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2019년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북한 노동자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지난 2019년 12월 30일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가득 메운 건 다름 아닌 북한 사람들이었다. 유엔 대북 제재로 인해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송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때였다.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출국 수속을 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수년 동안 낯선 나라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손에 쥔 건 단돈 몇백 달러에 불과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더없이 무겁고 슬펐던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평양행 마지막 비행기가 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북한 당국이 2020년 1월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을 전면 봉쇄했기 때문이다. 평양-블라디보스토크 간 비행기는 물론 러시아 하산과 두만강역을 잇는 열차 운행도 전면 중단됐다.

그로부터 3년 6개월 동안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았다. 일부 노동자와 영사관 직원들은 탈북을 감행했다. 누구는 살아남아 자유의 품에 안겼고, 또 누구는 탈북 과정에서 체포돼 목숨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북한 당국이 그동안 봉쇄했던 국경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양을 오가는 항공편도 열렸다. 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갈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2019년 12월, 공항에서 마주했던 그들은 지금쯤 북한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당시 만난 한 노동자의 고뇌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8년 동안 러시아에서 해외 파견 노동자로 일했다는 그는 스스로를 ‘깬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한의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에 겨우 노동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유일한 낙은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작은 화면 너머에 분명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2019년 12월 북한 국영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여객기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대기중인 모습.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헤어지기 전날, 그가 필자에게 건넨 말이 귀에 쟁쟁하다.

“이대로 조국으로 돌아가면 난 살지 못할 것 같아. 자유가 몸에 익었어.”

러시아에서 청부 일을 하며 자유를 경험한 그는 북한에 돌아가 조직 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탈북을 결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바로 북한에 두고 온 가족 때문이다. 그날, 공항에서 마주한 북한 노동자들의 표정에는 모두 그러한 고뇌가 묻어 있는 듯했다.

다시 비행기가 재개되었으니 지금 남아 있는 자들도 본격적으로 송환길에 오른다.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혹 우리의 손길이 닿지 못해, 남한으로 오고자 하는 그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의 송환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현실 앞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최소한 자유와 인권이 무엇인지 알아버린 그들이기에, 가족과 탈출 사이에 고뇌하는 그들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무겁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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