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10년, 北 간부들은 김정은에게 충성하고 있을까?

[북한 비화] 장성택과 함께 사라진 20여 명의 여성들…주검으로 쌓은 권력은 모래성

장성택
장성택이 특별 군사재판장에 끌려 들어가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올해는 김정은 집권 11년째이자 장성택 처형 10년째가 되는 해다.

김정은의 정권 출범의 일등 공신이었던 장성택은 김정일 와병 이후 후계 구축 과정에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일인자나 다름없이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다 2013년 12월 12일 돌연 특별 군사재판에서 ‘정변을 꾀한 역적’으로 취급돼 즉각 처형됐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고모부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장성택의 처형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며 큰 이목을 끌었지만, 이 과정에 소리소문없이 행방불명된 여성들의 사건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은 장성택 일가와 주변 인물들을 집단으로 끌어가 학살한 1차 처형집행 기간이었다.

특별 재판소에서 발급한 1차 체포영장 대상에는 장성택의 가족들과 최측근들을 가까이서 상대했던 여성 20여 명도 포함돼 있었고, 위임을 받은 특별 수사 및 예심국은 명단에 든 여성들의 집을 찾아 한 명 한 명 동시다발적으로 체포했다.

이들은 유명 연예인을 비롯한 예술인과 주요 공장의 지배인, 평범한 회사원 등 다양한 직종에 있는 여성들이었다.

특별 예심국이 이들의 사건을 종결하고 종결문에 공통되게 쓴 내용은 ‘당의 유일영도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자를 개인적으로 숭상하고 맹종맹동하면서 현대판 종파분자의 끄나풀 역을 한 더러운 반동 잔당’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도 공통되게 서술했는데, 그중에는 동시다발적인 체포가 진행되던 과정에 이 여성들이 “그분께서 아십니까? 1번 동지가 모르는 사안은 제가 갈 이유가 없습니다”라며 장성택을 ‘그분’, ‘1번’으로 부르는 등 당의 유일적영도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20여 명의 여성은 장성택이 처형당하는 순간 동시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처형됐고, 이들의 일가친척들은 사람이 짐승으로 취급받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있다.

1차 처형집행 이듬해인 2014년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은 이른바 장성택의 사람들로 알려진 노동당 간부들도 줄줄이 주요 보직에서 해임하며 2차, 3차, 4차 숙청을 단행했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을 발표하면서 공개한 판결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놈(장성택)은…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었다는 결정이 선포되어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장성택 처형이 몰고 온 피바람이 북한 권력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지난 10년간의 북한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모부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김정은의 잔인한 면모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북한 간부들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김정은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다.

북한 간부들이 아들뻘인 김정은 앞에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여전히 북한 매체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무릎을 꿇고, 입을 가리고, 두 손을 모아가며 충성분자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 지금 북한 간부들의 현실이다. 김일성의 딸인 김경희마저 김정은을 향해 공손한 태도를 보일 정도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김정은은 장성택 숙청 이후 공포정치를 지속하며 집권 11년간 자신만의 권력 지반을 닦아 나갔다. 그러나 장성택 처형 10년과 결부해 보면 과연 최고지도자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진짜배기 충성분자들이 북한에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주검으로 쌓은 권력은 모래성에 불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