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대집단체조 공연 시작과 아이들 동원

지난해 평양 5.1경기장에서 개최된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에서 “지금 보시는 배경대는 평양시의 고급중학교학생 1만 7490여명이 출연하고 있습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햇빛도 밝은 나의 조국 자유론 인민의 나라, 원수님(김정은) 높이 모신 영광 이 땅에 차고 넘쳐라…”

북한 노래 <인민의 나라>라는 곡의 가사 일부다. 북한이 이달부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개최한다고 한다. 공연의 이름은 바로 <인민의 나라>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6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가 풍치수려한 능라도의 5월1일 경기장에서 이달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진행된다”고 밝혔다.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대집단체조 공연은 지난 2002년 4월 김일성 90회 생일 및 인민군 창건 70주년을 기념하여 시작되었다. 당초 김일성의 생일(북한에선 태양절로 선전)을 고려하여 <태양의 노래>로 하였으나 김정일의 지시로 최종 <아리랑>으로 확정되었다. 2002년 개최 후 2003, 2004, 2006년 수해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 2012년까지 매해 개최되었다. 2012년 9월 16일에는 김정은이 첫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중단되었던 아리랑 공연은 지난해 공화국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며 <빛나는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 기간에 남한 대통령을 비롯한 대표단은 <빛나는 조국>의 일부 내용을 관람했다.

<빛나는 조국> 공연은 서장 <해솟는 백두산>에 이어 <사회주의의 우리 집>, <승리의 길>, <태동하는 시대>, <통일삼천리>, <국제친선장> 등의 7장으로 구성되었다.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하고 최고지도자의 영도에 따라 지금의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빛나는 조국>공연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4장 <통일삼천리>다. 노동신문은 이 장에 대해 “역사적인 4.27선언의 기치 따라 우리민족끼리 통일의 새력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경렬한 지향이 통일삼천리로 아름답게 수놓아졌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무대배경 화면에는 <4.27선언,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라는 문구가 화려한 카드섹션으로 새겨졌다. 이어서 <천하무적 자위의 국방성새>, <우리 군대의 전통 백전백승>, <불멸의 선군령도업적>, <사회주의만세소리>, <인민사랑 후대사랑> 등의 문구가 펼쳐졌다.

아리랑 공연 자체가 북한 체제선전과 지도자의 성과와 업적을 자랑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빛나는 조국> 공연 역시 정권 수립 70주년에 맞추어 사회주의체제의 승리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목적을 담았다. 화려한 무대와 드론을 포함한 첨단기술을 도입하면서 김정은 시대의 성과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내부 체제결속과 대외 체제선전을 위한 목적으로 공연하지만 실제 10만 명 가량의 대규모 인원이 동원되는 행사로 인권침해 논란이 늘 제기되었다. 2007년 기네스에 등재될 만큼 대규모 행사인 대집단체조는 공연 6개월 전부터 연습이 시작되어 각 학교 단위별로 어린이와 학생 등을 동원한다. <후대사랑 미래사랑>이라는 글귀가 무대배경 화면에 새겨지고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구호 아래 아이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문구 아래 군대식 집단체조를 선보였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새로 창조된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는 “위대한 당의 령도밑에 자주적 존엄과 긍지를 떨쳐온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의 력사, 인민의 꿈과 리상을 실현해나가는 사회주의 조국의 참모습을 대서사시적 화폭으로 펼쳐보인다”고 한다. 어린이의 꿈과 이상을 무참히 짓밟고 정권의 선전장에 활용하는 한 <인민의 나라>라는 이름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 선전하는 인민의 나라에 정작 인민은 없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포착된 트럭에 탄 북한 학생들. 어디론가 동원되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사족을 하나 달면 필자는 지난주 북중접경지역을 다녀왔다. 봄의 절정기라는 5월의 푸르름은 최소한 압록강 너머 북녘의 마을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벌거숭이가 된 누런 산비탈에서 밭을 가는 사람들 사이로 농촌동원에 나선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트럭 짐칸에 한가득 실려 가파른 산길을 굽어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찾기 힘들어 보였다. 누군가는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며 대북지원이 필요하다며 열을 올리지만, 그 아이들은 지금 학교가 아닌 트럭 짐칸에 실려 산으로 들로 농촌지원에 동원되고 있다. 대북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고, 독재정권에 이용당하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 남북한 아이들이 함께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우리가 바라는 통일조국의 모습이다.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를 외치며 각종 행사에 아이들까지 동원하는 6월의 북녘땅에도 진정어린 새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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