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사)시대정신 이사장이 2010.8.13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보수는 반공주의, 진보는 종북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하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뉴데일리에 <안병직은 틀렸다>면서 보수의 반공을 더 강화해야지 버릴 일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이어 안 이사장의 반론과 조 대표의 재반론으로 이어지는 논쟁이 있었다.
두 분의 논쟁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조갑제 대표의 주장을 보면, 한국의 반공주의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에 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사회통합위원회 이념분과 위원으로서 평소 반공주의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사회통합이 저해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던 참이다.
조갑제 대표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가 대한민국이 보수주의에 충실했고, 특히 걸출하고 진정한 보수주의자인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1987년 이전에 한국에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었다는 안 이사장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런데 조갑제 대표도 인정하듯이 1950-70년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두 대통령은 그래서 권위주의 통치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계획경제와 국가동원체제를 통하여 산업화를 이뤘다.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대통령이 권위주의와 계획경제를 하지 아니하였다면 건국과 6·25극복 그리고 산업화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볼 때, 그 분들이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분들의 위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이 정도로 해 두자.
조 대표의 주장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한국의 보수세력이 반공(주의)을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강경보수세력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반공주의를 버릴 때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에 반대한다. 공산주의는 인민의 낙원을 이루겠다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상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는 특권지배층만 배부르고 나머지 인민은 자유도 없이 평등하게 빈곤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체제라고 확신한다. 그렇기에 나는 반공에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반공주의에는 반대한다. 조 대표의 주장을 보면, 반공과 반공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지만 양자는 전혀 다르다.
반공은 공산주의가 옳지 않다고 반대할 뿐이지만 반공주의는 반공을 이념화하여 공산주의자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자와 공존을 거부한다.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공산주의는 惡의 세력이다. 그 惡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죽이려고 하는데 거기에 반대하지 말라고 한다면 죽으라는 이야기인가?”라고 묻는 조 대표의 말에서 반공주의를 읽을 수 있다.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되, 공산주의를 주장할 자유는 인정해 주자고. 선거로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겠다는 정당이라면 활동이 보장되어야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이라고. 단, 공산혁명을 하겠다고 폭력을 사용하거나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지 않는 한.
반공주의에 충실한 강경보수세력은 조금만 사회주의적인 주장이나 정책을 내세우는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타도대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사회에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종북주의자나 폭력혁명론자들에게 숨을 곳을 마련해준다.
빨갱이라고 공격받은 사람 중에 명백하게 ‘빨갱이’가 아닌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진짜 종북주의자들이 “나도 아니다”라면서 숨을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무차별적인 빨갱이론으로 인하여 보수진영 전체가 비합리적인 수구집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그렇게 될 경우 공산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좌파가 다시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에 공산주의를 배제시킬 근거는 없다. 그 자유의 근거인 헌법을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의 요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삼는 일본이나 유럽 각국에서 공산당이 허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어서 일본이나 유럽과는 다르다고 흔히 주장한다. 그러나 남북사이의 이념·체제경쟁은 끝났다. 대한민국의 완승이다. 북한이 오로지 이념만을 동원하여 남한을 적화하는 것이 과거에는 몰라도 현재에는 불가능하다.
남아있는 것은 핵을 포함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인데, 이는 국방 또는 안보의 문제이지 이념이나 체제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북한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로 보기도 어렵다. 실상 북한은 공화국의 탈을 쓴 전체주의 봉건왕조일 뿐이다. 북한의 노동당규약이나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말은 사라졌다. 그러니 북한을 경계할 필요는 있지만 공산주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조 대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이란 방패와 울타리가 없으면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을 허용, 체제가 죽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설령, 지금 당장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적화될 리는 없다. 이미 대한민국은 법적 규제에 의하지 않고도 정치사상적으로 공산주의나 북한체제로부터 방어할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좌파는 미국을 전지전능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조 대표는 공산주의자들을 그렇게 보고 있는 듯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한상열 목사와 같은 좀 이상한 사람들이 설쳐서 더 소란스럽기는 하겠지만 대한민국이 망할 리는 없다. 오해는 마시라. 국가보안법을 당장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1991년 5월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 체제 붕괴라는 현실변화를 반영하여 국가보안법에서 국외공산계열과 관련된 찬양·고무, 회합·통신 등을 처벌대상에서 제외한 결과 국가보안법에는 공산주의 사상 자체를 대상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사라졌다.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법이지 단순히 반공을 하기 위한 법이 아니므로 아직은 존재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막는 방법으로 효과적이지 않다. 이른바 강경보수세력은 늘 반공을 외치면서 조금이라도 좌파적인 냄새가 나면 빨갱이라고 공격한다. 가스통을 들고 달려가는 일도 불사하지 않는다. 그 나라사랑하는 마음이야 의심할 바 없지만, 과연 반공! 반공! 외친다고 반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종 신문의 하단을 장식하는 ‘때려잡자 공산당’식의 광고를 보면 필자는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광고를 보면서 반공해야겠다고 마음이 움직일 대한민국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대부분의 젊은 전업 우파운동가들의 활동비가 월100만원 안팎에 불과하여 생활에 애로를 겪고 있는데, 그 돈이라면 활동비를 조금이라도 더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아까운 것이다.
50-60년대의 반공의 방법과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의 반공의 길이 같을 수는 없다. 공산주의가 번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 빈곤과 부패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공산화된 제정러시아, 중국 그리고 베트남을 보더라도 그렇고, 공산화 걱정이 없는 일본, 미국, 유럽각국을 보더라도 이 점은 분명하다. 50-60년대 대한민국은 전자에, 21세기 대한민국은 후자에 더 가깝다고 볼 때 이젠 21세기 대한민국에 맞는 반공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반공주의를 버리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공산주의든 뭐든 허용하고, 그렇게 『자유로운 생각의 시장』에서 공산주의를 합리적인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고사시키고 도태시키면 되는 것이다. 척결과 배제가 아닌 공존과 토론을 통한 반공이라야 사회통합도 가능하다. 이렇게 달성된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선진화에 매진한다면 선진화와 통일도 멀지 않게 된다. 선진화된 사회에서 공산혁명은 잠꼬대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보다 더 효과적인 반공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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