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다가오면서 이른바 ‘달리기’를 하는 북한의 장사꾼들이 고추 매입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장철을 염두에 두고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는 것인데, 고추를 파는 농촌의 주민들이 북한 돈 대신 위안화를 요구하면서 결제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15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장사하는 달리기 장사꾼들이 최근 혜산시 농촌 지역에서 마른 고추와 생고추를 사들이고 있다”면서 “10월부터는 고추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미리 사뒀다가 그때 가서 값을 올려 팔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달리기 장사꾼들은 도시에서 생필품과 의약품 등 농촌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구해 농촌으로 가져가 판매하고, 반대로 농촌에서는 농산물을 확보해 이를 다시 도시로 가져가서 판매하는 식으로 장사한다.
계절에 따라 이들이 농촌에서 매입하는 농산물이 달라지는데, 특히 가을에는 김장철과 고추장을 담그는 시기를 겨냥해 고추를 집중적으로 사들인다.
소식통은 “올해 여름에 기온이 높아서인지 고추 농사가 잘되지 않아 다른 해보다 고추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장사꾼들도 고추를 먼저 확보하려 하고 있어 매입 경쟁이 예년보다 더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특히 올해는 고추를 판매하는 농촌 주민들이 북한 원화보다 중국 위안화를 요구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한다.
앞서 본보는 북한 돈의 가치 하락이 지속되면서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 자산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여윳돈을 외화로 바꿔 보유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외화 가져야 손해보지 않는다”…北 농촌서도 외화 선호 현상 확산)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에는 농촌 주민들이 농산물 거래에서도 외화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예전에는 농촌 주민들이 중국 돈을 줘도 쓸 줄 모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른다면서 받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국돈을 받지 않으려 한다”며 “때문에 요즘 농촌에 고추를 사러 가는 장사꾼들은 모두 중국 돈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실제 지난달 말 고추 매입을 위해 갑산군을 찾은 한 달리기 장사꾼은 “중국 돈보다 국돈을 더 많이 가지고 갔는데, 고추를 파는 주민들이 중국 돈으로 달라고 해서 일단 국돈을 주고 다음에 다시 와서 중국 돈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며 “이제는 농촌 장사도 중국 돈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실정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고추 매입 가격은 농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마른 통고추의 경우 1㎏당 15~20위안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반에는 최고 매입 가격이 1㎏당 17위안 정도였으나 달리기 장사꾼들이 몰리면서 20위안까지 올랐다는 전언이다.
아직 말리지 않은 붉은 생고추는 1㎏당 2위안가량에 매입한다. 장사꾼들이 직접 말려 건고추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생고추도 족족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위안화 기준으로 보면 고추 가격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를 북한 돈으로 환산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3~4년 전에는 1위안당 환율이 북한 돈 1250~1300원 수준이어서 같은 수준의 위안화 가격을 북한 돈으로 환산하면 2~3만 원 선이었는데 현재는 약 30만 원 수준에 이른다.
위안화 대비 북한 원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같은 양의 고추를 북한 돈으로 사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농촌에서 고추를 파는 주민들이 북한 돈보다 위안화를 요구하는 현상도 이 같은 화폐가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한편, 현재 혜산시 장마당에서는 마른 통고추 1㎏이 18~30위안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들은 이 가격마저도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금이 가장 쌀 때”라며 미리 사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식통은 “돈 벌기는 힘든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경제적 부담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며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 사이에서는 ‘고추 먹는 이빨을 뽑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추를 사 먹기조차 힘들어졌다는 탄식이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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