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국경 지키는 군인들 새해 소망은 ‘밀수’와 ‘철수’

[설 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④] 국경경비대·폭풍군단 "지난해는 제일 힘들었던 해"

[편집자 주]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경봉쇄로 무역이 중단되고 장마당이 위축되면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주민들의 호소가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때에도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성과를 압박했습니다. 코로나가 삼켜버린 지난 3년을 악착같이 버텨온 북한 주민들. 본격적인 ‘엔데믹’(endemic)을 맞은 지금 그들이 가장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설을 맞아 각 분야 다양한 직업군의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국경 지역의 무장한 북한 군인들의 모습. 한 군인은 통화 중이고, 다른 군인은 망원경으로 중국 쪽을 보고 있다. /사진=데일리NK

북한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에 최정예부대인 폭풍군단을 투입해 북부 국경봉쇄작전을 진행한 지도 어느덧 4년째. 코로나19 발생을 계기로 국경에 투입된 폭풍군단 군인들은 국경 경비가 본 임무인 국경경비대와 오랜 기간 북부 국경지대에서 함께 전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 세계가 ‘위드코로나’로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북한은 지난 3년간 단단히 걸어 잠근 국경 빗장을 여전히 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폭풍군단 군인들의 국경 파견 생활도 지속되고 있다.

폭풍군단 군인들은 국경 투입 초반 북한 당국이 부여한 임무에 맞게 국경에 접근하는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무자비한 대응을 해왔다. 그동안 밀수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주민들과 그런 주민들의 뒤를 봐주면서 주머니를 채워온 국경경비대는 폭풍군단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파견 기간이 장기화하면서 폭풍군단 군인들도 점점 현지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공급이 부실해지면서는 직접 밀수에 나서기도 하며 배고픔을 해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데일리NK는 현재 함경북도에 주둔하고 있는 국경경비대 군인과 폭풍군단 군인들에게서 현재의 근무 환경과 어려운 점, 새해 바라는 소망을 들어봤다.

다음은 국경경비대, 폭풍군단 군인과의 일문일답

-국경봉쇄가 장기화하고 있는데 생활이나 공급에 문제는 없나.

국경경비대 군인(이하 A): 국경봉쇄 이전에도 후방부 식량, 공급물자로 전부 생활할 수 없어 절반은 부대 자체로 외화벌이나 밀수로 자력갱생했다. 국경이 봉쇄되면서는 해마다 혁띠를 더 조이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입밥을 총 6번 먹어봤고, 평소에는 하루 세끼 중 두끼를 모래기국수를 먹은 날이 제일 많았다.

폭풍군단 군인(이하 B): 폭풍군단은 물자를 다 공급해줄 테니 절대로 인민의 생명 재산에 손을 대지 말고, 불빛 화려한 강 건너 중국에 현혹되지 말고 작전에 참여하라고 교양 받는다. 실제로 첫해에는 지휘부가 있는 덕천에서부터 국경까지 직접 물자들을 실어 왔는데 작년에는 지휘부가 수송 수단이 딸린다(부족하다)며 인접 국경경비대에 붙어살이하라고 하면서 내놓은 자식 취급했다. 그래서 배고픈 군인들이 작년에 강 건너 몰래 중국에 갔다가 복귀하기도 했다.

-국경경비대와 폭풍군단이 국경봉쇄작전을 꽤 오랜 시간 함께해오고 있지 않나. 어떤가.

A: 작년 9월부터는 그래도 (밀수) 숨이 좀 트였다. 국경 인민들은 일면식이 없는 앞 지대 폭풍군단, 그것도 펄펄 나는 싸움꾼들이 국경에 오자 공포감을 느꼈다. 그러나 폭풍군단 군인들도 국경에 있은 지 오래되면서 국경경비대나 국경 사람들이 왜 밀수나 무역으로 살 수밖에 없는지 느끼고 있다. 예전처럼 악질적으로 놀지 않는다. 공급이 점점 낙후해지니 우리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서로 돕고 눈감아 주면서 살려고 하고 있다. 국경 경비는 표면적으로는 삼엄하지만, 내적으로는 풀리는 분위기다.

B: 초반에는 국경경비대와 늘 싸웠다. 국경경비대가 놓친 사민을 우리가 저격해 강물에 내버려 두면 국경경비대는 우리를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작년은 우리가 직접 넘어가 중국 대방(무역업자)들을 만나고 물건을 가져다주고 가져오는 식으로 하면서 국경 주민들이 다치는 것 없게 했다. 국경을 지키면서도 할 것은 다 했다. 봉쇄 첫해나 그다음 해에는 야간에 국경에 접근하는 대상을 쏴죽이는데 혈안이었는데 작년에 우리도 힘들어 중국에 넘어갔다 오고 하면서는 인민들을 국경에 접근 못하게 사격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지난해 특히나 더 힘들었던 게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

A: 국경경비대는 국경 인민들의 밀수를 도와주고 돈을 벌어 살아가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진 부대다. 국경을 봉쇄하고서는 밀수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 연속되면서 우리도 힘들어졌다. 원래 국경경비대는 허약(영양실조)이 없는 부대로 소문나 간부 자식들도 선호하는데 작년에는 90명 중대에 12명이 허약으로 판정나 집이나 보양소로 보내졌다.

B: 식량 문제다. 작년에 처음으로 도당에 제기해 지원미로 강냉이(옥수수)를 받아 보태 먹었다. 지휘부에서 직접 보급하던 초반과 달리 작년에는 국경경비대 후방부에 위탁해 물자를 받았다. 폭풍군단은 군인공급 정량이 일반 구분대와 다르다. 일반 구분대 하전사들은 하루 급식 공급량이 700g이지만 우리는 1㎏이다. 그런데 정량 공급을 못 받으니 훈련한 것을 현실(밀수)에 써먹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새해가 됐으니 올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지난해는 국경봉쇄작전 기간 중 제일 버티기 힘들었던 해였다. 그래도 영양실조에 안 걸리고 이겨내 살아남았다. 새해 바라는 것은 밀수하면서 국경 군민이 코로나 봉쇄 이전같이 서로 돕고 단합하면서 화목하게 잘 살고 싶은 것이다.

B: 지난해는 국경경비대와 국경 인민들의 현실적인 생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해였다. 올해 바라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철수해 부대에 복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