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 고급중학교 혁명역사 교사, ‘상(上)반동’으로 몰린 이유는?

[북한 비화] '수령의 인간적 풍모' 강조한 김정은 주문대로 학생 가르쳤다가 정치범수용소행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13일 평양 만경대구역 광명고급중학교에서는 우수한 교수방법들을 창조하여 전국에 일반화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위대성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는 데 대하여 깊이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됩니다.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2019년 김정은은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참신한 선전선동으로 혁명의 전진 동력을 배가해나가자’를 통해 사상교양에서 수령의 신비화, 신격화를 지양하라고 언급했다. 이는 김일성·김정일 시대 허무맹랑하고 과장된 우상화 대신 보다 인간적인 선전·선동으로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유도해내라는 주문이었다.

이 같은 언급이 있고 나서 교육성에서는 전국의 학교들에 수령의 인간적인 풍모에 중점을 둔 위대성교양 교수안(강의안)을 새롭게 마련하고, 2학기부터 달라진 교수안에 따라 혁명역사 수업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교육성은 2학기 개학 당일 도·시·군 교육부문 지도일꾼들의 참관하에 새로 바뀐 교수안을 기초로 한 혁명역사 수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2학기 개학 첫날인 2019년 9월 2일 함경남도 신포시의 신포고급중학교 3학년 2반 교실에서는 11명의 참관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 과목 첫 수업이 시작됐다.

교단에 선 김원철(당시 51세) 신포고급중학교 혁명역사분과장은 김일성이 혁명의 사령부를 백두산 밀영에 두고 북중 국경을 넘나들며 항일무장투쟁을 국내로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는 내용으로 수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이 학생은 “고급중학교 2학년 때 ‘광복의 천리길’ 답사를 가면서 양강도 날씨가 너무 추워 우리(신포) 바닷가 지방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백두산 밀영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라고 교과서에 서술돼 있는데, 그런 환경에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분과장은 “백두산 날씨는 학생동무가 말한 것처럼 엄혹하다. 우리 수령님도 항일유격대원들도 모두 인간일진대 어떻게 그런 혹한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라며 “연기로 적들에게 위치가 노출될 수 있다면서 모닥불도 제대로 못 피우게 한 밀영 생활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면 혹한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한 일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 세대들의 혁명사상 교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해 혁명역사 교수안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했다.

그 순간 교실 뒤에 앉아 수업을 지켜보고 있던 참관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김 분과장은 영문도 모른 채 시당(市黨)에 불려간 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내와 두 딸도 그가 시당에 불려간 지 이틀이 지난날 밤 도 보위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김 분과장이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갔다는 건 그해 말께 당시 이 사건을 취급한 보위원들과 그 가족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수령의 혁명활동을 그릇되게 가르쳤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김 분과장은 보위부 조사 과정에서 “당에서 원수님 말씀 사상에 따라 수령을 인간적으로 공감하도록 새 세대들을 교양하라고 해서 그대로 했을 뿐이다. 인간이 영하 40도 강추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냐고 묻는데, 현명성으로 살아남았다 하겠느냐”고 말해 완전한 ‘상(上)반동’으로 낙인찍혔다.

겉으로는 사상교양의 변혁을 내세우면서 정작 수령 혁명활동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객관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교원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김정은 정권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한편 이 사건은 그해 말 전국 교원들을 교양하는 통보자료에 담겨 내려졌다. 그 후 위대성교양 교수안은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김정은의 언급이 있기 전으로 도로 되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북한의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수령의 위대성을 세뇌해 우상화, 신격화하는 교육이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