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열린 한·EU(유럽연합) 영상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바라기로는 미국의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라며 “미 대선 이전에 북미가 다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3일에는 서훈(안보실장)-박지원(국정원장)-이인영(통일부 장관)-정의용·임종석(외교안보특보) 등 이른바 대북통 인물들을 안보 라인의 전면에 포진시켰다. 한반도 운전자 역할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핀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외교가에선 ‘10월 판문점 미북 회담 추진설’ 등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 재개’ 바람과는 달리,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우리 기억에서 삭막하게 잊혀가던 조미(북미) 수뇌회담(정상회담)이란 말이 며칠 전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국제사회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라고 하면서, “조미 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되고 있는 데 대해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라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발언을 의식한 듯 “당사자의 생각에 대해선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섣부르게 중재 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어쭙잖게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방한하는 7일에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라며 재차 북미회담 거부를 분명히 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더불어 여권에서 ‘(최선희의 담화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라는 등으로 평가한 데 대해,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라면서 “자꾸만 불쑥불쑥 때를 모르고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북남관계만 더더욱 망칠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10일 새벽에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결론적인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대미 담화를 냈다. 특히 ‘올해 중 정상회담은 미국이 아무리 원해도 안 된다’라면서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1) 미국에나 필요하지 북한에는 무익하고, 2) 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기도 없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아 봐야, 시간이나 때울 뿐이고 그나마 유지돼 온 정상 간의 특별한 관계까지 훼손될 위험이 있으며, 3) ‘쓰레기 같은’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예언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김여정 담화를 비롯해 북한 인사들이 발표한 담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라거나 “희망적인 해석은 금물이다”라는 등으로 상반된 평가를 하고 있지만, 모두가 피상적인 평가일 뿐이다. 북한이 본질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최소한 이미 확보하고 있는 핵미사일 능력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여정은 담화에서 ‘미국이 지금에 와서 하노이의 회담탁(會談卓)에 올랐던 일부 제재 해제와 우리 핵 개발의 중추신경인 영변 지구와 같은 대규모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다시 흥정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품지 않기 바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노이 회담) 이후 우리는 제재 해제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의제에서 완전 줴던져 버렸다’라고 했다. 또 ‘「비핵화 조치 대(對) 제재 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 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對) 조미 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이는 이제 ‘북한 비핵화’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며, 결국 기존의 핵미사일 능력을 온전히 유지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닌 것이다.
둘째, ‘국가 핵 무장력을 완성’한 북한이 미국과 대화와 협상을 하더라도 한국(정부)은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 17일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남북협력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고 접경 지역의 재해재난과 한반도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할 때 우리 겨레의 삶이 보다 안전해질 것”이라며 보건 분야의 공동협력을 제안하는 등 독자적 남북 협력사업 추진 의사를 지속 내비쳤다. 구체적으로 ▲남북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유해발굴 사업 ▲이산가족 상봉 등이다.
하지만,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이런 성의와 노력을 무시한 채, 대북 전단살포를 구실 삼아 남북 화해 분위기의 외형적 상징이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49분)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세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의 만남을 비롯해 그동안의 화해 분위기 조성 노력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일과성의 이벤트였을 뿐이었다는 것을 확인해준 행태이자, 한국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최근 북한이 발표한 일련의 담화는 북한의 이런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의 저의는 분명하다. 첫째, 저들의 핵미사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는 한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과 둘째, 한국(정부)을 대화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런 태도는 그동안 북한이 유지해 온 대남전략의 상수(常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럼에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운전자론’을 밀고 나간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질병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정확한 진단(diagnosis)과 치료가 가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의도가 명백해진 이상, 이제야말로 ‘북한 비핵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북핵은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사활적인 문제가 아닌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