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쓰고 아내 대신 인민반 노력 동원 나가는 남편들 많아져

뿌리 깊었던 가부장적 문화 점차 허물어지는 모양새…여러 생계 부담 함께 짊어지려는 분위기 확산

2013년 8월 촬영된 북한 양강도 혜산시 전경. /사진=데일리NK

최근 북한에서 남성들의 인민반 노력(인력) 동원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북한 사회에 뿌리내려 있던 가부장적 문화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변화로 해석된다.

25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한 인민반에서 노력 동원이 이뤄지면 보통 남성은 8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명 중 1명이 남성”이라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이 인민반 동원에 나오면 멋쩍어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마을 정비, 쓰레기 처리 등 인민반 동원 사업에 참여하는 인원 대부분이 가정주부인 여성들이었다. 남성들은 직장 일만 한다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새는 인민반 노력 동원에 남성들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남성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 이달 중순 혜산시의 한 인민반에서는 마을의 쓰레기 처리를 위한 동원이 이뤄졌는데, 30세대로 구성된 인민반에서 8명의 남성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평소 인민반 동원 시 남성 참여율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소식통은 “전 같으면 남자는 많아야 4명 정도 됐을 텐데 이번에는 8명이나 참가했다”면서 “동원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됐는데, 여기에 나온 남자들은 평일인데도 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들이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서라도 인민반 노력 동원에 나오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얘기다.

소식통은 “코로나 이후부터 남편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며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던 아내들의 수입이 줄어들고,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아내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남편들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남편들이 생계의 어려움을 아내들의 책임으로 돌려 가정 내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에 이혼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아내들의 장마당 장사 활동이 어려워지고 부담이 커지자,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던 남편들도 태도를 바꿔 함께 부담을 지려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남성들의 인민반 노력 동원 참여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은 경제난이 지속되는 와중에 북한 내에서 가부장적인 문화나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식통은 “예전 같으면 남자가 인민반 동원에 나오면 다른 남자들이 ‘창피하다’, ‘자존심이 깎인다’는 말을 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아내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며 “이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경제 형편은 어려워도 가정 분위기는 예전보다 한결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혜산시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내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아내에게 참 미안한 일뿐”이라며 “예전에는 아내가 힘들어 얼굴빛이 어두워도 왜 그런지 묻지도 않고 혀만 찼는데, 나이가 들수록 고생으로 늙어가는 아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집안 살림에 보탬도 되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만 치던 과거가 부끄럽다”며 “지금은 돈벌이는 못하더라도 집안일이나 노력 동원에 참여해 아내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