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과학기술성과도입법’을 개정해 생산 현장에 도입할 기술의 선정 기준에 ‘기술경제적 지표 갱신’과 ‘제품 품종 확대’를 추가하고, 도입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수행률을 거짓 보고한 책임자에게 무보수 노동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데일리NK는 2025년 6월 1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938호로 수정·보충(개정)된 과학기술성과도입법을 입수했다. 조문 구성은 구법의 5장 47개에서 6장 50개로 늘었다. 2020년 개정판 구법의 제5장 ‘과학기술성과도입사업에 대한 지도통제’는 ‘법적 책임’으로 바뀌었고, 시행일을 정한 부칙이 제6장으로 신설됐다.
북한이 법 개정을 통해 과학기술성과 도입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친 것은 아니다. 계획의 작성과 시달, 계약의 체결과 이행, 특혜와 장려를 축으로 하는 구법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어떤 기술을 성과로 인정할 것인지 기준을 구체화하고, 계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지를 보다 촘촘하게 규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사회 전반에서 법과 제도를 통한 통제를 강화해 온 가운데, 최근에는 경제·산업 관련 법률에서도 ‘법적 책임’을 별도로 떼어 위반 행위별 처벌을 구체화하는 모습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성과도입법 개정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도입할 과학기술성과의 선정 기준이다. 구법 제12조(도입할 과학기술성과의 선정원칙)가 5가지 기준을 제시했던 것과 달리 개정법 제12조는 조문 제목을 ‘선정에서 지켜야 할 요구’로 바꾸고 기준을 6가지로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구법에 있던 ‘노동력·에너지·원가 절약’과 ‘선진적이고 실리적이며 실정에 맞는 것’이라는 문구가 빠졌다. 대신 개정법에는 ‘기술경제적 지표를 갱신하는 데 이바지할 것’과 ‘생산제품의 품종 확대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새롭게 명시됐다.
‘선진’, ‘실리’와 같은 비교적 추상적인 표현보다 생산성과 효율, 제품 다양화 등 실제 결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앞세운 셈이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는 데 의미를 두기보다 그 기술이 생산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평가하겠다는 방향으로 읽힌다.
중요 과학기술성과와 관련해서도 구법은 중앙과학기술행정지도관리기관이 성과를 ‘선정한다’고 규정했지만, 개정법에서는 이를 ‘신청한다’로 바꿨다. 계획 초안을 작성하도록 한 제13조 역시 ‘선정된’ 성과에서 ‘신청된’ 성과로 표현이 변경됐다.
이 같은 접근은 최근 북한의 경제정책 집행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NK는 지난 3월 중앙당 경제부와 내각의 공동 지시문이 신에너지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산업화를 주문했으며, 이를 전달받은 평안남도 인민위원회가 단순한 생산량 달성을 넘어 기술을 활용한 공정 현대화와 생산 효율화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질적 발전’ 강조한 北, 신에너지·AI 기술 통한 ‘경제 자립’ 주문)
결국 ‘얼마나 생산했느냐’뿐 아니라 ‘어떤 기술을 도입해 생산 구조를 얼마나 개선했느냐’까지 실적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계획 미달·허위보고까지 처벌…경제법 전반의 ‘책임 강화’ 흐름
이번 개정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는 법적 책임 규정이다. 구법은 제47조 한 조문에서 법을 어겨 과학기술성과 도입 사업에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책임 있는 일꾼과 공민에게 정상에 따라 행정적 또는 형사적 책임을 지운다고만 규정했다. 어떤 행위가 어떤 처벌로 이어지는지는 법문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반면 개정법은 이를 4개 조문으로 나눠 제46조는 경고·엄중경고, 제47조는 무보수 노동, 제48조는 강직·해임·철직, 제49조는 형사책임을 각각 규정했다.
제46조는 ▲도입 계획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 ▲계획 수행에 필요한 조건 보장과 원료·자재·자금의 계획화를 제때 하지 않은 경우 ▲계획 실행분의 확인과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 ▲특혜 조치를 정해진 대로 실시하지 않은 경우 ▲‘이득금’의 분배와 이용 질서를 어긴 경우 등을 경고 처벌 대상으로 정했다. 정상(情狀)이 무거우면 엄중경고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제47조에는 3개월 이하의 무보수 노동 처벌 사유가 명시됐다. ▲도입 계획을 세우지 않았거나 형식적으로 세운 경우 ▲계획 수행을 미달한 경우 ▲수행률을 거짓 보고한 경우 ▲기술과제서나 설계를 자의적으로 변경해 사고를 일으킨 경우 ▲심의를 받지 않은 과학연구 결과를 도입해 생산과 경영활동에 지장을 준 경우 등이다. 정상이 무거우면 3개월 이상의 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계획 미달과 허위보고, 부실한 설계와 검증이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자 개인에 대한 처벌 사유로 직접 연결된 것이다.
이는 최근 다른 경제·산업 관련 법률 개정에서도 확인되는 흐름이다. 2025년 개정 노동보수법은 과거 한 조문에 묶여 있던 처벌을 경고·엄중경고, 무보수 노동·노동교양, 강직·해임·철직으로 나눠 규정했다. 같은 해 개정된 수산법 역시 ‘법적 책임’을 별도 장으로 재구성하고 일부 위법행위에 대한 벌금 수준을 크게 높였다. 도로교통법에서도 차량 억류와 몰수 등 위반 행위별 제재가 구체화됐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법을 사회 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 온 북한이 이제 경제 관리에서도 ‘무엇을 하면 안 되는가’뿐 아니라 누가, 어떤 결과에 대해, 어느 수준의 처벌을 받을 것인지까지 법률에 명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북한은 올해 7월 당·정·군 연합회의에서도 ‘강건한 질서’와 ‘엄격한 법규율’을 앞세우며 국가사업 전반에서 법질서를 강화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데일리NK는 지난 6월 중앙당 조직지도부가 9차 당대회 결정 관철 실태를 검열하면서 생산 실적 부풀리기와 계획 달성률 조작 등 허위보고 행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열조는 공장·기업소와 농장의 장부 기록을 실제 당 조직에 보고된 자료와 대조하는 방식으로 실적 조작 여부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상반기 사업총화 앞두고 허위 보고 행위 차단·단속 나섰다)
과학기술성과도입법을 직접 적용한 사례라고 볼 수는 없지만, 개정법이 별도의 처벌 사유로 규정한 ‘수행률 거짓 보고’와 사실상 유사한 문제를 북한 당국이 이미 경제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술·설비 관리 실패가 실제 간부 처벌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정련공장의 폐수 방류 문제가 외부에 알려진 뒤 중앙 조사조가 시설 관리와 환경 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했고, 기술과장과 설비과장, 화학실험실 책임자 등이 해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는 3개월 단련대 처벌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공장에서는 생산설비 도면을 재검토하고 폐수 정화시설 등을 포함한 현대화 설계를 추진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위성에 찍혀 나라 망신”…평산 우라늄공장 간부 줄줄이 처벌)
이 역시 과학기술성과도입법에 따른 처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기술·설비 관리의 실패를 책임자 개인의 행정·인사상 책임으로 연결하고, 처벌 이후 다시 기술개건과 현대화를 요구하는 북한식 관리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이번 법 개정과 맞닿아 있다.

과학기술로 ‘부국강병’ 외치는 北…성과 촉진할까 압박 수단으로 작동할까
북한이 과학기술성과의 평가와 책임을 이처럼 구체화하는 배경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학기술 중시 기조도 자리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5월 7일 9차 당대회 결정 관철을 촉구하는 논설에서 과학기술을 “사회주의건설을 견인하는 기관차”이자 “국가경제의 주되는 발전동력”이라고 했다. 특히 과학기술을 익혀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새 5개년계획 기간 과학기술사업의 기본 방향으로 국가경제의 자립화·현대화 수준 제고와 생산의 질적 성장을 제시했다.
이번 개정법에 ‘기술경제적 지표 갱신’과 ‘제품 품종 확대’가 새롭게 들어간 것도 이런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을 연구소나 대학의 연구 성과로 남겨두지 않고 실제 공장과 기업소의 생산력, 품질, 효율 향상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김종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기술경제적 지표 갱신은 국가의 경제발전계획 능력과 관리 능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의미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제품 품종 확대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농축산 분야의 과학기술 성과 확대를 강조하는 것”이라며 “실생활 수요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수요지향적 국가혁신활동 강화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국방과학 연구기관의 주요 무기시험과 군수공장들을 직접 챙기며 무기체계의 기술적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법 자체는 민간 경제와 산업에 적용되는 과학기술성과 도입을 다루고 있지만, 김정은 체제에서 과학기술은 경제 현대화와 국방력 강화를 동시에 떠받치는 핵심 국가 역량으로 취급되고 있다.
결국 김정은 정권이 원하는 것은 ‘과학기술강국’이라는 구호 자체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실제 생산력과 군사력, 국가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과의 기준을 구체화하고 계획 미달과 허위보고에 책임을 묻도록 한 이번 개정법에는 이런 의도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실행 조건이다. 개정법 제46조는 계획 수행에 필요한 조건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거나 원료·자재·자금을 제때 계획화하지 않은 경우에도 경고 처벌을 하도록 했다. 생산 현장뿐 아니라 조건 보장과 계획화를 맡은 상급 책임자 역시 원칙적으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중요한 변화로 보인다. 북한 기업소가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는 원인이 반드시 현장 책임자의 태만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력과 원료가 공급되지 않거나 필요한 설비와 부품, 기술 인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과학기술성과를 도입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문제는 실제 법 집행에서도 이런 구조적 책임을 상급 단위에까지 동일하게 물을 수 있느냐다. 설비와 원료, 기술인력과 검증 여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경제적 지표와 계획 수행률만 강조한다면 법은 기술혁신을 촉진하기보다 현장 간부들에게 계획 달성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성과 미달을 처벌하면서 동시에 허위보고까지 강하게 단속한다면 현장 책임자는 달성하기 어려운 계획과 사실대로 보고할 경우 받을 문책 사이에 놓이게 된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기술경제적 지표와 계획 수행률이 실제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정해지는지, 성과를 누가 검증하는지, 그리고 원료·자재·자금 등 조건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상급기관에도 법에 규정된 책임이 실제로 적용되는지 여부다.
과학기술을 경제와 국방력 강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목표는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보다 목표와 처벌을 앞세운다면 ‘과학기술강국’을 향한 법제 정비가 오히려 또 하나의 계획 규율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과학기술의 생산현장 적용과 구체적인 성과 창출은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북한이 고립된 혁신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제한 조건을 언급하며 “북한의 국가주도 혁신성과 강화는 일부 부문에서는 성과를 얻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제한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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