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제14기 제10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이라는 새로운 역점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화된 지방공업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인민들의 물질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겠다는 것인데요. 이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북한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데일리NK는 북한의 이러한 시도가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북한 당국이 ‘지방발전 20×10 정책’ 시행 이후 카드 사용 빈도를 높이고 전자결제를 활성화 하기 위해 다각도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카드 사용처가 국영 상점 등으로 한정돼 있는 데다 현금을 맡기고 찾는 과정이 번거로워 아직도 주민들은 카드 사용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복수의 데일리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한 주민들은 성인이라면 최소 1개 이상의 ‘전성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2010년 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한 전성카드는 직불카드의 일종으로 연결된 계좌에 현금을 넣어놓고 보유 현금만큼 결제할 수 있다.
전성카드가 발행되기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2009년 화폐 개혁으로 은행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신뢰가 워낙 낮고 카드를 발급받아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어 이를 사용하는 주민이 많지 않았다. 주로 평양, 청진, 신의주와 같은 대도시의 일부 주민들만 ‘전성’, ‘나래’, ‘고려’ 등의 카드를 사용해왔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 당국의 주민 카드 사용 압박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있다. 북한 지방 은행들은 지역의 공장·기업소를 찾아가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은행 계좌를 개설하게 하고 반강제적으로 이 계좌와 연결된 카드를 발급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공장·기업소에서도 노동자의 월급을 현금이나 현물로 지급하기보다는 각자의 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일이 최근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공장 노동자 은행 계좌 개설 및 카드 발급 의무화…왜?)
이렇게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카드 사용과 전자결제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이 각자 보관하고 있는 유휴자금을 공식 금융망으로 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손광수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북한 당국이 카드나 전자결제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것은 지방발전 20×10 정책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과 시장에 축적돼 있는 북한 원화와 외화 등 유휴화폐를 은행 계좌에 입금하게 하고 전자결제망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당국이 화폐 유통을 관찰하고 감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지방은행들이 지역 공장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공장·기업소를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의 계좌와 카드를 개설·발급하고 있지만, 지방은행도 결국 중앙은행의 산하 기관으로 돼 있기 때문에 주민들의 공식 금융망 이용은 당국의 유휴자금 확보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북한 당국은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시행한 후 지방은행 활성화 및 주민 보유 외화를 끌어내기 위해 개인 환전상과 이관꾼(송금업자)들의 활동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북한 원·달러 시장 환율은 1만 4000원까지 폭등한 상태다. 북한 당국이 개인의 환전과 송금 활동을 통제하자 주민들의 은행이나 카드 또는 전자결제시스템 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들의 월급이 계좌로 지급되면 편리한 점도 있다. 입금 시 각자의 손전화(휴대전화)에 알림 통보문(문자)이 전송되고 ‘울림’ 같은 전자결제 어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해당 앱에서 계좌 내역도 확인할 수 있고 계좌에 있는 돈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송금도 가능하다. 민간의 금융 서비스를 통제하면서 전자결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자 최근에는 전자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주민도 다소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카드나 전자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일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취재 결과 카드 사용이 가능한 곳은 국영 상점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 상업 시설뿐이었다. 그래서 대도시 주민이 아니라면 계좌와 연결된 카드나 전자결제 앱이 있어도 이를 사용하는 빈도가 극히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반 노동자 월급은 장마당에서 쌀 1kg(북한 돈 약 6000원)도 살 수 없을 만큼 적은 금액이고, 시장에서 카드로 물건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 월급을 계좌에 입금해 준다고 해서 카드 사용이나 전자결제시스템이 활성화하기는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더욱이 북한에서 민간에서 이뤄지는 송금은 외화로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공식 금융망을 이용하면 외화를 내화로 환전해서 북한 돈으로만 송금할 수 있어 환전 손실액이 커지고 송금 수수료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북한 내부에선 “당국이 아무리 통제해도 돈데꼬(환전상)과 이관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결국 민간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공식 금융망보다 값도 싸고 편리하다는 얘기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 중구역, 모란봉구역 같은 중심구역 주민들의 경우 카드나 전자결제시스템 사용자가 30%에 이른다. 중심구역에는 백화점이 많고 국영 상점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양시 주변구역 주민의 경우 카드 및 전자결제시스템 사용자가 5% 미만이라고 한다. 수도 평양조차도 이렇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 당국은 최근 전자결제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올 10월까지 전자결제 기술 체계 점검에 들어간 상태다. 기술 점검만으로 전자결제시스템 사용이 활성화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를 활성화하려는 당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이달부터 10월까지 내부 전자결제 시스템 점검 나선다)
손 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카드나 전자결제 이용을 독려하고 있기도 하고 이에 대한 인프라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전자결제 이용률은 해당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10여 년 전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만 카드나 전자결제가 실제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카드리더기나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의 지급결제망이 훨씬 더 많이 구축돼야 하고 주민들에게 이것이 안전한 결제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