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갇힌 인권] “北, IT 노동자 탈북 시 현장 처형 규정”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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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시도를 발각하면 즉시 지휘관이 현장에서 처형·처리하고 후(後)보고 해도 된다고 규정돼 있다.”

해외 파견 북한 정보기술(IT) 노동자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이 전한 이 한마디는, 어떠한 자유도 없이 강력한 통제 아래 국가가 하달한 ‘1호(김정은 국무위원장) 방침’을 숨죽여 수행해야 하는 이들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데일리NK는 최근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북한 IT 노동자들이 파견된 현장의 실태와 조직 구조, 임무 및 교육 과정을 심층 취재했다. 북한 당국은 IT 노동자 파견을 대외적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치면서 다양한 수단으로 이들의 사상과 행동을 강하게 통제하며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착취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아프리카서도 활동…금융·군사 분야 주요 타깃

대북 소식통이 밝힌 북한 IT 노동자들의 주요 근거지는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매우 광범위하다.

소식통은 “(북한의) 요원들은 주로 중국, 특히 랴오닝(遼寧)성과 지린(吉林)성,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지역, 동남아시아의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 그리고 아프리카의 이집트·앙골라·리비아 등지에서 활동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IT 노동자들의 최대 활동 거점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지에 위장된 신분으로 파견돼 외화벌이와 해킹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실제 소식통은 “적국 핵심 기밀 정보 수집, 경제·군사 체계 교란, 그리고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을 통한 외화벌이가 주요 임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올해 1월에는 미국, 한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이 핵심 타격 대상이라는 방침을 받았다고 한다”면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하는 것은 모든 조(組)가 필수적으로 하는 것이며, 전자정보전 공격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임무도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조직에 소속돼 있을까.

해당 사안에 정통한 북한 내부 소식통은 “사이버 전사 조직은 당(黨) 직속, 군(軍) 정찰총국, 국가보위성 산하 등으로 나뉘고, 조직마다 활동 지역과 임무가 조금씩 다르다”며 “예를 들면 당 직속 121국은 중국, 러시아, 동남아에서 활동하며 약 500명 규모로 퍼져있고 주로 금융 해킹과 암호화폐 일회성 또는 연간 전투 임무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IT 노동자들은 대개 5~10명씩 소규모 조 단위로 움직이며, 조별로 금융 해킹이나 군사 정보 수집 등 임무가 명확하게 세분화돼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망을 우회해 자금을 확보하고, 동시에 적국의 대응력을 떨어뜨리려는 군사 전략적 차원에서 철저하게 IT 노동자를 활용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소식통은 “이러한 임무는 1호 방침에 따라 하달돼 엄중히 집행된다”고 말했는데, 이에 미뤄볼 때 북한 IT 노동자들은 사실상 ‘국가 최고 지휘부’의 직속 통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무부가 2024년 12월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IT 노동자 현상수배 포스터. /사진=미국 국무부 엑스(X) 화면캡처

현장 처형·가족 인질·감시자 동행이탈 방지하고자 강력 통제

당국이 부여한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북한 IT 노동자들은 해외에서 쉴 틈 없는 감시와 통제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 판단을 내리거나 권리를 요구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소식통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IT 노동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과 감시 장치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탈북 시도 시 현장 처형 규정이 있는 것은 물론 가족이 처벌받을 것이라는 공포도 확실하게 심어주기도 한다”면서 “또 외국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항상 감시자와 함께 행동하며 일상생활과 통신이 철저히 통제된다”고 말했다.

IT 노동자들은 해외 활동 기간이 엄격히 제한돼 임무를 마치면 재교육을 위해 북한으로 강제 소환되는데, 파견 기간 중 문제를 일으키면 두 번 다시 해외에 나갈 수 없고 가족들도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 IT 노동자들이 파견 직전에 받는 ‘사상 학습’도 강도 높게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해외로 파견되기 전, 전사(IT 노동자)들은 비밀 관리, 보고 체계 등은 물론 김일성·김정일주의 및 당의 유일사상, 해외 생활 동안 적국의 사상·문화를 철저히 배격하도록 반복적으로 교육받는다”면서 “이 과정에서 오직 임무만 생각하면서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말 것을 엄격히 경고한다”고 했다.

이처럼 당국에 의해 주입된 공포심과 두려움이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자유의사와 무관하게 해외에 파견된 북한 IT 노동자들은 사실상 ‘명령 수행 기계’로 전락한 채 당국의 외화벌이 도구로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국민을 조직적으로 해외에 파견해 위험한 임무를 수행토록 강요하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 가족까지 처벌하는 행위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한다. 특히 ‘탈북 시도가 발각되면 현장 처형, 처리하고 후 보고한다’는 규정은 자의적 살해를 사실상 용인하는 것으로, 국제 인권 규범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분석이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포함한 노동권 침해이며 가족이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의 침해이기도 하다”면서 “특히 IT 노동자의 망명을 이유로 적법 절차 없이 북한에 남은 가족을 처벌하는 것은 재판권, 신체의 자유, 생명권까지 침해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분석관은 “유엔 인권이사회나 총회, 안보리를 통해 북한 IT 노동자의 인권 및 노동권 침해 실태를 널리 알리고, 구체적인 인권 침해를 입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또한 이러한 형태의 강제노동이 중국, 러시아 등 국제노동기구(ILO) 회원국에서 벌어지는 만큼 ILO 차원에서도 강제노동협약 위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불법으로 IT 노동자 해외 파견에 관여한 북한 개인 2명, 회사 4곳을 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