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담배’ 시절은 지났다…북한 뇌물사회 더 고도화

고양이 담배 더 이상 ‘만능 통행증’ 아냐…김정은 부정부패와의 투쟁 강조했지만 뇌물 관행 고착화

북한 시장에 유통되는 고양이 담배(CRAVEN). /사진=데일리NK

북한에서 ‘만능통행증’으로 불리던 고양이 담배(CRAVEN)가 이제는 뇌물로써의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모든 일에 으레 뇌물이 수반되는 북한의 ‘뇌물사회’가 더 고도화되면서 고양이 담배가 더 이상 뇌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일리NK 황해북도 소식통은 24일 “주민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개인 농사, 밀주 유통, 장사와 같은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해야 한다”며 “단속이 끊이지 않는 속에서도 이것을 계속하려면 뇌물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소식통은 “증명서가 없어도, 통행증이 없어도 고양이 담배 하나면 많은 것이 해결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새로운 고급 담배들도 많이 나왔고, 결정적으로 단속자들이 원하는 뇌물의 수준이 크게 높아져서 고양이 담배는 그저 기본 체면치레용으로 쓰일 뿐”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로 극심해진 뇌물사회에서 고양이 담배는 조직 생활 불참, 직장 무단결석, 무허가 제조 및 유통, 병원 진단서 발급, 무단 이동, 단속 무마 등을 가능하게 했던 만능통행증이었다.

하지만 뇌물을 주고받는 문화와 관행이 점점 더 심화하면서 고양이 담배는 더 이상 ‘만능’으로 통하지 않게 됐고, 실효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소식통은 “하지 말라는 것을 해야 먹고 살고, 단속되지 않으려면 뇌물을 줘야 하고, 단속자는 더 많은 뇌물을 받아 더 위로 올려바쳐야 하는 구조가 더 뿌리 박히고 더 단단히 굳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직설적으로 원하는 것을 대놓고 요구하는 식으로 뇌물 관행이 변화하고 있다”며 “예전엔 고양이 담배 한 갑으로 해결되던 것이 이제는 고급 담배, 달러, 증폭기(스피커), 액정TV, 오토바이 등 고가 물품이 있어야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보위원이나 안전원 같은 단속 권한이 있는 이들에게 고양이 담배는 아예 통하지도 않으며, 어느 직종·직책·직급에 있느냐에 따라 뇌물 요구 수준이 다르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실제 지난해 2월 통일부가 탈북민 6000여 명의 심층 면접 결과를 분석해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탈북한 응답자의 54.4%가 뇌물 공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김정은 집권 전후로 따져보면, 김정은이 집권하기 전인 2011년 이전에는 뇌물 공여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4.2%였으나 김정은 집권(2012년) 이후로는 48.3%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부정부패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한 투쟁을 드세게 벌려야 한다”, “부정부패의 크고 작은 행위들을 짓뭉개버리기 위한 투쟁의 열도를 높여야 한다”는 등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부정부패와의 투쟁을 강조한 바 있으나 뇌물 관행은 더욱 고착화되고, 뇌물사회는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