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군인 “시도 때도 없는 물 긷기 그만했으면”

[신년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②] 올해 처음으로 의견서 받아내…무상치료 바라기도

[편집자 주]
3년여 간의 코로나 국경 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꽁꽁 닫혀있던 국경이 서서히 열리고 인적·물적 왕래도 이뤄지고 있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회복 속도는 느리기만 합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어김없이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회복기를 맞은 지금, 북한 주민들이 가장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2024년 새해를 맞아 다양한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북중 국경 지역인 북한 함경북도 남양 일대에서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올해는 물 긷기 좀 그만하고 싶어요.”

황해도 주둔 한 부대 군인의 말이다. 새해를 맞아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 긷기에 동원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대에 수도가 있어도 겨울이면 동파되기 일쑤고, 계절과 상관없이 평소에도 고질적인 정전으로 식수 공급이 제한적이라 군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물 긷기에 동원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년에 부대 인근 개울에서 물을 길어 먹고 배탈이 심하게 난 사람들도 많았어요. 물을 길어 먹어야 하는데 수질도 좋지 않으니 너무 힘들어요. 올해는 먹는 물 문제만큼은 꼭 해결됐으면 해요.”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새해 소망은 비단 자신 한 사람만의 소망이 아니라고 했다.

“올해 처음으로 부대에서 현재 근무 생활에서의 애로점과 앞으로 부대가 개선해야 하는 문제를 의견서로 받아냈어요. 신년 선서를 마친 후에요. 많은 인원이 물 긷기에 안 동원되면 좋겠다고 적어낸 것으로 알아요. 어쨌든 이렇게 의견서로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의견 접수가 잘 집행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면서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예요.”

실제 데일리NK 북한 내부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 총정치국은 이달 초 군 생활에서의 어려운 점과 부대에서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개별 군인들로부터 의견서를 받아내라는 신년 사업 집행 지시를 전군에 하달했다.

각 부대에서 의견서를 종합한 결과, 식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무상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군인들의 요구도 줄을 이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군 간부들과 달리 일반 군인(하전사)들은 인맥이나 현금, 담배 같은 뇌물 없이는 치료받을 수 없는 게 현재 북한 군 내부의 실태라는 전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당장 만기 제대를 앞두고 있는 군인들은 의견 개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소식통은 “올해 만기 제대를 앞둔 군인들은 곧 제대돼서인지 애로되는 것이나 개선했으면 하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내지는 않았다”며 “다만 개별적으로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직장이나 행선지를 배치받는데, 제발 농장, 탄광, 간석지 건설장과 같은 국가적 집단 무리 배치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군인 가족은 올해 개인 장사가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열악한 배급 조건에서 먹고살기 위해 제약 없이 돈벌이하고 싶다는 게 군인 가족들의 이야기다.

황해도의 한 군인 가족은 “군인 가족은 개인 장사를 못한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부대에서라도 강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올해는 간이 매대 하나 차려서 두부라도 실컷 팔아서 돈 벌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