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총동원의 기현상…도움받을 농장원이 ‘대체 인력’으로

여맹원은 돈 내고 동원 면제, 당장 수입 중요한 농장원이 대신 동원…동원 시스템에 시장 논리 적용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월 30일 각지 농장은 “나라 쌀독을 가득 채울 열의가 드높다”며 “모든 힘을 집중하여 올해 농사 결속을 앞당기자”고 독려했다. 사진은 평안남도 증산군 신흥농장.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의 가을걷이 총동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농장원들이 돈을 받고 다른 농장에 대신 동원을 나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국가의 동원 시스템에 시장 논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4일 데일리NK 황해남도 소식통은 “‘한 톨의 허실도 없이 가을걷이를 결속하라’는 지시를 받들어 각지에서는 막바지 동원을 독려하고 있다”며 “특히 곡창지대에서는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원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며 ‘주 3회 이상 반드시 농장으로 나서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여맹원들은 인당 (북한 돈) 5만원 정도를 바치고 동원을 피하는 식으로 당국의 가을걷이 총동원 요구에 대처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 여맹원은 대부분 장사로 돈벌이하고 있어, 동원에 나가는 경우 장사를 포기해야 하는 손해가 더 크다. 이들에게 5만원은 사실상 ‘시간을 사는’ 비용인 셈이다.

소식통은 “인민반장들이나 여맹 일꾼들은 이 시기에 돈 내는 주민들을 오히려 반긴다”며 “인민반별로 8~9명 정도만 동원 인원을 채워도 상부 비판을 피할 수 있는데, 돈을 내면 그 돈으로 인부(대체 인력)을 사서 동원에 내보내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원수를 어느 정도 채우기만 하면 정치적 비판을 피할 수 있으니, 주민이 직접 나오든 돈으로 대체 인력을 쓰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대체 인력’의 상당수가 농장원들이라는 점이다. 가을걷이 총동원이란 본래 바쁜 농촌에 일손을 보태려 도시 주민이나 직장 근로자 등을 일시적으로 투입하는 것인데, 정작 자신의 소속 농장에서 일해야 할 농장원들이 오히려 돈을 받고 대체 인력으로 다른 농장에 나가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주체(농장원)가 오히려 돈을 받고 도움을 주는 주체(여맹원)의 자리를 대신하는,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현상에 대해 소식통은 “옷 속이나 배낭에 수확물을 몰래 챙겨 나올 수 있을 때는 다들 농장에 나갔는데, 지금은 볏단 나르기, 무·배추 수확, 논밭 갈기 등 품만 들고 얻을 게 없는 마무리 작업만 남으니 소속 농장 일에 빠지는 농장원들이 많아졌다”며 “알곡도 없는 농장에 일하러 가느니 차라리 인력 시장에 나와 돈을 받고 대신 인부로 동원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북한은 매년 철마다 대가 없는 주민 동원을 수없이 조직하며 정치적으로 총력전을 주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현금 지불을 통한 동원 면제와 대체 인력 동원이 이미 일반화돼 있다. 이는 북한의 동원 체계에도 이미 시장화 구조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식통은 “돈을 받고 대신 동원에 나가는 농장원들은 ‘벌 수 있을 때 이렇게라도 돈을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 모두(국가와 주민)에게 좋은 것 아니냐’, ‘돈 내고 빠지든 돈 받고 나가든 다 똑같이 나라 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며 “이것이 당장 현금 수입이 중요한 농장원들의 현실 인식”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