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북한의 4대 세습 후계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김정은의 둘째 딸로 알려진 김주애의 등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쪽에서는 김주애가 4대 세습 후계자로 내정되어 지도자수업까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한쪽에서는 시기상조이며 김정은을 부각하는 일종의 마케팅으로 보기도 한다. 미리 말씀드리면 필자도 후자의 입장에 조금 더 가깝다.
엄밀히 말해 북한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지명, 내정했다는 발표는 없다. 한마디로 객관적이며 사실적 근거는 최소한 지금까지 찾기 어렵다.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되 차분히 현상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분명 추론이나 추측이다. 굳이 지금 시점에서 성급하게 자신의 주장만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모두 오답인 것처럼 일방적 주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랫동안 북한 후계자 문제를 연구해 온 정성장 박사는 김주애의 4대 세습 후계자 내정을 주장한다. 서울평양뉴스(SPN)전문가 분석 코너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임을출 교수에게 쓴소리까지 했다. 북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자신의 세부 전공 분야가 아니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다소 격한 반응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장을 반론하는 학자들을 진보진영학자로 표현했다. 대북지원, 북한 인권 등의 이슈는 분명 보수-진보 간 이견이 있고, 사회적 대화가 필요할 만큼 첨예하다. 한마디로 김주애의 후계자 지명 문제가 진보-보수 간 견해차로 분석할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진보정권 인사라 할 수 있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정성장 박사와 같은 입장이다. 김주애가 이미 후계자로 내정, 지도자 수업도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인재 등용 시 용모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한 언론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인재를 등용할 때 용모·언변·글씨·판단력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언급하면서 ‘김주애가 자기 오빠보다는 신체적 측면에서 백두혈통의 원주(김일성 주석) 모습을 상기시킨다는 게 크게 작용한 듯하다’고 추정했다”(2023년 3월 2일자, 이데일리)
김주애의 용모 때문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는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리 봐도 필자의 눈에는 성별이 다른 김주애가 김일성을 닮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인재 등용’이라는 표현은 김주애를 미화하는 오해의 소지도 있다.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12살 된 아이의 ‘신체적 측면’은 성장이 멈춘 미라인가?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관심사를 ‘김주애’ 그 자체가 아닌 ‘어린 딸과 함께한 김정은’을 보면 초점이 달라진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육아 정책을 당의 제일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연일 강조하는 것이 김정은의 후대사랑이다. 아버지라는 친근한 이미지가 선전선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5일 김정은은 평양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 ‘사랑스런 자제분’이라 불리는 자신의 딸 김주애와 함께였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2023년도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 건설과 별도로 수도 평양의 북쪽관문구역에 4000여세대의 살림집을 일떠세워 옹근 하나의 특색있는 거리를 형성하는 중요한 대상건설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과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에 통채로 맡기기로 하였다”라고 말했다. 서포지구 건설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백두산청년영웅돌격대’로 불리는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전국에서 10만 명이 탄원(자원)했다는 점이다. 착공식 이후 ‘조선중앙TV’는 연일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 원수님’, ‘친아버지’ 이미지를 강조한다. 건설장 선전 포스터에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새겨졌다.
착공식에 동행한 딸 김주애는 김정은을 ‘친근한 아버지’의 상징적 이미지로 만드는 최고의 광고모델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도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닌 딸을 둔 평범한 아버지로서의 이미지 연출은 김정은의 본색을 숨기기에 충분하다. 화성 17형 미사일 발사장에 김주애를 대동한 장면 역시 김주애가 아닌 ‘아버지로서 김정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미사일 발사장에 홀로 선 김정은과 딸의 손을 잡고 나온 김정은은 분명 다른 이미지로 보인다.
북한의 후계자가 맞다 아니다 논쟁보다, 4대 세습을 언급하는 것이 독재체제의 야만성을 지적하는 것이 학자의 양심이자 펜의 역할일 것 같다. 북한 문제가 점쟁이 점치듯 용하냐 아니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학문적 가치로서 의미가 없다. 후계자 지명이 분명하다며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진리인 양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그 반론 역시 학문적 수준에서 논쟁해야 하지 않을까? 하긴 판문점의 협상가라 자처하는 전 통일부 장관이 용모 하나로 북한 후계자 내정을 점치는 수준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김주애는 북한학자의 점치기 대상이 아니다. 4대 세습 여부를 떠나 김주애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재자의 어린 자녀 중 한 명일 뿐이다.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키울지는 시간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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