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②] 물가 전반적으로 상승…경제적 양극화도 심화

양곡판매소 통한 곡물가 통제 및 월급 카드 지급 등으로 급격한 인플레 상쇄된 듯
기업소들은 인건비 부담 늘었는데 8·3 노동자까지 줄어 재정 마련에 골머리

<편집자주>
북한이 20여 년간 제자리였던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소 10배 이상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 공무원, 기업소 노동자, 학교 교원 등의 임금이 인상되면서 근로 의욕이 높아진 반면, 물가가 상승하고 내화 가치가 하락하는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본보는 임금 인상 이후 북한 사회에 나타난 변화를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픽=데일리NK

북한 당국이 기관·기업소와 소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기 시작한 후 물가 상승, 8·3 노동자 감소, 기업소 재정 축소 등 여러 가지 경제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에서도 주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가장 큰 변화는 물가 상승으로, 실제 북한 시장에서는 외화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내화 가치가 하락하고 수입 물가가 크게 치솟았다.

데일리NK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북한 시장 물가 조사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임금 상향 조정에 관한 결정서를 내리기 전인 지난 2023년 3월 초순과 비교해 현재 북한 시장에서 달러 가격은 2.42배, 위안화 가격은 2.08배 상승한 상태다. 대표적인 수입 재화인 휘발유와 경유 가격도 2023년 3월 초 당시 가격보다 각각 1.72배, 1.63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에서 외화 환율이 상승한 것은 코로나 국경봉쇄가 완화되고 ‘지방발전 20×10 정책’이 시작되면서 무역이 확대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지만, 임금 상승으로 인한 외화 수요 확대와 내화 가치 하락도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식료품 가격도 일제히 상승했다. 이달 2일 기준 평양의 한 시장에서 쌀 1kg 가격은 북한 돈 8360원, 옥수수 가격은 3400원으로, 임금 인상 전인 2023년 3월 초순과 비교해 보면 쌀은 1.44배, 옥수수는 1.13배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곡물 가격의 경우 북한 당국이 양곡판매소를 통해 시장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쌀과 옥수수, 콩 등을 판매하고 있어 임금 상승으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 효과가 상쇄된 것으로 해석된다.

물가 상승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임금이 최소 10배 이상 인상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물가 상승은 비교적 완만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임금 상승에도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인상이 순차적으로 이뤄진 데다 인상분이 지속 지급되지 않았다는 점 ▲북한 당국이 양곡판매소를 통해 곡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당국이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와 연결된 은행 계좌로 입금하고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말 제8기 제11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밝힌 “계획화 사업과 가격사업을 개선하는 것” 등도 인플레이션을 누르고 경제 전반을 통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경제 조치의 하나로 풀이된다.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는 않은 데다 간부급 노동자의 임금 상승분과 일반 노동자의 임금 상승분에 큰 격차가 발생하면서 경제적 양극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매월 북한 돈 12만원 이상을 수령하는 간부급 노동자들은 물가 상승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반면, 월급이 3~5만원 수준인 말단 노동자들은 쌀 대신 옥수수로 주식을 대체하거나 식사량을 줄일 만큼 물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주민 간 갈등도 유발되고 있다. 평양 소식통은 “기관·기업소가 재정 상황에 따라 월급을 각각 다르게 인상하고 있어 월급이 많이 오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임금이 상승하면서 8·3(소속된 곳에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납부하면서 개인적으로 돈벌이하는 것)을 정리하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소 임금이 상승하면서 직장을 이탈해 있던 8·3 노동자들을 당국의 관리 체제 안으로 끌어모으는 효과도 나타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지속 강조하고 있는 ‘경제 전반의 통일적 관리’가 임금 상승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소들의 재정은 위축되고 있다. 8·3 노동자들에게서 받는 금액도 줄어들었는데, 높아진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니 기업소들은 원자재 구매 등 생산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기업소마다 재정과들이 생산비 충당에 골 아파 한다”며 “그러니 월급을 올려놓긴 했는데 안정적으로 지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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