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국가영화총국 텔레비죤(텔레비전)극창작사에 드라마 창작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1호 방침’이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미와 대중성을 잡으면서도 사상적 통제는 더욱 정교화한 방침에 창작가들이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평양시 소식통은 22일 데일리NK에 “이달 초 평양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국가영화총국 텔레비죤극창작사에 모든 텔레비죤극(드라마) 창작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 1호 방침이 내려졌다”며 “이번 1호 방침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공포에 모두가 떨고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일 아침 영화총국 대회의실에서 연출가, 작가 등 핵심 성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1호 방침 전달 모임’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날 1호 방침을 전달한 중앙당 선전선동부 간부는 드라마 창작을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투를 최전선에서 방어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창작 사업을 이번 1호 방침에 맞춰 전면 재조정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방침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우선 기존 드라마의 고질적인 도식성과 획일적인 서사 구조를 완전히 청산하고 현대 청년들의 취향에 맞는 재미와 입체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대중적이고 세련된 작품을 만들라는 지시가 담겼다.
혁명성과 충성심만을 강조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실제 주민들의 현실적인 생활을 묘사하고, 주인공을 통해 내면적 고민을 자연스럽게 풀어내 주민들이 스스로 TV 앞으로 모여들게 만들라는 요구다.
아울러 방침에는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언어에서 한국식 말투를 비롯한 외래어, 저속한 유행어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고상하고 세련된 평양문화어를 기준으로 삼아 언어 규율을 엄격히 세우라는 실무적 지침도 포함됐다.
또 최근 평양에 건설된 현대식 거리와 문화시설 등 국가의 발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들을 작품 배경으로 적극 활용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치적 사업을 자연스럽게 부각해 체제를 선전하고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방침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의상과 머리 모양, 화장법은 물론 가구나 생활 도구 등 촬영용 소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각적 요소에서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퇴폐적이거나 사치스러운 모습이 비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대신 현대적이면서도 소박한 멋을 보여주는 표준안을 제시해 유행을 창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 시나리오 집필부터 최종 편집, 방영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복잡한 다단계 검열 체계를 단축하며 드라마 창작 주기 역시 예년 대비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이라는 ‘속도전’ 요구도 이번 방침에 포함됐다.
이 같은 방침에 창작사 내부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강도 높은 1호 방침이 전격 하달되자 텔레비죤극창작사 연출가들과 작가들은 숨이 턱 막히는 공포 속에서 밤샘 창작 회의를 거듭하며 피 마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최고지도자의 이름으로 내려진 지시인 만큼, 이번 방침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는 ‘미달작’이 나올 경우 단순한 질책을 넘어 추방이나 숙청 등 정치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수십 년간 고정된 연출 기법에 익숙해져 있던 노장 연출가들이 누구보다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노장 연출가들은 현대적 감각을 살리면서도 여러 잣대를 통과해야 하는 모순된 과제를 안고 펜을 들 힘조차 없다며 하소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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