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되느니 차라리 목숨 끊겠다”…탈북 여성들의 구슬픈 각오

[북한 비화] 신분 없어 언제 붙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중국 내 탈북 여성들

/그래픽=데일리NK

2022년 3월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 탈북민 여성 최모 씨와 동거인인 중국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9살 아들은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공안 차량을 보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 안방에 있던 엄마에게 숨으라고 소리쳤다.

이 아들은 어려서부터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공안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보면 정신없이 뛰어가 엄마를 숨기기에 바빴다.

이날도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아들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마을 어귀에 공안 차가 나타났다”고 다급하게 알렸고, 덕분에 빠르게 창고에 몸을 숨긴 최 씨 대신 동거인인 중국인 남성이 아들과 함께 집에 찾아온 2명의 공안과 방역원 앞에 마주 섰다.

2명의 공안은 최 씨를 찾았고, 동거인 남성은 최 씨가 시내에 외출한 상태라고 둘러댔다. 그러자 공안은 “불법 도강(渡江) 북조선(북한)인 인적 사항 서류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면서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열 손가락과 손바닥 도장을 찍고, 휴대하고 있는 중국 전화번호를 재확인해 보낼 테니 며칠 내 파출소에 자진 출두시키라”고 일렀다.

이후 옆에 있던 방역원은 최 씨가 코로나 백신을 몇 차까지 맞았는지를 확인했다. 2차까지 맞았다는 동거인 남성의 말을 들은 방역원은 “코로나 백신을 3차까지 무료로 놔준다”며 “관할 방역소에 나와 3차 백신을 접종하라고 알려주라”고 말했다.

공안과 방역원이 돌아간 후 숨어있던 창고에서 나와 이들이 한 말을 전해 들은 최 씨는 “분명 나를 체포해서 조선(북한)으로 돌려보내려는 수작”이라며 흥분했다. 아들과 동거인 남성이 안심시켜도 최 씨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며칠간 최 씨는 자면서도 겁에 질린 듯한 잠꼬대를 하고 이따금 헛소리하기도 했다. 공안만 왔다 가면 최 씨가 이런 불안 증세를 보이고 정도도 더 심해지자 당황한 동거인 남성은 그를 시내 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신경정신 질환이라 치료받아야 한다며 입원을 권했다.

신분증이 없어 일단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입원하기는 했으나, 입원실에 함께 있던 다른 환자와 가족들은 중국인이라 하기엔 너무도 어눌한 말투의 최 씨를 보고 그의 옆에 있던 아들에게 “너희 엄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고 물었다.

사실 아들도 궁금했다. 평소 공안을 보면 도망치거나 숨기 바쁜 엄마에게 아들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최 씨는 “어른이 되면 말해줄게”라며 말을 아꼈다.

입원 병동에 있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동거인 남성은 결국 담당 의사에게 신분이 없는 탈북민으로서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입원할 수밖에 없는 최 씨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중국에 3만 위안에 인신매매로 팔려 와 현재 자신을 만나 10년 동안 가정을 이루고 아들도 낳아 길렀지만, 최 씨는 항상 불안해하며 언제든 목숨을 끊을 수 있게 독극물이나 칼을 소지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북송돼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차라리 공안이 들이친 순간 삶을 끝내는 게 낫다고 말하면서 10년을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왔다는 것.

동거인 중국인 남성은 그러면서 의사에게 최 씨의 불쌍한 처지를 생각해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이 같은 호소에 의사는 최 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입원한 사실도 숨겨줬고 성심성의껏 치료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최 씨는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최 씨를 퇴원시키면서 보호자인 동거인 남성에게 “처한 환경 때문에 생긴 오래된 마음의 병이기 때문에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른다. 안정이 최우선이니 처방해준 약(수면제)을 꼭 먹이라”고 했다. 이후 최 씨는 낮에도 밤에도 끊임없이 잠을 자며 안정을 취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의 상당수는 최 씨의 경우처럼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 온 이들이다. 신분이 없는 이들은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시달리고 있다. 북송되면 피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견디느니 차라리 중국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니. 이보다 더 구슬픈 각오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