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과 기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도 현지지지도에 동행했다. /사진=노동신문 뉴스1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공식문서화한 《4.26 워싱턴 선언》과 ▲“김정은이 핵도발을 자행할 경우, 미국의 즉각적·결정적·압도적 대응으로 인해 북한 정권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라는 바이든 대통령 공개 경고가 나온 이후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왔다.

북한의 당황하는 기색, 안보딜레마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즉 동 선언 이후 북한의 비난 성명이나 논평, 집회도 그야말로 관례적·형식적 수준에 머물렀고, 김정은도 전략전술적 도발을 멈추었다. 한 달에 가까운 긴 잠행을 끝내고 나와서도 단지 지연되어온 정찰위성 발사(원래는 4월 계획)를 독려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5월 말 들어 북한이 “5.31~6.11 사이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하고 한미일이 강력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한반도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북한 외무성이 비록 조건을 달기는 하였지만 일본 기시다 총리의 정상회담 제의에 관심을 보이는 등 주목할만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어 그 의미를 진단해 본다.

특이동향

첫째, 5월 28일 북한은 “당 제8기 8차 전원회의를 6월 상순에 소집한다”는 당 정치국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이번 회의는 의제로 볼 때 ▲상반기 결산과 하반기 목표달성 독려가 주목적일 것이지만 ▲핵정책, 코로나19 등 현안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그 무엇보다도 최고 수준의 정책회의 소집은 향후 대남·대미 전략전술에 대한 검토가 완료되었음을 시사하는 징표라고 할수 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2023년도 상반년 기간 당 및 국가행정기관들의 사업정형과 인민경제계획수행 실태를 총화대책하고 우리 혁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하여 6월 상순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를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2023.5.29. 조선중앙통신)

둘째. 5월 28일 연합뉴스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북한전문 웹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가 최근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새로운 발사대 건설 등 상당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동향은 곧 있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및 이후 추가 진행할 발사와 연관된 것으로 평가된다.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준비가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를 책임지는 위성발사준비위원회를 시찰하며 ‘차후 행동계획’을 승인했다”(2023.5.17. 조선중앙통신)

“오는 6월에 곧 발사하게 될 군사정찰위성 1호기와 새로 시험할 예정인 다양한 정찰수단들은 날이 갈수록 무모한 침략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미국과 그 추종무력들의 위험한 군사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 감시, 판별하고 사전억제 및 대비하는 데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2023.5.29. 이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셋째, 5월 29일 일본 해상보안청은 “북한이 인공위성을 오는 31일 0시부터 내달 11일 0시 사이에 발사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일본에 사전 통보한 것은 일본이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상 북한이 속한 지역의 항행구역 조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핵개발 대결전의 또 한 축인 일본에 미리 통보한 점은 여러 의미를 띌 수밖에 없다. 즉 위성발사 정당성·평화성 부각은 당연하고 일본에 모종의 외교적 제스처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넷째, 5월 28일 일본 기시다 총리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과 만나고 싶으며, 그를 위해 먼저 고위급 협의를 원한다”고 밝혔다. 기시다의 정상회담 희망 발언은 취임 이후 계속되고 있지만 한미일 공조체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시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내 야권의 대대적 문제 제기 등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주목된다.

다섯째, 5월 29일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은 기시다 총리의 대화 복원 제의 하루 만에 관련 담화를 발표하고 “납치자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원론적 주장과 함께 일본의 대북정책 전환을 조건으로 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공을 다시 일본 측으로 넘겨놓았다.

그간 북한은 주요 계기 시마다 “미일남조선 정보공유체제 수립은 3자의 위기공유에로 이어질 것이다”(2023.5.25.) 등으로 일본을 계속 비난해 왔다는 점에서 그냥 간과할 수만은 없는 발언이다. 양측간에 모종의 물밑 조율이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지금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수뇌회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그 무슨 문제해결을 운운하며 조일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지나간 과거를 한사코 붙들고있어 가지고는 미래를 향해 전진할수 없다.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정부의 입장이다.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2023.5.29. 조선중앙통신)

여섯째, 5월 29일 대한민국과 일본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탄도미사일 발사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를 금지한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위배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면서 ▲강행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국민 안전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오키나와현에 지대공유도탄 패트리엇 부대와 이지스함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의 발사체나 잔해물이 자국 영역에 낙하할 경우에 대비해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이 ‘파괴조치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2023.5.29.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2년 3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전망과 대책

이 같은 동향은 한마디로 ▲김정은의 《워싱턴 선언》에 대한 당혹감과 전략도발 준비 미흡 등에 기인한 장고(長考)와 숨고르기가 끝나고 ▲새로운 행동단계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그럼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김정은의 행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①정찰위성 발사 강행 ②곧 이은 최고 수준의 정책회의 소집 ③일본과의 대화 여지도 슬며시 열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강대강 전략도발 지속과 한미일 공조 흔들기’로 요약된다.

필자는 김정은의 한반도 시계는 《워싱턴 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과 미국에 선거가 없는 2023년에는 강대강 전략도발 강화(‘핵전력 고도화’) → 미대선과 한국총선이 있는 2024년에는 협상재개 모색(‘Again 트럼프와 함께 춤을’) → 미국 신정부가 출범하는 2025년에는 군축협상 빅딜(‘핵과 실리 동시 확보’) 이라고 판단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미·대일 외교 성과, 특히 《워싱턴 선언》으로 인해 미국과 직접 맞상대하려는 김정은의 ‘통미종남(通美從南), 통미종일(通美從日)’ 시나리오는 큰 벽(obstacle)에 부딪히게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김정은의 정치·경제·외교적 입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직접 가기 전에 한미일 3각 공조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일본을 흔들려고 할 가능성(이른바 ‘갓끈 전술’: 갓은 한쪽 끈만 자르면 머리에서 날라간다)이 크다.

즉 ‘보다 공고화된 북중러 대(對) 점차 흔들리는 한미일 3각체제’의 신냉전(new coldwar) 구조 형성 전략, ‘치고 빠지는’(hit&run) 전술은 향후 김정은 생존전략전술의 핵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①핵보유국 위상(군축회담)을 인정받고 ②경제난을 점차 타개해 나가면서 ③윤석열정부를 더욱 압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반정부·친북세력의 반미·반일·반정부 투쟁 지원 병행을 통해 남남갈등과 한미 이간을 증폭시켜 나갈 것이며, 2024년 이후에는 한·미의 선거캠페인·결과를 활용하여 ‘Again 2018’ 전술 구사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외교통인 기시다 일본 총리는 ‘동맹은 동맹, 국익은 국익’ 기조하에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한·미와의 철저한 공조하에 원칙론적으로 대응(북한 발사체 잔해물 일본수역 내 낙하 시 요격 파괴 포함)할 것이지만 ▲중국, 북한에도 계속 유화 제스쳐를 보내는 양수겸장(兩手兼將) 행보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북한 문제는 일본의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변모, 국내 지지율 제고, 치열한 국익 경쟁에서의 실리 획득 모두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비난해서도, 방관해서도 안 된다. 국제사회는 궁극적으로는 국익만이 존재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가치·동맹과 자강·국익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지난 히로시마 G7(주요 7개국)회의에서 대중국 정책 기조가 ‘탈동조화(decoupling) → 위험제거(derisking)’로 바뀐 것처럼 대북한 정책이 ‘비핵화 → 군축’으로 바뀔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기적 대변혁기이자 한반도 핵위기의 최대 변곡점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보는 《치열한 전략전술적 사고》에 기초해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공조하에 당당히 응징해 나가는 가운데, 미국·일본 등 한반도 핵심 이해 당사국들의 물밑 움직임도 예의 추적, 대처해 나가야 할 시기이다.

2023년 5, 6월 현재가 당연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누군가는 2024년, 아니 5·10년 후는 최소한 고려하는 자세(‘담대하고 치밀한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화두(話頭) 성격의 글을 맺는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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