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이 ‘알곡생산구조를 바꾸기 위해 밀농사에 집중하라’는 내용의 통보자료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 내에서는 밀농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경우 종파분자로 몰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15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달 초 각지 도(道) 농촌경리위원회와 시(市) 농촌경영위원회를 대상으로 밀농사와 관련한 통보자료를 하달하고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북한은 이 통보자료에서 올해 밀농사가 계획한 대로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다는 부정적 결과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농장 일꾼과 농장원들이 각자 책임을 다하고 과학영농법을 도입한다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며 ‘밀농사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느니 밀농사는 우리에게 시기상조의 농업책이라느니 하는 비판을 하는 자는 곧 현대판 종파분자와 같다’는 내용을 통보자료에 포함했다고 한다.
사실상 밀농사 확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자는 반당·반혁명분자로 처벌하겠다고 경고한 셈이다.
특히 현대판 종파분자를 언급한 대목에서는 전후 복구 시기에 철강재 생산을 강조한 김일성의 일화가 소개됐다.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이 제강소 현지지도를 하면서 “철강재 1만톤만 더 생산할 수 있다면 나라가 허리를 펼 것”이라고 말했는데 당시 종파분자들은 철강재를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이를 비판했으나 그 해에 철강재를 12만톤을 더 생산했다는 것.
북한은 통보자료에 이 사례를 들면서 밀농사가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 자체가 무능력이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사실 북한은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올해 밀농사 확대 정책에 관한 총화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화에서는 밀농사 면적 확대 목표를 달성한 지역은 있지만 실제로 밀을 계획만큼 생산해 낸 단위는 전국에서 1~2곳 밖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 전언이다.
또 밀농사에 여러 가지 비료를 써도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아 수입 대 지출이 맞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았다고 한다.
내각 농업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총화 보고서를 올렸지만, 당에서는 이를 묵살하고 당정책을 무조건 관철하라는 통보자료를 하달한 것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2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전국적으로 논벼와 밭벼 재배 면적을 늘리며 밀, 보리 파종 면적을 2배 이상으로 보장하고 정보당 수확고를 높여 인민들에게 흰쌀과 밀가루를 보장함으로써 식생활을 문명하게 개선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말 진행된 당 제8기 4차 전원회의에서도 김 위원장은 나라의 알곡생산구조를 바꾸고 벼와 밀농사를 강하게 추진하는 것이 당의 주요 과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북한은 밀농사가 계획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자 러시아로부터 밀을 수입하고 이를 군(軍) 관련 기관 및 국가식량판매소에 제공했다. 북한은 러시아산 밀 수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부족한 생산량을 수입으로 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러시아서 밀 들여와…’친선’ 강조한 대가로 지원 받았나)
북한 농·축산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밀이 옥수수보다는 지력 소모가 적은 작물”이라며 “길게 봤을 때는 옥수수 대신 밀 재배를 확대하는 것이 북한 식량 개선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조 연구소장은 “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북한의 환경에 맞는 품종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북한 당국은 과학적 영농방법을 강조하지만 우량 품종 도입에 대한 투자 없이는 밀 수확량을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