다.) 황병서 일행의 방남 역시 이런 복선을 깔아 놓은 이후 남북 간 갈등 고조를 위한 전개과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잔머리라면 잔머리이지만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은 걸려 들어가기 쉽다.
예를 들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대북전단으로 북한 자극하지 말자”는 발언이 그것이다. 한국의 보수 정치가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바로 북한을 자극하여 다시 도발할 것을 권유하고 초청하는 발언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을까?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언젠가 김 대표는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김무성 대표는 독일의 통일이 흡수통일인지 평화통일인지 생각해 보았을까? 했을 리가 없다. 독일의 경우는 동독이 국가해산을 통해 스스로 서독에 편입될 것을 원하였고, 평화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졌으며, 한국에서는 독일의 통일을 ‘흡수통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김무성 대표의 ‘흡수통일이냐 평화통일이냐’는 질문은 역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러나 기왕의 대남도발의 준비 상황, 그리고 비정상적인 북한 수령 찾기 숨바꼭질과 북한이 깔기 시작한 남북대화 복선 깔기의 목적이 ‘한반도에서 대규모 긴장 조성 가능성’에 있을 가능성이 대북전단이 북한을 자극하느냐 마느냐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이미 오래된 대북전단 살포 관례에 대해서는 북한 스스로 새롭게 주장할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광화문에 불법시위를 조장하는 기관이 서울시이고 그것을 또 용인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정부다. 하물며 법에 저촉되지 않는 대북전단을 어떻게 정부가 막을 수 있나? 김정은 정권이 대북전단을 갖고 뭔가 트집을 잡는다면 그것은 다른 작전의 한 수일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외신에 의하면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이번 연천의 대북전단과 관련 ‘남북대화를 걷어치우겠다’며 한국 정부에게 ‘알아서 길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대북전단 트집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민간단체에 의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원칙론에 머무르는 것으로 족하다. 더 중요한 점은 북한이 이번 남북대화 물꼬트기를 통해 가려는 방향, 목적지이다. 북한이 이것을 트집 잡아 남북대화를 중단한다면 그 어떤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중단할 것이다. 이번 북한의 연천 고사총 사격과 대북전단 트집 잡기는 김양건 통전부의 세련되지 않은 수 일 뿐이다. 이런 싸구려 작전의 책임자는 문책감이다.
여기서 한국 정부는 더 넓고 더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혹시 이번 겨울과 내년 봄을 통해 미사일발사-핵실험-핵전쟁 위협 등으로 다시 한 번 한반도에 대규모 긴장조성을 시도할 경우, 한국과 우방국들이 그 시도부터 과감하게 끊어버리겠다는 결기를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같은 안보위협을 역으로 이용하여 북한 정권에게 회복불능의 심대한 타격을 주는 ‘전략적 비수’를 갈아내는 것이다. 옛말에 “땅으로 인해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김정은이 핵으로 위협할 경우, 바로 그것을 이용하여 김정은을 넘겨 뜨려야 한다. 바꿔 말해 북한의 급변사태는 북한이 촉발하고 한국이 완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