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포커스] 김정은의 위기의식과 구태의연한 타개 전략

북한이 설 연휴를 앞두고 시작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2차 전원회의 일정을 사흘 째 이어갔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올해 새로 수립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이행을 위해 보낸 지난 한 달 간의 기간의 총화를 진행하고 각 부문에서 ‘오류’를 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특히 올해 경제활동에 대한 법적 감시를 강조하며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 이행이 강화될 것임을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8일 북한에서는 8차 당 대회의 연장선상에서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열렸다. 북한 당국이 당 대회를 개최한 후 한 달 안에 최고인민회의(제14기 4차 회의)와 전원회의(제8기 2차 회의) 등 굵직한 행사들을 연이어 소집한 것은 현 시기의 엄중한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 국면을 타개할 참신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세로 북한 경제는 이미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에 따르면, 국경 폐쇄로 인해 평양에서조차 생필품 조달이 어렵다고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발행한 ‘CIA 월드 팩트북’에서도 북한 주민 가운데 26%만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지적됐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경제위기의 첨예화에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웬만해선 대북제재 기조를 완화해줄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감으로 인해 북한 당국은 당 대회 직후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실패의 책임을 물어 국가계획위원장이었던 김일철을 박정근으로 대체하는 등 내각을 대폭 물갈이했고, 3주 만에 다시 전원회의를 열게 된 것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집권 10년차인 올해에는 반드시 가시적이고 획기적인 경제성과를 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절실함 때문에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은 직접 보고하고 과업 실행방안을 제시했다. 김정은은 2일차 의정보고(2/9)에서 농업을 발전시켜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업을 사회주의 건설에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결실을 이뤄야할 국가적 중대사로 규정했다. 그만큼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식생활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정권에 대한 불만 지수도 그에 비례하여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 문제는 북한 당국이 직면한 최대의 난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한국의 지원을 마다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도 사실상 폐쇄하면서 어떻게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북한 자체의 농업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도 아니다. 결국 김정은의 식량 문제 개선 의지는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강조했던 립 서비스의 재판(再版)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가 북한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생활을 개선시킬 의지가 있다면 남북경협을 활성화하는 등의 실현가능한 지침이 나왔어야 했는데 김정은과 토론자들의 언급은 위기의식에 가득 찬 말의 성찬에 그쳤다.

3일차 회의(2/10)에서도 김정은은 경제문제의 해결 방안을 강조했다. 김정은은 인민경제계획의 수행을 법적으로 확고히 담보하기 위해 검찰기관을 비롯한 법 기관들의 역할을 높이겠다고 했다(“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3일회의 진행,” <노동신문>, 2021, 2,11). 토론에 나선 내각총리 김덕훈과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조용원 등은 ‘혁명적인 사상과 방침’들을 높이 받들고 새로운 5개년 계획의 첫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투쟁에 일심전력할 각오를 재차 다짐했다.

이 같은 내용들로 미뤄볼 때 향후 북한 당국은 경제문제 해결을 빌미로 더욱 강화된 주민 통제를 실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혁명적 사상과 방침을 강조하면서 검찰기관 등 법 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는 지난해 12월 4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강도 높게 실행하여 ‘자본주의 날라리풍’의 싹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북한 당국이 그렇게 ‘사회주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면 주민들에게 배급이라도 철저하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고질적인 경제난으로 배급제를 비롯한 계획경제 시스템은 붕괴된 지 오래다.

경제난의 해결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봉착했다면 북한 당국은 대남, 대미관계의 개선을 통한 제재 해제와 경제협력 등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지만, 대남, 대미 관계 개선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은 군사력 강화 의지를 재차 강조했는데 거기서 대외관계에 관한 그의 의중을 유추해볼 수는 있겠다.

2월 10일자 <조선중앙통신>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전원회의 2일회의 진행”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김정은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선차적으로 해결하며 핵심적이고 전략적인 첨단기술들을 적극 개발”하는 문제에 관해 언급했다. 아울러 김정은이 “인민군대와 군수공업부문이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하여 올해에 수행하여야 할 전투적과업들과 대남부문과 대외사업부문의 금후 활동방향을 명백히 찍어주시고 이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철저히 집행해나갈 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같은 언급은 8차 당 대회 당시 등장했던 김정은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8차 당 대회 때 김정은은 핵 증강 의지를 통해 한미일 삼국에 압박을 가했다. 당 대회 후 열린 열병식에서 북한 당국은 한일 양국을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 핵무기와 성능이 개량된 것으로 보이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을 공개하며 핵 증강 의지를 선보였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은 강력한 국방력 건설을 토대로 한미일 삼국에 대해 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전략적인 첨단기술 분야를 적극 개발하겠다고 하여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한 전술/전략 무기들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판단된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대외관계에 임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번 8기 2차 전원회의의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경제 회생을 위해 사회주의식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과 핵 증강을 비롯한 국방력 강화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회생과 국방력 강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 병진노선의 실패에서 명백해졌다. 북한 당국은 핵 증강(핵 보유)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원회의에서 그토록 비중 있게 내놓은 인민경제 회생 방안은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인민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수많은 보고와 토론들은 결국 엄격한 법적 통제를 통해 인민 대중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겠다는 구상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고 김정은의 위기의식도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정립돼야 하는가. 한국 정부는 대북인식에 있어 확증편향을 지양해야 한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현재처럼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맹신하며 2018년의 추억에 머물기보다는 북한 당국이 핵 증강과 한반도 무력통일 의지를 과시하고 있는 현실을 냉철히 봐야 한다. 막연한 기대나 환상에 입각한 대외정책은 국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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