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에 ‘행표’ 발행 권한 줘…기업 경제 활성화될까?

중앙집권적 금융제도 지방분권화하는 개혁 조치로 풀이…돈표는 자연스레 자취 감춰

북한 조선 중앙은행
북한 조선중앙은행. /사진=북한 대외선전매체 ‘서광’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기업 간 결제 수단인 무현금행표의 발행 권한을 지방 상업은행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돼 오던 금융 체제를 지방분권화하고 지방은행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파악된다.

22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달부터 조선중앙은행이 발행하던 무현금행표를 지방은행도 직접 발행 및 관리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하고 있다.

무현금행표는 현금이 없어도 거래를 할 수 있게 은행이 발행하는 일종의 지불 보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 기업들은 원칙적으로 무현금행표를 이용해 기계나 자재 등 생산수단을 구매한다.

기업이 무현금행표를 발행받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에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상당량의 예금을 적립하거나 이와 비슷한 가치의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각 지방은행도 기업의 담보가치를 확인하고 자체적으로 무현금행표를 발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은 금융기관채산제를 도입해 지방에 상업은행을 설치하고 지방 상업은행이 자체적인 금융업무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일부를 중앙에 납입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지방 상업은행에도 무현금행표의 발행과 관리 권한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기업 간 거래를 보다 활발히 하고 지방 상업은행들의 권한 및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금융기관채산제를 도입한 이후 기존의 일원적 은행 제도하에서 지방 상업은행의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 개혁을 하고 있다”며 “지방은행들이 자체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이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일부 권한도 확대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운영 자금 부족과 낮은 신뢰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지방은행들이 무현금행표 발행 권한을 갖게 되는 등 지방 기업의 자금 유통과 관련해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시행되고 있는 일부 개인에 대한 적금 가입 의무화 정책과도 연계된 것으로 파악된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교원뿐만 아니라 당·행정·사법기관 일꾼, 무역기관 종업원, 도·시·군 상업관리소 및 편의봉사기관 종사자 등에게 의무적으로 매달 일정액을 적립하는 적금 상품에 가입하도록 강제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적금 가입 강제하고 대상도 늘려…부족한 자금 마련 꼼수?)

이 적금액은 지방은행이 관리하게 되기 때문에 지방은행들의 자금원이 기존보다 다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금 의무화를 통해 개인으로부터 유휴자금을 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방은행이 융통할 수 있는 자금원을 확보함으로써 기업의 대출 거래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무현금행표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기업용 돈표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5만원권 돈표를 기업 거래에서 사용하도록 했으나 액상이 너무 작아 거래하기에 불편하고, 현금을 대신해 거래할 수 있는 무현금행표가 이미 존재해 기업들이 굳이 돈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북한이 기업용 돈표를 공식적으로 백지화한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