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북한 “조국해방전쟁, ‘영원히 잊지 말자’”

자강도 만포시에 위치한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 묘역.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자강도 만포시가 내려다보이는 압록강변에 서면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여러 개의 묘지가 유독 눈에 띈다. 1950-1953이라는 숫자와 함께 ‘인민군 전사들을 영원히 잊지 말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바로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 묘역이다. 북한은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미제국주의와 이승만 괴뢰도당이 북침하여 발발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전한다. 그 전쟁에서 전사한 영웅들을 기리는 묘역에 조성된 ‘영원히 잊지말자’라는 문구가 한동안 뇌리에 스쳤다.

또한 북한에는 신천박물관이라는 곳이 있다. 김정은이 직접 리모델링을 지시한 곳으로, 6.25전쟁 때 미군학살 만행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조성된 곳이다. 신천박물관의 구호 역시 핵심내용은 ‘잊지 말자’다.

69년 전 그해 여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차갑고도 시린 날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아픔이 너무도 한스럽고 깊다. 원한 맺힌 분단의 고통이 70여 년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 지금도 고통은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대립과 갈등이 계속된다. 북한이 체제결속력과 충성도를 높이는 선전선동은 다름 아닌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에 대해 피의 복수를 가하자는 논리다. 조국강토를 침략해 자신들의 부모, 형제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미제와 남조선(한국)에 대해 천만 배 복수하자며 외쳐댄다. 북한 정권의 체제결속은 주민들에게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적대심을 고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하며 부르던 6.25노래는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간다. 그런 노래가 있었나 할 정도로 낯선 기억이 되었다. 우리가 전쟁을 비롯해 대형 사고를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똑같은 아픔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함께 기억하고 기념한다. 6.25에 대한 기억은 애써 지워야 할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에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됨을 상기하자는 의미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가 말살되는 사회주의와 독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음을 가슴에 새기자는 의미다.

잿더미가 된 전쟁의 폐허에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조국에 청춘을 묻었다. 베트남전쟁의 포화 속으로,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로,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모래바람 맞으며 그렇게 일구어진 조국이 바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필자는 70년대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았다. 끼니를 걱정하지 않았으며 배고픔으로 고통당한 적은 없다. 보릿고개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야 찾아봐야 할 단어였다. 태어나서 보니 이미 너무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었다.

또한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소위 386선배들처럼 데모로 휴교하는 날은 없었다. 대학생 시절 민주화를 위해 머리띠 둘러매고 캠퍼스가 아닌 거리로 나설 필요가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누리게 된 경제적 풍요로움과 민주화는 모두 나의 부모님과 형님누님들로부터 거저 받은 선물이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지금 살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된 조국과 함께 분단도 물려받았다.

이제 그 분단을 끝내고 통일 조국의 초석을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 세대의 몫이라 생각한다. 전쟁의 아픔을 망각하지 않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앞선 세대의 땀과 눈물을 기억하며 새로운 통일 조국을 세우는 일이 소명으로 남겨졌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는 바로 앞서 걸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노둣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발걸음을 딛고 통일 조국의 미래로 한 발 더 나가고자 한다. 69년 전 전쟁의 포성은 한반도에 잠시 멈춘 상태다.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영웅들을 기념하며, 그날의 아픔을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 먼저 그리할 때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가 번영하는 통일 조국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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