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갇힌 인권] 2025년에도 계속되는 北 외화벌이 착취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지난 2019년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상점으로 들어가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사진=데일리NK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 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일해도 손에 쥘 돈은 쥐꼬리에 불과하고, 국가가 요구하는 ‘외화 과제’로 매달 상당액을 상납한다”는 것이다. 특히 명절이나 기념행사 때마다 추가로 모금을 강요받기도 해, 한 달 내내 땀 흘려도 실질적인 수입은 거의 남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NK는 최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단둥(丹東) 소재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근무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체감하는 불합리한 임금 구조와 열악한 근로환경 전반을 심층 취재했다. 북한 당국에서는 ‘해외 노동자 인권 보호를 강화하라’ 지시를 내렸지만, 이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강도 높은 노동과 불투명한 임금 정산, 빈약한 안전·복지 체계 등 악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월급은 300~700위안 수준, 충성자금도 따로 낸다”

중국 다롄 수산물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파견 노동자 A씨는 “처음엔 월 2000원(위안, 한화 약 40만원)으로 들었지만 실지 매달 300~700원으로 책정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실제 수령액이 초기 계약(혹은 소문) 대비 턱없이 적다는 뜻이다.

임금 지급 경로도 불투명하다. A씨는 “단장이나 반장, 조장을 통해 현금으로 받거나 열두 달 중 장부에 적어놨다고 하고 못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정확한 정산을 받지 못하거나 임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증언은 중국 단둥 수산물 공장에 파견된 다른 북한 노동자 B씨에게서도 나왔다. B씨는 “(월급은) 매달 300~500원(위안, 한화 약 6~10만원)”이라고 털어놨다. 또 “회사에서 관리자에 주면 우리는 관리자 측을 통해 받는다. 계약이 끝나서 집 갈 때 현금으로 준다고 한다”고 했다. 중간 단계를 거쳐 임금을 받는 구조가 재차 확인된 셈이다.

이렇게 임금 지급 절차가 불투명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실제로 지급된 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착취당하는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급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턱없이 적은 데에는 북한 당국의 외화 과제가 크게 작용한다. 다롄 공장 노동자 A씨는 “월 1000원(위안)부터 1500원이 개인당 국가계획분 외화 과제 납부 액수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매달 본인이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금액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A씨의 얘기다.

단둥 공장 노동자 B씨의 상황도 유사하다. 그는 “충성의 외화자금 계획이 매달 떨어진다고 들었다. 그 외 금수산태양궁전 보수와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월 16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4월 15일) 같은 국가 명절이나 행사에 필요한 자금 등을 바친다고 한다. 우리가 버는 돈의 70%가 계획분으로 나간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이 상납된다는 것이다.

또 명절마다 추가로 ‘행사비’가 부담된다. A씨와 B씨는 각각 양력설 행사비로 500위안과 300위안을 냈다고 했다. 북한이 연중 반복되는 행사·명절을 명목으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임금을 추가로 착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화 과제’가 노동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들의 생계마저 위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단둥 북한 여성 노동자 대북제재
2019년 3월 말 단둥세관을 통해 북한으로 귀국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 모습. /사진=데일리NK

“국가는 계획 수행만 중요하게 생각…과제 미달하면 귀국해야”

더욱이 문제는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 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다롄 공장 노동자 A씨는 “노임(월급)이 너무 작고, 중국 사람보다 노동은 더 오래, 위험한 거, 힘든 거 하는데 돈이 작아서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단둥 공장 노동자 B씨도 “일하는 작업장이 너무 추운데 조금 따뜻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근무 환경 개선을 바랐다.

북한 파견 노동자들에게는 중국의 최저임금제도나 북한 내부 근로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중국 법이나 우리 법 모두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들어본 적 없다”며 “조국 안에서도 이런 게 보장 안 됐는데 무슨 중국에서까지, 1호 방침이 떨어지지 않는 한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B씨 역시 “(근로 규정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국가는 뇌물을 많이 바치고 국가 계획을 잘 수행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 해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사실상 ‘무법지대’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북한 당국이 요구하는 상납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A씨는 “국가계획분 수행을 한 달 못 하면 비판 대상이고 넉 달 계획분을 수행 못하거나 미달하면 귀국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귀국이라고 안 하고 휴가 들어가라고 보내고 다시 파견 안 한다. 딱지가 붙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계획분 수행에 차질을 빚는 노동자들은 해외 파견에서 배제, 다시 말해 외화 과제 수행에 문제를 보인 노동자들은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박탈된다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B씨는 “과제를 못 하면 간부(관리자)가 자리를 내놓고 자리 교체당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간부의 자식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화 과제 수행 여부가 상급 관리자의 입지를 크게 좌우하고, 심지어 그 가족까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화 과제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해외 파견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근로 기회 자체를 박탈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노동할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유권규약 제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강제노동 금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7월 중국 지린성 옌지시의 한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북한산 수산물. /사진=데일리NK

北 ‘권리 보호’ 지시는 허울뿐…노동자들 ‘보편적 노동권’ 호소

데일리NK가 접촉한 2명의 북한 노동자 증언을 종합하면, 북한 당국의 ‘권리 보호’ 지시는 허울뿐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노동자들은 불투명한 임금 정산과 강도 높은 노동, 반복되는 상납 요구에 시달리면서도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통로가 사실상 없어 체념하는 상황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법적, 제도적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공정한 대가와 확실한 휴식 시간, 일한 것만큼 돈을 받기를 바란다.” (다롄 수산물 공장 노동자 A씨)

“우리 생활비를 1000원(위안)으로 올려줬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단둥 수산물 공장 노동자 B씨)

두 노동자의 바람은 사실상 노동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외침으로 해석된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과 휴식 보장 등 이미 국제사회가 ‘보편적인 노동권’으로 규정한 사항을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한 ‘외화벌이’에 매달리면서 정작 노동자 개개인의 권리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은 2009년 노동정량법, 2010년 노동보호법을 제정했고 2020년에는 노동보수법을 제정했다”며 “북한 당국이 이 법규들을 준수, 이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