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못된 짓만 골라하는 南”…北이 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인 가운데, 북한이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글들을 실었다. 1일 ‘서광’이라는 매체와 2일 ‘우리민족끼리’라는 매체인데,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같은 비중있는 매체는 아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본원인이 “북남합의들을 헌신짝처럼 줴버리고(던져버리고) 대미추종과 동족대결을 밥먹듯이 감행하여온 남조선(남한)당국의 반민족적이며 반통일적인 행위들에 있다”고 주장한다. 대미추종과 동족대결이 남북교착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인데, 북한의 주장을 좀 더 풀어보면 이렇다.

대미추종과 관련해 ‘우리민족끼리’는 우리 정부가 “북남관계의 속도조절론을 내드는 미국의 강박에 추종하여 한미실무팀을 내오고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사사건건 상전의 승인을 받으려” 했다고 비난한다.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현안을 조율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동족대결’과 관련해서는 “외세와 야합하여 북침전쟁연습을 벌리고 미국산첨단무기들을 대량적으로 끌어들이는 무력증강에만 몰두”했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동족을 겨냥한 불장난질을 쉬임 없이 벌려댔다”고 주장한다. 소규모로 진행돼 온 한미군사훈련이나 우리 군의 자체 훈련, F-35A 전투기와 글로벌호크 도입 등을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

‘서광’이라는 매체는 한미일 안보관련 회의를 문제삼았다. ‘서광’은 우리 정부가 “정세긴장의 합법적 구실을 마련하는 데 품을 들이고 있다”면서, 5월 중순 ‘한미일 안보회의’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해 논의한 것과, 6월 중 ‘한미일 국방장관회담’과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열어 ‘하반기전시작전통제권 행사능력검증연습’을 논의할 예정인 것을 비난했다. “미일과의 불순한 안보 모의의 연속과정은 남조선 정부가 동족과의 관계개선이 아닌 대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는 우리 정부에 대해 “앞에서는 약속을 지킬 듯이 화사한 웃음을 짓고 뒤돌아서서는 북남선언들의 정신에 배치되는 못된 짓만 골라하는 남조선 당국의 이중적 행태에 내외의 비난과 저주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너무도 응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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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3년 강원도 오성산 인근 초소를 방문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 지금은 남한과 대화할 뜻이 없다

GP에서 총격을 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북한을 상대로 누구 말이 맞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북한 선전매체들의 주장대로 하면 남한은 한미훈련이나 자체훈련도 하지 말아야 하고 해외로부터 무기도입도 하지 말아야 하며, 미국이나 일본과의 안보관련 회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북한도 사실 남한 정부가 한미훈련이나 무기도입 등의 행위를 안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자신들이 필요한 때에는 이런 것들을 문제삼지 않고 대화에 응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던 시기에도 대규모 한미훈련은 연기됐지만 소규모 한미훈련은 계속됐고 첨단무기 도입 절차도 그대로 진행됐다. 북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 때는 대화가 필요한 시기라 판단했기 때문인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이 지금 한미훈련이나 무기도입을 문제삼는 것은 그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기보다는 지금은 남한과 대화할 뜻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한과 대화할 뜻이 없기 때문에, 판에 박은듯한 과거 레퍼토리를 가져와 교착상태의 책임을 남한에 전가하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 제재 하에서 남한이 북한에 해줄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고, 미국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 북미대화도 어려워보이는 만큼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서 특별히 이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 = 한국 공동 사진기자단

철저하게 실리에 기반한 북한, 우리는?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철저히 이익에 기반해 대외관계를 가져가는 실리주의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예전에 언제 비난한 적이 있었냐는 듯이 관계개선을 추구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 국면에서의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정상회담 성사, 그리고 한미와의 관계 개선 과정을 통해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관계를 회복시킨 것이 북한의 실리주의 외교를 보여준다. 반면, 관계개선의 이익이 다했다 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랭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 북한에게 있어 남북관계는 별다른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남한에게서 얻어갈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혹시 올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당선돼 새로운 북미관계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다시 남한에 접근해올 수도 있다. 미국의 새 행정부에 접근하기 위해 남한의 도움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을 실리주의라는 관점에서 대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남북관계를 빨리 개선시켜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마음이 급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철저히 실리에 기반해 움직이는 상대에게 이상과 명분에 근거한 정책을 펴게 되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정부도 보다 현실론에 기반해 때로는 남북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강약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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