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칼럼] 그많은 대남 공작원 죄다 사라졌나?

▲ 국가정보원 청사 <사진:YTN>

‘당이 평화적 구호를 내세울수록 인민군대를 강화해야 한다.’

필자가 북한에 있을 때 흔히 듣던 말이다. 남북간 대화와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이 말은 ‘당의 방침’으로 더 자주 하달되었다. 그 이유는 ‘언젠가는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하며 따라서 평화적 분위기에 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평화통일’이란 그저 화려하게 내세우는 구호에 불과하고, ‘남조선 혁명’과 ‘무력에 의한 통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당연한 통일의 과정이었다.

전쟁이 무섭지 않았고 또 자신감도 있었다. ‘미국놈만 없으면 그냥 썅!’ 이렇게 씨부렁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미국놈’은 한마디로 눈엣가시였다. ‘남조선 정권’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대남혁명’이란 것도 흔히 나오는 말이었다. 남포연락소니, 청진연락소니 하는 여러 대남 연락소들이 있었고 수많은 대남공작원들이 양성되었다. 모두 ‘남조선 혁명’을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대남혁명’은 늘 정당한 것이었다.

‘조국통일’은 ‘통일된 광장에 장군님을 모시는 과제’를 수행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세뇌되었다. 이와 다른 ‘조국통일’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연방제 통일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장군님을 통일된 광장에 모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했다.

그때는 80년대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북한이 변했는가? 최근 남북관계는 좋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대남혁명의 포기’ 신호인가? 그렇다면 그 많은 대남연락소가 축소되었는가? 수많은 대남공작원들은 평민으로 돌아갔는가?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통일광장에 장군님 모시기’가 북한의 조국통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은 대남혁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통일된 광장에 장군님을 모시는 조국통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일부 정치인들과 친북단체들에 의해 그 임무가 훌륭히(?) 수행되고 있다.

북한 권력자가 내뱉은 ‘민족공조’가 이제는 남한에서도 ‘민족의 지상과제’로 되었다. 6.25 전쟁은 통일내전으로, 맥아더는 ‘원쑤’로 평가받는 세상이 됐다. 북한 권력자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 임무는 완수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평화적 분위기에 취해서, 북한의 움직임을 감지할 촉각마저 마비된 것 같다. 최근에 북한이 대담하게 다양한 대남공작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 누구 하나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민족공조’라는 북한 선동에 취해 일부 친북단체들이 앞장서서 이를 호응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걱정스럽다.

최근 국정원을 둘러싼 일련의 문제들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까지 무장해제를 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 개혁요구는 도청파문으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정치권이나 여러 집단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청파문을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이 반성은커녕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공작에 안방을 내주겠다는 꼴이다.

북, 남한은 단물빨기 대상

국정원 개혁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국정원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과 권력자들로부터 독립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 개혁이라는 것이 또다시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으니 그 결과는 뻔하지 않는가?

더욱이 국정원 해체니 분할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 누가 좋으라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한심한 현실을 가장 반길 당사자는 수십년동안 ‘안기부(국정원) 해체’를 주장해온 북한 권력자일 것이다. 북한의 대남 공작원들을 모두 풀어도 해낼 수 없는 무장해제를 지금 이 정권 하에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북한 권력자가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움직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남한을 우습게 본다. 남한을 미국의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하고 단물만 빨아먹으면 된다는 식이다. 단물이 있을 때는 남한과 접촉하고 그렇지 않으면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리고 남한사회 해체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민족공조’라는 화려한 변장술을 하고 남한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막아야 할 국정원이 해체와 분할의 논란에 휘말려 있다. 북한의 ‘대남혁명’에 안방을 내주겠다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느 신부님의 말씀대로 구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 호(황해도 출신, 1989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