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과 북한 주민의 삶⑤] ‘괴뢰 말투’ 이어가는 北 주민들

<편집자주>
최근의 헌법 개정은 북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취재를 통해 당국의 제도적 선언이 실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연속 추적해 보도합니다.
괴뢰말제거기
북한 스마트폰 메시지 앱에서 한국식 단어를 입력하면 다른 단어로 자동변환된다. 특정 단어는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오빠’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동지’로 바뀌고 경고 메시지가 표시된다. /사진=데일리NK

북한이 올해 개정 헌법에 평양문화어 보호와 적극적 사용을 명시한 이후 학교와 직장, 주민 조직을 통한 말투 통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기야’, ‘오빠’, ‘쪽팔리다’ 같은 한국식 표현은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라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적·계급적 문제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최근 데일리NK가 평양시와 평안북도 소식통을 통해 평양, 신의주시 상황을 취재한 결과, 두 지역에서는 지난 7월 중·하순 당 및 근로단체 조직, 학교를 통해 평양문화어 사용과 이른바 ‘괴뢰 말투’ 근절을 강조하는 강연과 학습이 진행됐다.

평양시 소식통은 “7월 말 당과 사회단체 조직을 통해 지시가 전달됐고, 토요학습에서 관련 강연이 있었다”면서 “한국 냄새가 나는 발언은 우리 제도를 위협하는 정치적·계급적 적대 행위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소식통도 “7월 중순 신의주시 내 모든 학교와 청년동맹 조직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철저히 지키라는 강연과 학습이 있었다”면서 “한국말은 외래어가 뒤섞여 고유한 조선어의 모습을 잃은 ‘잡탕말’이고, 외부 사상문화에 오염됐다는 증거라고 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조직 학습과 상호감시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검사와 공개비판, 안전기관 조사까지 동원하고 있다. 다만 단속 방식과 처벌 수위는 지역과 적발 경위, 개인의 계층적 배경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주민들도 공개된 장소와 사적인 공간에서 말투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단속에 대응하고 있었다.

헌법 명문화 뒤 ‘왜 지켜야 하나’ 강조…신고·휴대전화 검사 병행

북한은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한국식 어휘와 문법, 억양을 사용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평양문화어보호법에 ‘공개처형’ 명시… “군중 각성시켜야”) 해당 법은 한국식 말투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유포한 행위에 최대 사형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 위반자를 공개처형해 주민들을 각성시킨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언어를 통제하기 위해 극형까지 법률에 명시한 것은 북한 당국이 한국식 언어 확산을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체제 존립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2026년 개정 헌법 제54조에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새로운 헌법 조항이 말투 단속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미 시행되던 평양문화어보호법과 조직 통제에 국가 최고 규범의 정당성을 더한 셈이다.

실제 평양 소식통은 “예전에도 비슷한 강연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헌법에 명시됐다는 설명과 함께 왜 평양문화어를 지켜야 하는지를 많이 강조했다”고 말했다. 신의주에서도 “젊은 청소년들의 한국식 표현과는 추호의 용서도 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고 한다.

단속은 한 기관이 전담하기보다 당과 청년동맹·직맹·여맹·인민반이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문제가 커지면 안전·보위기관이 개입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평양에서는 일상적인 무작위 검사보다 주변 사람의 신고를 계기로 조사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이다. 평양시 소식통은 “손전화(휴대전화) 검사를 한다고 하면 주민들은 ‘또 누가 신고했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신고 기반 단속은 지난해 군중신고법에 관한 준법교육을 통해 확인된 주민 상호감시 강화 흐름이 언어생활의 영역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군중신고법’ 내세워 주민 상호 감시 주문…법적 구속력 높일 듯)

반면 신의주에서는 길거리 대화를 듣고 단속하거나 학교와 직장에서 불시에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방식이 동원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보문(문자메시지)에 남은 표현은 말로 주고받은 대화보다 명확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조사와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처벌의 위협은 조직생활을 통해 일상화된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한국식 표현을 사용한 학생이나 노동자를 공개비판하고, 청년동맹과 여맹 등은 생활총화를 통해 구성원들이 서로를 비판하고 신고하도록 요구한다.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안전기관에 넘겨 법적 처벌을 받게 한다.

통제는 주민들이 사용하는 전자기기 내부로도 확대됐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북한 스마트폰을 분석한 결과, 일부 통보문 앱은 ‘오빠’를 입력하면 ‘동지’로 자동 변환하고 ‘자기야’에는 금지어 경고를 띄웠다. ‘남친’, ‘여친’, ‘쪽팔리다’, ‘화이팅’ 등도 삭제되거나 북한식 표현으로 바뀌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북한 스마트폰 메시지 앱에 한국식 표현 ‘오빠’ 입력해보니…)

북한 당국은 이렇듯 법과 형벌, 조직생활에 이어 휴대전화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주민의 언어를 통제하고 있다. 입으로 소리 내는 말뿐만 아니라 통보문의 글자까지 추적하고 걸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과 교수는 “북한은 과거 평양문화어를 혁명의 수도인 평양의 말을 중심으로 민족어를 발전시키는 문제로 설명했지만, 최근에는 ‘국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애국심과 연결하고 있다”며 “평양문화어의 헌법 명문화는 남북의 언어를 분리하고 북한 고유의 언어체계를 확립하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전 교수는 “북한은 언어를 주민의 생활문화이자 사상 문제로 보고 세포비서와 기관 간부 교육까지 동원해 바로잡으려 한다”며 “이처럼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있기 때문에 헌법에까지 명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오빠”라고 했다가 집중 비판…주민들은 사람, 장소 가려서 사용

평양에서는 최근 한 여맹 간부가 남편을 ‘우리 오빠’라고 불렀다가 같은 조직 부위원장의 신고로 불려 가 수 시간 비판을 받고 분기 총화에서 다시 집중 비판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주변 주민들은 “이게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이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들은 상호비판에 적극 나서지 않았고, 회의 지도를 나온 간부조차 발언 도중 무심코 한국식 표현을 써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이는 단속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조차 이미 퍼진 한국식 표현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의주에서는 올해 3월 말 한 대학에서 한국식 말투와 표현을 사용한 학생 8명이 공개비판을 받고, 이 가운데 3명이 안전기관에 넘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통보문에 한국 드라마에 나온 문장을 인용한 사실이 핵심 증거로 제시돼 퇴학 처분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안전기관 이첩 이후 구체적인 형량이나 신병 처리 결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처분에는 계층에 따른 차이도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요즘은 돈이나 담배 같은 뇌물이 예전만큼 잘 통하지 않지만, 간부나 돈 있는 집 자녀와 일반 주민 사이에는 처분 차이가 분명하다”면서 “돈 없는 집 자녀가 걸리면 시범 대상으로 엄하게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 더 조심한다”고 말했다.

강한 처벌과 감시에도 한국식 표현은 주민들의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공개적인 반발보다 은밀한 사용을 통한 단속 회피로 대응하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는 평양문화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도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끼리는 한국식 표현을 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대화에 끼면 말을 멈추고, 금지된 표현을 다른 말이나 은어로 바꾸기도 한다.

휴대전화에 한국식 표현을 남기지 않으려 하고, 녹음이나 문자 같은 증거가 없으면 사용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것도 대응 방식 중 하나다. 당국의 단속이 강화될수록 주민들도 말할 사람과 장소를 가리고, 기록 여부를 더욱 꼼꼼하게 체크한다.

이 같은 행동을 공개적인 체제 저항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민들이 국가가 정한 언어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적인 관계와 대화 속에서 비껴갈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저항의 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조직이 요구하는 상호비판과 신고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난다. 주민들은 자신도 언제든 같은 이유로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투를 적극적으로 문제 삼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 교수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정치와 사회생활에서 쌓인 피로감을 풀어낼 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한국식 말투는 놀이와 유희를 위한 출구의 성격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이를 안동 하회탈놀이에 비유해 “양반 세력이 강했던 안동 지역에서 주민들이 일정한 기간 탈놀이를 통해 억눌린 감정을 풀어냈듯이, 북한 주민들도 한국식 말투와 은어를 일종의 출구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챗GPT, 정리=데일리NK AND센터

극형으로도 사라지지 않은 말투…헌법 명문화가 보여주는 역설

주목할 점은 평양문화어가 헌법에 명시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북한은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고 한국식 말투의 사용과 유포에 극형을 규정했다. 공개처형을 통해 주민들을 각성시킨다는 내용까지 법에 담았다. 이후 학교와 직장, 근로단체 조직을 통한 감시와 공개비판을 강화하고 휴대전화 검사와 자동교정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북한은 평양문화어 보호와 적극적 사용을 헌법에 명시했다. 단순히 보면 이는 언어 통제를 한층 강화한 조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평양문화어보호법과 극형, 조직적 감시, 기술적 통제만으로 한국식 말투의 확산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 최고 규범의 권위까지 동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강력한 법과 감시만으로 주민들의 실제 언어생활을 완전히 바꾸기 어렵다는 현실을 북한 당국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의 말투를 바꾸기 위해 법률과 극형, 공개비판, 상호감시, 휴대전화 검사와 자동교정 프로그램까지 동원했다. 그럼에도 한국식 표현은 주민들의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말은 영상물이나 저장장치처럼 압수해 없애기 어렵다. 일단 주민들 속으로 들어온 언어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고 반복된다. 단속하면 은어나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 살아남는다.

주민들은 공개적으로 국가의 언어 규범에 맞서지는 못하지만, 말할 사람과 장소를 구분하면서 자신들만의 언어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당국이 통제망을 촘촘하게 만들수록 주민들도 이를 피해 갈 방법을 찾는다. 결국 평양문화어의 헌법 명문화는 통제의 완성이라기보다 기존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역설적인 증거일 수 있다. 극형의 위협으로도 주민의 입말을 완전히 바꾸지 못하자 헌법의 권위까지 끌어온 것이다.

북한이 언어 통제의 수위를 높일수록 오히려 한국식 말투가 주민 사회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드러나고 있다. 헌법에 새로 들어간 평양문화어 조항은 강한 국가의 선언인 동시에 달라진 주민들의 일상을 되돌리기 어려워진 북한 당국의 절박함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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