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 역사상 처음 등장한 ‘백두혈통 결사보위’ 구호 의미는?

인민군대 ‘보위’ 개념이 최고지도자→혈족으로 확대…전문가 "김주애는 후대의 상징"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전날(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8일 진행된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참석하면서 후계자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이번 열병식에는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이는 김주애를 후계자로 공식화하려는 의도라기보다 김정은 체제의 영속성을 공개적으로 선전하는 데 방점을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북한 조선중앙TV가 9일 공개한 열병식 영상에는 북한 군인들이 “김정은 결사옹위,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를 지속적으로 제창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중 ‘백두혈통 결사보위’라는 구호는 북한 역사상 어느 열병식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구호로, 일부 북한 간부들도 주목할 만큼 이번 열병식의 특이점으로 꼽힌다. 즉, 북한 내부에서도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최고지도자뿐만 아니라 백두혈통 전체로 인민군대의 ‘보위’ 개념이 확대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군은 북한 체제를 떠받치는 중추적인 세력인데, 군이 4대 세습을 보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당국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권력을 4대로 세습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이번 열병식은 4대 세습보다 더 넓은 의미의 북한 체제 영속성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최근 김정은의 행보나 북한에서 발표한 공식 문헌을 살펴보면 이전과 달리 유일영도체제의 영속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며 “핵심은 김정은 일가 백두혈통 체제가 장기적으로 간다는 뜻이며 이번 열병식도 이러한 맥락의 일환”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당중앙간부학교 방문 연설에서 “백년, 천년을 담보하는 당의 면모와 기풍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 당은 50년, 100년, 몇백년의 후사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당 일꾼, 능숙한 정치활동가들을 키워낼 것”이라고 직접 언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 연구위원은 “김주애는 백두혈통과 4대 세습을 상징하는 인물일 뿐 최근 일련의 공식 행사 참석만으로 후계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다만 오 연구위원은 “김주애가 핵 관련 행사에 나오면서 북한 체제에 대한 외부의 관심이 굉장히 커졌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광고 모델을 기용한 것이면서 대외적으로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애를 핵 관련 행사에 등장시킴으로써 명실공히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는 견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속적인 세습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면 왜 첫째도, 아들도 아닌 김주애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절대적인 유일 지배 체제 하에서 후계 관련 사안의 공개는 영도체계에 유리한지 또는 저촉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김정은의 수령 우상화가 진행형인 현 단계에서 김주애는 후계가 아닌 후대의 상징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