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민경부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무슨 일이?

[북한 비화] 땜빵 보초도 모자라 사상 문제까지 들먹여…억울함 호소하다 결국 일 저질러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 압록강변의 한 초소(기사와 무관). / 사진=데일리NK

지난해 9월 중서부 최전방 2군단 지휘부는 산하 민경대대 3중대의 근무를 열흘간 다른 중대에 위임하고 중대원들을 병영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오게 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인민군 하기훈련 판정 기간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였음에도 군단 지휘부가 이런 조치를 한 것은 며칠 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군 보위국 성원들이 내려와 집중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피의자는 21세 최모 병사였다. 그는 야밤에 무기고 보초를 서던 중 이탈해 소대 병실(兵室)로 들어와 잠들어있던 소대원들에게 실탄을 난사해 1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후 무기와 탄약, 수류탄을 들고 부대 인근 야산으로 숨어들었다가 포위망이 좁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2년간 일하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한 최 병사는 무던하고 말수가 적었다. 이에 몇몇 소대원들은 그를 쉽게 보고 속된 말로 ‘땜빵’으로 이용했다. ‘피곤해서’, ‘몸이 불편해서’라는 등 갖가지 이유를 대가며 대신 보초 근무 서게 했다.

소대원들의 무리한 요구도 묵묵히 다 들어주며 대신 보초를 서 온 최 병사가 총기 난사라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것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일 때문이었다.

하기훈련 판정 기간이라는 엄중한 때에도 소대원들은 최 병사를 땜빵으로 보초 근무 서게 하고 자신들은 상급의 묵인하에 주둔지 사택이나 시내로 외출 나가 지휘관들이 필요한 물자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인맥이 없는 최 병사에게 외출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2시간에 한 번씩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초 근무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정치상학 시간은 물론 식사 시간에도, 심지어 열 맞춰 걸어가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런데 소대원들은 생활총화에서 최 병사가 시도 때도 없이 존다고 지적하고 비난했다. 땜빵 근무를 서게 하면서 휴식 시간까지 빼앗은 이들이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기까지 하자 최 병사는 분노에 휩싸였다. 군 복무를 잘해 입당도 하고 학교추천도 받으려고 군말 없이 참아왔던 지난날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 같아 너무도 억울했다.

그는 분대장, 부소대장, 소대장에게 몇 번이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때마다 “물자라도 구해오는 군인들이 소대를 먹여 살리니 보초 근무를 대신 서주는 일이라도 잘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결국 최 병사는 자진해서 무기고 보초를 서던 날 밤 사건을 저질렀다. 하기훈련 실탄 사격 판정을 위해 임시 무기고에 보관돼 있던 실탄을 들고 병실로 들어와 자신을 분노케 한 소대원들을 향해 총기 난사한 것이었다.

사건 발생 후 2군단은 모든 사안을 군 보위국에 보고했고, 군 보위국은 곧바로 집중 수사에 돌입했다. 열흘 넘게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불안해진 소대원들은 최 병사와 관련된 일들을 보고하며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 최 병사 대한 가혹행위 사례들이 종합됐다.

군 보위국은 지휘관들과 소대원들이 최 병사를 집단 따돌림 시켜 발생한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3중대 중대장과 중대 정치지도원, 중대 산하 3개 소대의 소대장들이 모두 교체됐으며 최 병사가 속해 있던 소대는 해산됐다.

하지만 최 병사의 개별 문건에는 ‘총기 난사로 동지를 사망케 한 살인자’, ‘사회주의 제도와 당과 수령을 배신하고 자총(自銃)한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 낙인은 족보에도 반영돼 남아 있는 최 병사의 가족들은 지금도 살인자, 반역자 가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