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를 만나다

“중국에 숨어살며 북한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에 글을 쓰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어요.”

지난 98년 탈북한 뒤 중국과 몽골을 거쳐 한국에 입국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최진이(46)씨가 자전적 에세이집『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최진이』를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DailyNK 독자들에게는 <최진이의 新북한여성론>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한때 북한 문단에서 “장차 북한 문학계를 뒤바꿔 놓을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촉망받는 시인이었다. 북한의 엘리트 계층인 문학인에서 탈북여성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묘한 표현으로 사회를 비꼬는’ 북한 문인들

최진이 씨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詩)분과에 소속돼 문예활동을 했다. ‘성분’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북한 사회에서 문인은 출신과 성분을 넘어선 특별한 존재였다고 한다.

“작가들에 한해서는 성분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 편이었어요. 창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북한의 작가들은 우여곡절이 많아 ‘혁명화 구역’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죠. 그런데 그런 것을 겪고 와서 더 당당하게 창작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완전 (정권의) 노예가 되어 아첨문학을 하는 사람이 생기기도 해요.”

최씨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문학은 모두 ‘김일성․ 김정일체제’를 우상화하는 문학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체제를 찬양하는 ‘아첨문학’이 85%라면 나머지 15%는 ‘묘한 표현으로 사회를 비꼬는’ 자신만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문학에서도 사회의 모순을 문학화 하는 일들이 진행돼 왔어요. 다만 그런 작품이 체제불만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묘하게 표현을 하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문학인들 스스로는 그런 묘한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 수가 있죠. 북한의 문학인들은 ‘조심성이 몸에 베인’ 사람들이에요. 저에게 표현의 자유가 존재했다면 북한사회의 기만성에 대해 글을 썼을 거에요.”

“사회주의 나라, 진저리 납니다”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던 그녀에게 에세이집,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 최진이』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최씨는 98년 7월 혼자 두만강을 건넜다가 세 살배기 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또 한번 국경을 넘어야 했다. 중국에 넘어와 1년 동안 겪었던 온갖 수모와 고통의 세월을 떠오르면 지금도 괴로움에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는 지금도 중국에서 고통 받고 있을 북한 여성들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최근 중국에서 홍수가 나고 사스(SARS ;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로 인해 중국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추도가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은 바로 탈북자들이에요. 중국 사람은 인권의식도 하나 없고, 어떻게 살자고 나온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지…….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난다는 말이 맞아요. 사회주의 나라들은 정말 진저리가 납니다.”

그녀가 DailyNK에 연재중인 <최진이의 新북한여성론>은 일상적 이야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모순을 통쾌하게 지적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사회를 일방적으로만 이해하려 들면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북한만 보게 됩니다. 자꾸 안 좋은 부분만 드러내는 건 오히려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양쪽을 입체적으로 말해줘야 나중에 충격이 덜하지,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교육받은 것을 한국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 줄 수는 없잖아요.”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그 사회 자체의 모순이나 문제점들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북한의 체제와 북한의 주민들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북한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만 보여줘도 북한의 문제점은 드러난다

최씨는 이화여대 대학원(박사과정)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다. 남한의 여성단체들이 북한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그는 “신중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어요.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여성의 성매매 문제는 어떤 입장인가가 중요합니다. 탈북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문제를 규탄하는 식으로 하면 탈북자들은 이중삼중으로 상처를 받아요. 아직은 북한여성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야죠.”

그녀는 탈북여성으로서 남한에서 자신의 역할이 클 것 같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한국에도 북한 여성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잡아주고, 북한 여성들에게도 자신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차별받고 있는지 알게 해주고 싶어요.”

에세이를 통해 지난 삻의 고통을 털어버리고, 남한에서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며 그녀는 ‘한번도 상처입지 않은’ 듯 환하게 웃었다.

● 인터뷰 ▪ 정리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 ksa@dailynk.com

● 사진

이현주 대학생 인턴기자 lh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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