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이사철을 맞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곳곳에서도 가을 이사 바람이 불고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새 살림집 건설의 여파일까?
본보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북한 내부 소식통들을 통해 최남단 개성시에서 최북단 나선시까지 총 13개 도시에서 최근 실제로 집을 옮겼거나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주민들에게 가을철 이사의 주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13개 도시의 주민들이 내놓은 답은 대체로 물과 전기가 상대적으로 잘 보장되고, 직장이나 학교, 장마당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단순한 이유였다. 생활 조건이나 편의를 생각했다는 것.
그 외에 북한 당국의 개발 사업 때문에 별수 없이 주거지를 이전해야 한다거나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이사를 결심했다는 주민들도 일부 있었다. 국가로부터 새로운 살림집을 배정받아 이사를 하게 됐다고 답한 주민은 단 1명도 없었다.
①직주근접
평양시 서성구역의 한 20대 부부는 최근 직장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돌보려면 출퇴근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고, 그것이 이들 부부의 가장 큰 이사 결심 이유였다. 새로 옮긴 집에서 직장까지는 20분 정도가 소요되고 심지어 주택 가격도 기존에 살던 곳보다 저렴해 만족스럽다고 했다.
남포시의 40대 박모 씨(이하 가명) 역시 최근 직장이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겼다. 배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이기 때문에 출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직장 가까이 가는 것이 이득이라는 게 박 씨의 말이다. 그는 “자전거로 출근할 수 있는 집을 구했다”면서 “막교대(맞교대)를 하는데 집과 직장이 가까워지면서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돼 좋다”고 했다.
함경남도 함흥시의 40대 상인 백모 씨는 “남편 직장과 장마당 중간에 있는 집으로 최근 이사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직장에 다니긴 하나 그 월급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장마당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서 장마당까지의 거리도 생각해 이사할 집을 물색했다고 백 씨는 말했다.
나선시의 30대 이모 씨는 “장마당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로 이사했다”며 “물건이 들어오면 바로 거래해야 하는데 장마당과 거리가 멀면 손해니 아예 집을 옮겼다”고 했다. 집과 장마당 간 거리는 곧 수입과 직결되는 문제라 이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는 게 이 씨의 이야기다.
양강도 혜산시의 40대 장모 씨는 최근 국경 인근으로 이사했다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압록강이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다. 장 씨는 “거리 5분, 10분 차이로 벌이가 달라진다”며 “단속이 심해지면 또 옮겨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게 살길”이라고 말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사는 50대 최모 씨는 “세관 근처, 압록강 대교 인근, 그리고 시내 중심의 중국인 관광객 숙소 주변으로 친척들을 이사시켰다”고 말했다. 요즘 거리에서 중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그는 “여기(신의주)서는 중국 물건이 잘 들어오고 중국인 손님만 많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최 씨가 친척들을 이사시킨 것은 북중관계 개선 분위기를 노린 ‘전략적 재배치’였다.
②물·전기 사정
황해남도 해주시의 30대 김모 씨는 “옆집에 살던 이웃이 수도관이 얼기 전에 집을 옮겨야 한다면서 얼마 전에 이사했다”며 “물만 잘 나오면 새집이든 헌집이든 상관없어서 요즘에는 그런 집이 있으면 바로 이사들 간다”고 했다. 일부 북한 주민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여겨지는 물 공급 문제가 이사의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60대 윤모 씨도 “물만 제대로 나온다면 낡은 집이라도 괜찮다 싶어 같은 구역 안에서 그나마 물 사정이 나은 동네로 웃돈을 주고 옮겼다”며 “이전 집에 살면서 물이 안 나올 때면 본가나 사우나에 가서 겨우 씻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돼 좋다”고 말했다. 낡아도 물이 나오는 집은 귀하다는 게 윤 씨의 말이다.
물뿐만 아니라 전기 공급 문제도 이사의 이유가 됐다. 황해북도 사리원시의 50대 정모 씨는 최근 전기 문제 때문에 시내로 집을 옮긴 친척이 있다고 했다. 정 씨는 “산골은 불(전기)이 거의 안 와 초저녁부터 깜깜해서 아이들이 학교 숙제도 못 할 지경”이라며 “불이 안 오는 세 칸짜리 집보다 불 오는 도시 귀퉁이의 한 칸짜리로 가는 게 낫다고 웃돈을 주고 이사했다”고 말했다.
③개발 지역
강원도 원산시의 50대 홍모 씨는 “살림집이 철거 대상에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옮긴 후로 거의 매해 이사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개발로 철거 방침이 내려졌고 실제 홍 씨의 집을 포함해 수백 세대의 살림집이 철거됐지만 새집은 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홍 씨를 비롯한 철거 주민들은 다른 집에 얹혀살거나 창고 또는 공장의 비어 있는 공간을 개조해 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는 “철거된 집 대신 들어갈 곳이 없으니 창고나 공장 한쪽을 손봐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개발 사업에 따른 살림집 강제 철거는 새 터전에서의 새로운 삶이 아니라 떠돌이의 삶을 낳았다고 홍 씨는 토로했다.
개성시에 사는 30대 조모 씨는 “공장이 새로 들어서고 도로 공사도 이뤄지면서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녀 매우 위험해졌다”며 “하나뿐인 자식의 안전을 위해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산업지구 확장으로 인해 살던 곳이 위험지대로 변하면서 결국 이사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장마당까지는 멀어졌지만 장은 한 주에 한 번 보면 되고 아이 안전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④기타(기후, 당국의 통제와 감시)
자강도 만포시의 20대 오모 씨는 “강바람이 너무 세서 얼마 전에 산탁(산기슭으로 바싹 올라붙은 땅)으로 집을 옮겼다”고 말했다. 강변에 살 때는 겨울에 석탄을 많이 때야 했는데 집을 옮기고 나니 확실히 바람이 덜해 올겨울에는 난방 연료비도 훨씬 절약될 것이라 오 씨는 기대하고 있다. 그는 “강바람이 덜 불고 따뜻하면 그게 좋은 집”이라고 했다.
평안남도 평성시에 사는 30대 이모 씨는 “법기관(보위부, 안전부, 검찰소)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 마음 놓고 살기 어려운 도심보다 감시와 통제가 덜하고 물가도 싼 외곽이 낫다”며 최근 외곽으로 집을 옮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사 후에 자식이 다니는 학교는 예전보다 낙후된 학교지만, 좋은 학교를 나와도 결국 돌격대나 광산으로 집단 배치되고 간부가 될 수도 없다. 차라리 자식이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씨에게 이사는 감시와 통제를 피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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